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듈러 건축은 주택뿐 아니라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발생 시 선별 진료소도 신속하게 조립해 제공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더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20층 이상의 일반 아파트를 모듈러 공법으로 지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정부의 장기적 로드맵이 필수입니다."
이상섭 한국건설기술연구원(KICT) 모듈러 클러스터장은 최근 아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한국 모듈러 주택의 현재와 미래 등을 설명했다.
모듈러는 주택뿐만 아니라 일반 건축물에도 적용되는 '생산성 향상'을 목적으로 개발된 공법이다. 흔히 정형화된 레고 블록과 같은 모듈을 공장에서 생산해 현장에서 적층 및 조립해 건물을 완성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일반 건설 공법에 비해 빠른 속도로 지을 수 있다는 장점으로 최근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회적 재난 발생시 신속한 긴급 시설 건축 가능"
KICT 모듈러 클러스터는 연구자 소통 및 결속력 강화를 통해 모듈러 건설 분야의 미래가치 창출을 위해 지난 2021년 8월 부로 신설됐다. 현재 구조연구본부, 건축연구본부 등 총 6개 부서에서 약 40명이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모듈러클러스터는 모듈러 건설의 제도, 정책, 기술 개발을 통해 모듈러 건설산업의 활성화와 시장 확대를 목표로 모듈러 건축의 합리적 공간 계획과 설계, 주거성능 향상, 법·제도·정책 개선 등을 연구하고 있다. 지난 4월 국내에서 가장 높은 모듈러 건축물인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에 준공된 지상 13층 모듈러 공동주택이 만들어지는 과정에도 KICT 역할이 컸다.
이상섭 클러스터장은 "용인시 행복주택은 2014년에 착수된 국가 R&D 과제 '모듈러 건축 중고층화 및 생산성 향상 기술 개발'을 통해 개발된 기술이 적용된 모듈러 건축물로 KICT가 주관기관으로 참여했다"며 "부지 공모서부터 설계 관여, 공사 진행 시 여러 가지 구조, 환경 등을 수시로 검토하며 건물의 완성도를 높였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모듈러 공법을 주택 건축에 국한하지 않고 사회 공공시설을 신속히 짓는 데 활용하는 과제를 진행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코로나19가 발생하며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선별진료소와 음압 병동을 접이식 모듈러로 만드는 것을 연구 중이다.
이상섭 클러스터장은 "현재까지 사용 중인 선별진료소는 컨테이너로 돼 있어 설치도 오래 걸렸고, 더운 여름철 냉방이 전혀 안 된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며 "접이식 모듈러 진료소를 만들면 평상시에는 접어서 보관하고 있다가 재난 상황 발생 시 현장에서 펼치기만 하면 돼 빠르게 공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선별진료소의 경우 1차적으로 기술 개발은 완료된 상태로 현재 시제품을 제작하고 있다. 다음 단계로는 산사태나 홍수 지진 등 자연재해가 일어났을 때 이재민들을 위한 임시 주거시설을 모듈러를 활용해 개발할 계획"이라며 "공공 목적으로 상용화가 되기 위해서는 2~3년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모듈러 공법 도입된 지 20년에 불과... 한국 건축 기술 개발 기회 적었다"
모듈러 건축 기술은 건물 층수, 주요 재료, 공사속도 등의 지표를 통해 단순하게 평가해 볼 수 있다. 현재는 영국, 호주 및 미국이 건물 층수에서 앞서 나가고 있다. 영국이 지난 2019년 세계에서 가장 높은 44층 철골 모듈러 건물을 완공했다. 이전에는 호주가 2016년에 43층 모듈러 건물을 완공했다. 콘크리트가 주재료인 PC 구조 공동주택의 경우 주로 싱가포르와 홍콩에서 발달해 있다. 대표적 사례가 싱가포르의 44층(2019년 완공)과 56층(2023년 완공) PC 공동주택이 있다. 중국은 공사 속도에서 남다른 기술력을 보이며 지난 2020년 1월 1000개 병상의 2층 임시병원을 열흘 만에 완공하기도 했다. 일본의 경우 2층 이하 단독 모듈러 주택이 발달되어 있으며 특히 생산시스템이 첨단화돼 있다.
위의 사례와 단순 비교하면 국내 모듈러 건축 기술이 다소 뒤처져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이상섭 클러스터장은 한국이 모듈러 건축 개발 시간이 부족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공법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 20여 년에 불과했고 현장타설 콘크리트 공법이 보편화된 상황에서 모듈러 건축 기술이 개발될 기회가 적었다고 생각한다"며 "최근 10여 년 전부터 국가 R&D 과제를 통해 저층 규모의 모듈러 건축물을 실증해 모듈러 건축기술이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했고 최근 완공된 13층 모듈러 공동주택을 통해 한층 더 도약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층을 높이 쌓기 위해서는 수십 톤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이동식 크레인 장비의 지원이 필수다. 현재 국내는 해외에 비해 이러한 이동식 크레인 장비 개수가 부족해 고층 모듈러 주택 제작의 한계가 있다"며 "예산으로 인한 장비 문제가 현실적인 문제일 뿐 기술력에서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모듈러 주택 산업, 국내 활성화 위해 장기적인 로드맵 추진 필요"
이상섭 클러스터장은 모듈러 주택 국내 활성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점으로 장기적인 정책 로드맵 추진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에는 사실상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상황이다. 정부가 좋은 기술이라고 판단하면 정책적으로 국가가 손해를 좀 보더라도 밀어줘야 하는데 이거를 책임지고 밀어주시는 분이 없다"며 "국토교통부 등에서 정책적인 제도적 기반을 현재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뒷받침해 주면 모듈러 공법이 주택을 넘어 다양한 분야로 확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국내 건축법 특히 주택법이 엄격해 해외에 비해 모듈러 공법을 통해 주택을 짓기가 힘들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바닥 난방도 필수고 층간 소음도 해결해야 한다"며 "이러한 건축법 등으로 인해 건설사들이 국내에서 모듈러 공법을 쓰기보다는 해외 쪽으로 수출하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 모듈러 주택을 국내에서 활용한다면 용적률 제한 완화 등 국내 정착 초기의 인센티브를 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개인적인 희망으로는 주민센터, 파출소 등의 공공건물 표준모델을 정부에서 만들어 이를 모듈러 공법으로만 제작해야 한다고 하면 시장이 활성화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표준화된 설계가 있어 설계도를 다시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에 업계에서 적극적으로 시장에 뛰어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그는 "모듈러 건축이라고 하면 컨테이너를 떠올리는 경향이 크고 컨테이너를 이용한 건축은 품질이 떨어진다고 사람들에게 각인이 돼 있다"며 "이런 잘못된 인식이 바뀔 수 있도록 품질이 우수한 모듈러 건축을 늘려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모듈러 건축에 스마트 기능이 더해져 더 나은 생활환경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하고, 설계·제작·시공 과정에서 4차 산업기술을 접목해 효율을 높이고, 기술 경쟁력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모듈러 건축이 나아가야 할 미래를 밝혔다.
이상섭 클러스터장은 향후 모듈러 건축이 더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20층 이상의 일반 아파트를 모듈러 공법으로 지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층 이상 아파트를 모듈러 공법으로 짓는 계획을 국가 R&D로 기획해 올해 제안했지만 선정되지는 못했다. 클러스터원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이 연구가 다시 추진되는 것이 클러스터장으로 가장 크게 희망하는 사항"이라며 "20층 이상이고 대평 평면의 모듈러 아파트를 실증해 모듈러 건축이 본궤도에 안착하는 계기로 삼고 싶다"고 앞으로의 목표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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