지진이 잦은 일본에서는 매년 9월 1일을 ‘방재의 날’로 정하고 있다. 1923년 9월 1일은 간토(関東) 대지진이 일어난 날이고, 올해는 지진 재해가 일어난 지 100년째 되는 해다. 일본 TV, 신문 등 미디어에서는 다양한 각도에서 지진 당시를 다루었고 관련 영화와 서적도 주목받았다.
도쿄 등 수도권을 강타한 간토 대지진은 1923년 9월 1일 토요일 낮 11시 58분에 일어났다. 지진 자체로 인한 피해도 컸지만 토요일 점심시간이라 많은 가정에서 불을 사용해 화재로 인한 피해가 심각했다. 지진으로 인한 사망·실종자는 약 1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들 중 약 90%에 해당하는 사람이 화재에 의한 희생자였다. 전파·전소된 가옥이 29만채, 살 곳을 잃은 사람은 200만명에 이르렀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일으켰던 동일본 대지진 당시 사망·실종자가 1만8000명, 전파·전소된 가옥이 12만채였던 것과 비교하면 간토 대지진 당시 피해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일본에서 간토 대지진은 조선인 학살 사건으로도 기억된다. '조선인'이라고 하면 차별적인 용어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당시는 아직 대한민국 성립 이전이었고 한반도라는 의미로 일본어는 '조선반도', 한반도 출신은 '조선인'으로 인식된다.
피해 규모도 그렇지만 그 실태는 처참했다. 혼란 속에서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거나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 “불을 질렀다” 등 유언비어가 돌았고 이를 믿었던 일본 관헌과 자경단 등이 다수 조선인과 중국인을 살해했다. 조선인이 발음하기 어려운 일본어 '15엔(円) 50전(銭)'을 말하게 해서 발음이 일본어 원어민과는 다르거나 말하지 못하면 조선인으로 간주해 살해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투리를 쓰는 지방 출신 일본인이나 청각장애인도 희생되었다.
당시는 식민지 시대로 독립운동 등을 통해 일제에 저항하는 조선인들도 적지 않았기에 일본인들에게는 무슨 일이 생기면 조선인에게 공격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공격의 대상이 되었고, 이러한 자경단의 만행을 경찰이 방관한 사례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 보고에서는 ‘학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살상’이라고 했지만 이는 조선인이나 중국인이라는 특정 민족을 대상으로 한 틀림없는 ‘학살’이자 ‘제노사이드(Genocide)’ 사건이었다.
일본 시민들은 매년 9월 1일 조선인 학살이라는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수도권 곳곳에서 희생자 추모 행사를 열어왔다. 도쿄에서는 조선인 희생자 추모비가 있는 스미다구(墨田区) 요코아미초(横網町) 공원에서 매년 추모식이 열린다. 추모비에는 “잘못된 책동과 유언비어 때문에 조선인 6000여 명이 고귀한 생명을 빼앗겼다” “이 역사를 영원히 잊지 않고 재일조선인과 굳게 손잡고 일본과 한반도의 친선, 아시아 평화를 세우고자 한다”고 새겨져 있는데 1973년 도쿄 도의회 여야 합의로 세워졌다고 한다.
이 공원은 당시 도쿄 시내에서 가장 피해가 컸던 지역에 위치해 있고 조선인뿐만 아니라 지진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 유해를 모시는 위령당도 있다. 이곳에서 열린 추모식에는 과거 매년 도쿄 도지사가 추도사를 보내왔다. 중국인을 공공연히 ‘삼국인’으로 부르는 등 차별주의자로 유명했던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도 도지사 재임 기간 중 빠짐없이 추모문을 보냈지만 현 도지사인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는 2017년부터 이를 중단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고이케 지사는 “재해와 여러 사정으로 돌아가신 모든 분들께 애도를 표한다”고 하면서도 조선인 학살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 등은 학살의 역사를 부정하는 일이 될 수 있다며 도지사의 추모문 송부를 도쿄도에 재차 요청하고 있지만 올해도 끝내 추모문을 보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도쿄도는 추모식을 방해하기 위해 같은 곳에서 열리는 역사부정 차별주의 단체의 가짜 ‘위령제’ 개최를 허용했다. 많은 시민의 대항으로 그 가짜 ‘위령제’는 결국 불발됐지만 도쿄도의 대응 또한 아쉬운 점이 많았다.
학살의 역사를 부정하는 목소리를 조장하고 있는 것은 도쿄도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말에는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일본 관방장관이 기자회견에서 조선인 학살에 대한 정부 입장을 알려 달라는 질문에 “정부 조사에 한정한다면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학살을 보여주는 기록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 정부가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정부는 최근 몇 년간 기록이 없다는 발언을 반복하며 마치 조선인 학살이 없었던 것처럼 계속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사건 당시 일부에서는 사건 은폐도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있어 정확한 희생자 수가 공식적인 기록으로 파악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고 그 실태 또한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것이 학살 사실이 없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기록이 없다는 것은 오히려 정부의 능력 부족을 보여주는 것이니 부끄러워해야 한다. 공식적인 기록이 충분하지 않아도 학살을 보여주는 기록은 분명 남아 있고 그동안 많은 시민과 전문가들이 조사·연구해왔으며 조선인 학살의 역사는 이미 확인된 사실로 인정되고 있다.
정부 중앙방재회의 보고서를 봐도 지진 직후 살상 사건에서 중심을 이룬 것은 조선인 박해였다. 당시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에 대한 저항운동 등에 직면해 일본인들이 공포감을 느낀 적이 있고, 몰이해와 민족적 차별 의식이 조선인 박해의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는 내용 등이 기재되어 있다. 보고서가 인용한 1차 자료에는 조선인들이 희생된 살상 사건이 기록되어 있고 국립공문서관이 운영하는 아시아역사자료센터 등에서 보관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 보고서는 어디까지나 지식인의 기술이지 정부의 견해는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회의는 정부가 설치한 것으로 당시 내각 총리대신에게도 조사 결과가 보고된 바 있다. 그러므로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답변은 관방장관의 무지 또는 궤변에 불과하다.
간토 대지진 그리고 조선인 학살 사건 100주년을 맞이하며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가 있다. 지진 재해가 일어난 9월 1일에 맞춰 최근 공개된 영화 <후쿠다무라(福田村) 사건>(모리 다쓰야(森達也) 감독)이다. 지진 당시 혼란 속에서 일본 지방인 가가와현(香川県)에서 약을 팔러 온 보따리상들이 지바현(千葉県) 후쿠다무라(지금의 노다(野田)시)에서 현지 자경단에게 폭행을 당해 아이와 임신부를 포함해 9명이 살해된 사건을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이들이 살해당한 것은 사투리를 써 조선인으로 오인받았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학살 문제는 조선인이나 중국인 같은 외국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인도 그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식민지 지배하에서 조선인에 대한 멸시, 앞서 말한 것과 같은 공포심에서 조선인에 대한 유언비어가 안이하게 믿어졌고, 신문 매체에도 이를 부추길 만한 기사가 실리면서 유언비어가 사실처럼 유포되었다. 사람들의 차별의식을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은 정부 등 공적 기관이자 언론이었다.
요즘 한국에서는 한 국회의원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행사에 참석한 사실이 비판적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 의원이 참석했다는 행사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본 수도권 각지에서 개최된 조선인 학살 추모식 중 하나로 도쿄도나 일본 정부가 역사를 직시하지 않는 가운데 일본 시민들이 주최한 것이었다. 일본의 시민운동을 잘 아는 사람에게는 상식 같은 이야기지만 식민지 시기 역사 문제를 다루는 자리나 조직에 총련 관계자가 참여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재일동포의 역사를 알고 있으면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상식이다. 가해 역사를 부정하려는 일본 일부 보수세력에 의한 탄압의 역사는 재일동포들의 저항의 역사이기도 했고 그 중심에는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있었다. 그것과 남북 분단 상황에서 체제 경쟁을 똑같이 생각하는 것은 몰역사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역사는 정치적 입장을 초월한 인권 문제다. 일본 식민주의가 불러온 외국인 또는 민족에 대한 차별, 혐오범죄(hate crime)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기억하고 교훈으로 삼아야 할 부정적 역사이기도 하다. 사람을 조직이나 속성 등 카테고리로 묶는 발상은 위험하다. 일본인도 간토 대지진 학살을 피해갈 수 없었듯이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고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최근 <재해와 외국인 범죄 유언비어 - 관동대지진부터 동일본대지진까지>를 저술한 곽기환 도호쿠가쿠인(東北学院)대학 교수가 언론 인터뷰에서 매우 중요한 지적을 했다. 지진 재해라는 극한 상태에서 소리를 내지 못하는 수많은 이재민과 그 피해에 가슴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감정의 출구’로서 외국인에 대한 공격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즉, 평소 이질적인 것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존재하는 가운데 대중에게 스트레스 해소의 분출구가 된 외국인이 위험에 처한다는 것이다.
사람을 조직이나 속성에 의해서만 식별하고 단정함으로써 생기는 편견과 차별은 혐오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 바로 그것이 차별의 사슬이자 ‘증오의 피라미드(Pyramid of Hate)’다. 우리는 이런 것들이야말로 100년 전 역사에서 배워 나가야 한다. 원래는 정부가 그것을 주도해야 하지만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든 그 뜻을 이어가려는 시민사회의 힘에서 희망을 찾을 수밖에 없다. 여론을 선동하는 언론의 자제가 요구되는 동시에 언론에 휘둘리지 않는 우리 시민들 나름의 식견 또한 요구된다.
오가타 요시히로(緒方義広) 주요 이력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연세대 정치학박사 ▷전 홍익대 조교수 ▷전 주한 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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