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부터 실시된 DMA에는 게이트키퍼 기업에 부과되는 다양한 의무들이 열거돼 있다. 이 중 상당수가 이들 기업의 비즈니스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부분들로, 게이트키퍼로 지정된 기업들은 비상이 걸렸다. 여러 기업들이 이례적으로 EU의 결정에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DMA는 핵심 플랫폼 서비스의 독과점 남용 행위 등을 제한하기 위한 여러 의무 사항들을 규정했다. 이들 핵심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는 빅테크 기업을 게이트키퍼로 규정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규제에 집중했다. EU는 게이트키퍼가 자신들의 플랫폼 지배력을 활용해 사업 참여자와 소비자의 선택을 제한할 수 있다고 봤다. 이에 시가총액 750억 유로·연매출 75억 유로·월 활성 이용자 수(MAU) 4500만 이상 등을 넘어서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게이트키퍼를 지정했다. 사실상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집중적인 사전 규제를 천명한 가운데 게이트키퍼 기업들은 저마다 대응책 마련에 나서는 분위기다.
맞춤형 광고·자사우대·독점…빅테크 성장 공식 DMA서는 '안돼'
DMA에 따르면 게이트키퍼들이 다른 중개 서비스보다 자신들의 서비스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것(자사 우대)이 금지된다. 즉 플랫폼 이용자들이 게이트키퍼 플랫폼 자신의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강제하는 행위나, 플랫폼 내에서 게이트키퍼 자사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우선시하는 것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또 플랫폼을 이용하는 업체(플랫폼 이용 사업자)들이 게이트키퍼의 플랫폼을 통해 제공되는 것과 같은 재화·서비스를 다른 플랫폼이나 자체 판매채널 등을 통해 다른 가격·조건으로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것을 막아서도 안 된다.
이외에도 게이트키퍼들에게 부과되는 다양한 의무 사항들이 DMA에 규정됐다. 만일 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전 세계 매출액의 최대 10%까지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 반복적인 위반 시 20%까지 올라가며, 만일 EU집행위원회에서 특정 게이트키퍼가 조직적이고 고의적으로 DMA를 침해한다고 판단할 경우 사업 일부를 매각하도록 강제하는 것도 가능하다. 게이트키퍼에게 매우 강력한 사전규제를 부과하는 셈이다.
DMA의 주요 내용들을 보면 빅테크 기업들이 그간 빠르게 성장해 온 방식과 정확히 상충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구글·메타 등 전체 매출에서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기업들의 경우 그러한 광고 매출에 큰 기여를 했던 것이 바로 이용자 맞춤형 타깃 광고였다. 앱 마켓 업체들 역시 최대 30%에 달하는 인앱결제 수수료를 토대로 막대한 수익을 거둬 왔다. 더욱이 애플의 경우 아이폰 이용자들의 앱 다운로드 경로를 앱스토어로 일원화하면서 쏠쏠한 인앱결제 매출을 벌어들였다.
비상등 켜진 빅테크…일부 기업들은 공개 반발도
이렇다 보니 게이트키퍼로 지정된 기업들은 비상이 걸렸다. 당장 6개월 뒤인 오는 2024년 3월부터 EU에서 만큼은 그간 영위하던 사업 모델을 큰 폭으로 바꿔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가령 애플은 아이폰 이용자들이 앱스토어 외 다른 경로로 앱을 내려받을 수 있는 길을 터 줘야 한다.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의 경우 맞춤형 광고와 관련해 EU 이용자들의 동의를 구하는 별도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만일 동의하지 않을 경우 해당 이용자에 대한 맞춤형 광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애로사항이 나타날 전망이다.
복수의 외신들에 따르면 기업들도 이례적으로 공식 성명을 내고 게이트키퍼 지정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애플은 "DMA가 이용자들에게 가져온 프라이버시와 데이터 보안 위험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며 "우리는 이러한 영향을 어떻게 줄이고 유럽 이용자들에게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계속 제공할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경제계의 반발도 나온다. 지난 12일 인사이드유에스트레이드에 따르면, 조던 하이버 미국 상공회의소 부소장은 DMA에 대해 "미국 빅테크 기업들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며 "게이트키퍼 기업으로 지정된 여섯 개 기업 중 중국 기업인 바이트댄스를 제외한 다섯 개가 미국에 본사를 둔 기업이고 유럽 기업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미국 기업을 표적으로 삼고 유럽 기업들에 특혜를 주려는 이 법안의 의도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당초 게이트키퍼 대상으로 거론됐던 삼성전자는 이번 규제에서 제외됐다. 삼성전자는 지난 7월 '잠재적 게이트키퍼' 중 하나로 EU 집행위에 주요 서비스 내용을 보고한 바 있다. 삼성전자 갤럭시 스마트폰에 기본 탑재되는 웹브라우저 앱 '삼성 인터넷'이 DMA가 규정하는 규제 범위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다만 EU 집행위는 삼성 인터넷이 게이트키퍼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 것과 관련해 충분히 정당한 논거를 제공했다고 봤다.
대표적인 사전규제 모델 DMA…네카오 등 韓 플랫폼들도 '긴장'
EU의 행보는 국내 인터넷 업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시장지배적 지위에 있는 플랫폼에 대한 규제 모델이 DMA이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구글·메타·넷플릭스 등 한국에 진출한 미국 빅테크 기업들과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대형 플랫폼 업체들을 중심으로 이 같은 규제를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공정위는 올해 초 플랫폼 독과점 규율 개선 전문가 태스크포스(TF)를 통해 구체적인 규제 방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논의해 왔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14일 열린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합리적인 정책을 마련하고자 현재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윤석열 정부의 플랫폼 규제 기조는 '자율규제'다. 다만 지난해 10월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해 벌어진 카카오 서비스 장애 사태로 인해 플랫폼 규제론이 다시 힘을 얻었다. 그 결과 공정위는 플랫폼과 입점업체 간 관계인 '갑을' 분야를 중심으로 자율규제를 적용하는 동시에, 독과점 분야에 대해서는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 등 현재 국회에 계류된 다수 관련 법안들의 심사에 적극 참여하는 '투 트랙' 전략을 택했다.
공정위의 이러한 움직임에 IT업계는 우려가 크다. 자칫 강력한 규제로 인해 플랫폼 기업들의 성장세가 둔화될 수 있다는 점, 규제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비효율성을 쉽게 해소할 수 없다는 점, 이러한 규제가 정작 해외 빅테크 기업에는 제대로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 등이 주된 우려 사항이다. 최근 빅테크 기업들과의 생성 AI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이러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플랫폼 기업으로 꼽히는 네이버의 최수연 대표는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사전 규제보다는 자율규제를 전략적인 틀로 잡고 혁신 유발, 창의성을 강조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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