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드림 대행진] 태평성대 누리는 이상세계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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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수 작가
입력 2023-09-16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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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월당과 광풍각, 규모는 작지만 단아ㅏ하고 정감이 간다. 외적 규모로 영향력을 주기보다는 내실에 충실하고자 한 집주인의 모습을 본다: 그림 이두수 작가] 





사화를 피해 고향에 은둔하며 유교이상의 꿈을 키웠던 조선의 선비들 길을 걸으며 나는 코리안드림을 꿈꾼다.

‘위대한여정-코리안드림대행진’의 일행을 환영하는 광주시민 환영회를 마치고 하루 쉬는 일정이어서 일행의 일원인 영국에서 참여한 조이씨와 함께 담양 소쇄원을 방문했다. 영국에 사는 그녀가 이번 걷기
행사에 참여한 이유 중의 하나가 소쇄원을 방문할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녀는 지난 달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런던가든페어에 한국대표로 참여한 김단비 작가가 한국 정원의 모델이 소쇄원이라 말해 주어 그 영향도 있었던 거 같다. 

소쇄원은 보길도 원림, 영양 서석지, 강진의 다산초당, 함안의 무기연당, 담양의 명옥헌 등 조선을 대표하는 정원 중의 가장 빼어난 정원으로 꼽고 있다. 조선의 별서를 정원이라기 보다는 원림이라는 말을 쓰는데 유홍준은 원림을 이렇게 설명한다. 정원庭園이란 말은 일본인들이 메이지 시대에 만들어낸 것으로 우리식 표기는庭苑이다. 예전엔 가원, 임원, 화원 등으로 쓰였다. 그 표현이 어찌되었던 정원이란 말이 일반적으로 도심 속 주택에서 인위적인 조경 작업을 통해 동산의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라면, 원림은 교외에서 동산과 숲과 자연상태를 그대로 조경으로 삼으면서 적절한 위치에 집칸과 정자를 배치한 것이다. 그러니까 정권과 원림에서 자연과 인공의 관계는 정반대다.

소쇄원은 담양군 지곡리에 위치하며, 조선 중기 양산보가 만든 별서정원이다. 양산보는 17세의 청년 시기 과거에 급제했으나, 개혁 정치에 앞장섰던 스승 조광조를 죽음으로 몰아간 ‘기묘사화’ 이후 낙향해 담양에 들어와 소쇄원을 조성했다. 기묘사화는 연산군을 폐하고 왕위에 오른  중종이 신진인재를 등용하여 새로운 개혁정책을 피려했으나 자신을 세운 훈구세력의 힘에 의해 조광조를 위시한 신진 사림을 몰아냄으로써 조선의 개혁의지가 꺾인 안타까운 사화였다. 조광조는 왕도정치 실시와 과거제 폐단을 혁신함으로 신진사류를 등용하고 왕부터 모범을 보이는 왕도정치라는 유교정치의 이상을 실현하려 했다. 그런 스승의 죽음으로 조정에 나아갈 뜻을 접고 귀향한 양산보는 수신하며 자신을 수양하기에 가장 적당한 곳을 찾아 소쇄원을 지었다. 

소쇄원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송나라 때 명필인 황정견이 주무숙의 인물됨을 胸懷灑落 如光風霽月 (가슴에 품은 뜻의 맑고 맑음이 마치 비 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과도 같고 밝은 날의 달빛과도
같네)이라 노래한 싯구에서 따온 말이다. 현재 소쇄원이 남아있는 제월당이나 광풍각이라는 정자의 소쇄원 입구에 들어서면 우선 물가에 오리 세마리가 한가롭게 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먼 옛날부터 정지되어 있는 듯한 정원에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이 오리들이다. 이어서 만나는 것이 대숲길이다. 길지 않지만 좌우로 울창하게 들어선 대나무 숲길은 비밀의 정원에 들어선다는 인상을 받게 하며 대나무 가지로 정리된 울타리는 정갈함을 느끼게 한다. 응달진 이 대숲길을 지나면 신세계가 펼쳐지듯 밝은 빛이 가득한 계곡 안의 풍경이 들어온다. 산과 정원을 구분 짓는 것은 대문이 없는 담 하나다.
소쇄원을 조성하며 가장 먼저 지은 것은 대봉대 (待鳳臺)라고 한다. ‘봉황을 기다리는 정자’라는 뜻의 대봉대를 가장 먼저 지었다는 것은 소쇄원은 태평성세를 이룰 성군을 기다리는 소원을 담아 조성한 정원이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원래 소쇄원에는 여러 채의 전각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두 채의 건물만이 서 있다. 책을 읽고 공부하는 서재로서의 제월당(霽月堂)과, 손님을 맞이하고 환담하는 사랑방 역할의 광풍각(光風閣)이 그것이다. 

제월당은 주인 선비가 책을 읽으며 공부하던 서재이다. 소박하다. 작은 온돌방 하나에 마루가 딸려있을 뿐이다. 이 마루 위에는 이곳을 다녀간 수많은 선비들의 싯구가 걸려있다. 이곳에서 책을 읽고 시국을
논하고 유교의 이상을 논하였을 것이다. 제월당에서 광풍각을 바라보면 야트막한 담장으로 광풍각을 둘러, 찾아온 손님의 사적 공간을 들여다볼 수 없도록 배려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제월당에서 광풍각으로 가려면 작은 문을 지 나야 한다. 이 문의 높이는 낮아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조아리며 지나야 하는데, 이는 손님을 맞으러 가는 길에 하심(下心)과 겸손을 다시 한번 스스로 새기려 했음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 소쇄옹 양산보가 대봉대를 만들며 만백성이 태평성대를 누리는 이상세계를 꿈꾸며, 광풍각, 제월당이 비 갠 후 깨끗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의미하 듯, 이곳을 찾는 수많은 선비들은 이곳에서 유교의 이상향 동천을 작게나마 경험했을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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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쇄원은 조선 최고의 별서라는 유명세에 제법 규모가 있는 정원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규모가 작았다. 작지만 직접 정원을 걸어보며 생각해보면 조선 선비들의 이상이 느껴진다. 스승이 죽음으로 내몰린 더없이 암울한 시대에 좌절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새로운 이상세계를 꿈꾸는 ‘맑고 깨끗한’ 기개를 지닌 선비들의 영혼을 만날 수 있다. 여기엔 시대나 환경에 굴하지 않는 기개와 기필코 태평성대를 이루고자 이상세계를 소망하는 간절함을 후손에게 전하고자 했던 뜻이 깃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통일한국이라는 새로운 조국을 만들어 보겠다는 뜻이 담긴 ‘위대한여정-코리안드림대행진’의 깃발을 소쇄원 앞에서 흔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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