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만에 강제추행 범위 넓어졌다...'저항 곤란→공포심 유발' 기준 변경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장한지 기자
입력 2023-09-21 15:5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대법 "비동의 추행죄 인정하자는 취지 아냐"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대법원이 강제추행죄 유무죄 여부를 결정할 때 '저항이 곤란한 정도'에서 '공포심을 일으키는 정도'로 판단 기준을 변경했다. 강제추행죄의 판단 기준이 완화하면서 가해자의 처벌 범위가 넓어지게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1일 성폭력처벌법 위반(친족관계에 의한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A씨는 2014년 8월 당시 15살인 사촌 동생 B양의 왼손을 잡고 자신의 성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B양이 이를 거부하고 집에 가려고 하자 A씨는 "한 번만 안아줄 수 있느냐?"며 B양을 양팔로 끌어안은 다음 침대에 쓰러뜨린 뒤 위에 올라타 반항하지 못하게 했다. 이후 B양의 가슴을 30초 동안 만지고 약 1분 동안 끌어안는 등 강제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보통군사법원에서 진행된 1심은 A씨의 강제추행 혐의를 유죄로 보고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고등군사법원에서 진행된 항소심 재판부는 A씨의 물리적인 힘의 행사 정도가 저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였다고 볼 수 없다며 강제추행죄의 폭행‧협박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만져 달라', '안아봐도 되냐'는 등의 말은 객관적으로 피해자에게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을 정도의 공포심을 느끼게 하는 말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A씨의 물리적인 힘의 행사 정도가 피해자의 저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였다고도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폭행·협박이 없더라도 위력을 행사한 사실이 있으면 인정되는 아동청소년성보호법상 위계 등 추행 혐의만 적용해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강제추행죄 판단 기준을 변경하고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기존에는 강제추행죄가 성립되려면 피해자로 하여금 '항거(저항)를 곤란하게 하는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이 요구됐다. 그러나 대법원은 폭행 또는 협박이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하는 정도를 요구하지 않고, 상대방의 신체에 대해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폭행)하거나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라고 봐야 한다고 판단 기준을 변경했다.

이 사건에 새로운 판단 기준을 적용하면 A씨의 행위는 B양의 신체에 대해 불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강제추행죄에서 추행의 수단이 되는 '폭행 또는 협박'에 대해 피해자의 항거가 곤란할 정도일 것을 요구하는 종래의 판례 법리를 폐기한다"며 "상대방의 신체에 대해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하거나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해악을 고지해 상대방을 추행한 경우에 (강제추행죄가) 성립한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강제추행죄와 관련해 대법원이 1983년도부터 상대방에 대해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해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여야 한다고 한 종래의 판례 법리를 40여년 만에 변경했다"며 "범죄 구성요건의 해석기준을 명확히 함으로써 사실상 변화된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현재의 재판 실무와 종래의 판례 법리 사이의 불일치를 해소하고, 형평과 정의에 합당한 형사 재판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다만,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을 법문언 그대로 해석하자는 취지이지 법해석만으로 '비동의 추행죄'를 인정하자는 취지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