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출장 중에 도쿄 한 주류 전문 소매점을 찾았다가 이색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매장을 가득 채운 젊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위스키, 사케 등 고급 주류들을 캐리어에 한가득 쓸어 담고 있었다. 한손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국내 판매 가격과 구매 가능 여부 등을 살펴가며 열심히 매장 안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올해 초에는 해외 유명 위스키 판매 사이트가 한국 위스키 해외 직구족의 주문량을 감당하지 못해 한국발 주문을 틀어막는 일도 있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소비자들이 해외 직구로 위스키를 구입한 건수는 7만4950건으로 전년 대비 7배 넘게 폭증했다. 2019년(786건)과 비교하면 95배 수준이다. 금액으로 따져도 2019년 7만9790달러(약 9900만원)에서 2022년 664만3556달러(약 82억2000만원)로 크게 늘었다.
이렇게 해외에서 주류를 직접 구매하거나 해외 직구로 이용하는 소비자가 폭증한 이유는 결국 국내 소비자의 요구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주류에 부과하는 세금 체계 개편을 통해 소비자 부담을 낮추고 주류를 구매하는 방식을 다양화해 편의성을 늘리는 등 소비자 요구를 현장에 반영해야 한다는 과제를 풀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1949년 주세법 제정 당시 주류 생산·수입량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종량세를 채택했다. 하지만 1968년 주류 소비 억제와 세수 증대 차원에서 주류 가격에 따라 정해진 세율에 맞춰 세금을 부과하는 종가세 체제로 전환해 이어져 왔다.
그러다 2019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논란 속에 국산 맥주와 수입 맥주의 과세표준이 달라서 발생하는 조세형평성을 조정했다. 또한 고품질 원재료를 사용하면 가격이 올라 세금이 높아져 프리미엄 주류 개발을 저해한다는 업계 요구를 정부가 받아들여 맥주·탁주에 대해 우선적으로 종량세로 전환됐다.
다만 약주·청주·과실주 등 나머지 발효주와 소주·위스키 등이 포함된 증류주와 기타주류 등은 종량세 개편 논의 과정에서 소주 가격 인상에 대한 우려나 경쟁관계, 시장 구조 등을 고려한 반대 목소리 등을 감안해 맥주·탁주에 대한 종량세 전환 결과를 검토·재논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국가 중 30개국 이상이 종량세를 채택하고 있는 데에는 주류산업이나 조세형평성 등에 대한 고려도 있다. 그러나 과도한 음주로 인한 폐해를 막고자 하는 세계보건기구(WHO) 권고와 무관하지 않다.
WHO는 “음주의 사회적 비용 유발은 주류 가격이 아닌 알코올 함량 때문”이라며 “음주 폐해 예방을 위해 알코올 소비가 늘수록 세 부담이 높아지는 종량세를 기반으로 고도주일수록 세금을 많이 내는 방식이 적합하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 종량세를 채택하고 있는 대부분 OECD 회원국들은 종량세 제도를 기본으로 고도주·고세율 원칙을 고수하는 가운데 각 국가별 고유 주종에 대한 세제상 우대 조치와 소규모 주류 제조에 대한 지원 등을 병행하고 있다.
최근 K-위스키나 전통주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젊은 세대들을 위한 프리미엄 국산 주류를 선보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도 현행 종가세 체제보다는 다양한 원재료를 활용해 고품질 주류를 생산할 수 있는 종량세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산 위스키를 생산하는 한 위스키 업체 대표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국내 위스키 산업의 성장을 위해서는 세금 구조 혁신과 비효율적인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주류 전문가들 역시 주세법 개편에 대해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내수 시장에서 프리미엄 술이 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류 무역수지 적자 개선을 꾀하는 한편 가격 인하를 통한 소비자 후생 확대와 신규 설비 투자, 고용창출 등을 통한 주류 산업 경쟁력 강화를 꾀해야 한다는 취지다.
올해 국정감사 이슈를 분석한 국회 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주세 과세 방법 논의에 대해 조세 수입, 음주의 사회적 비용, 소비자 후생, 관련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일본 사례와 같이 소주와 위스키 등 증류주를 각각 20도와 37도 기준으로 1도당 일정 세율을 가산하는 방식으로 변경하거나 종가세와 종량세를 혼합 운영한 후 단계적으로 종량세 비중을 확대하는 등 다양한 대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주종별로 접근 방식을 달리해 소주 가격 인상 등에 대한 우려가 높은 증류주와 구분해야 한다. 약주·청주·과실주 등 상대적으로 우려가 낮고 국내 전통주업계에서도 종량세 전환 요청이 높은 주종부터 순차적으로 종량세를 도입하는 방법 등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전통주업계에서는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련 부처에 설령 주세 부담이 일정 부분 증가한다고 해도 종량세 개편을 통해 프리미엄 주류 개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꼭 필요한 변화라며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이런 종량세 개편 논의와 함께 소비자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온라인 주류 구매다. 해외 직구로 구매하면 집에서 편하게 받아볼 수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국내에서 주류를 구매하는 것이 더 불편하고 오히려 역차별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이 이런 이유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유통시장 규모는 지난해 402조원을 찍으며 처음으로 400조원을 돌파했다. 이 온라인 시장이 175조원으로 전체 중 절반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가속화됐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소비자 쇼핑 플랫폼의 변화와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의 인프라가 성장하면서 주류 산업에도 이러한 변화가 적용되기 시작하고 있다.
2020년 국세청은 스마트오더 방식의 주류 판매를 허용하는 내용의 통신판매 관련 규정을 개정했다. 이는 주류를 온라인으로 주문·결제(비대면)한 후 지정한 소매점에 방문(대면)해 제품을 직접 수령하는 거래 형태다. 스타벅스 ‘사이렌오더’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카페 등 일반 음료 등에서는 널리 활성화돼 있던 방식이 주류업계에 도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목해 봐야 할 점은 소비자 편의성 확대 차원에서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된 주류 스마트오더가 이끌어내고 있는 변화다.
세상의 변화 속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던 주류산업에 대해 변화를 촉구하는 소비자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수십 년간 유지돼 온 세제나 주류 구매 환경에 익숙해진 상황에서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각 사업 주체들이 져야 할 부담이 일정 부분 늘어나는 것을 용인해야 한다. 인구 감소에 따른 음주량 감소 등 앞으로 다가올 더 큰 변화의 바람에 슬기롭게 대비하는 노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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