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6일 발표한 주택공급활성화 방안의 핵심은 '빠른 공급 속도'과 원활한 자금조달을 위한 '금융 지원'이다. 공공택지 전매제한 완화, 각종 인허가 절차 단축 등을 통해 건설사의 사업여건을 개선하고,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금융공급을 확대해 건설업계의 ‘돈맥경화 현상을 풀어주는 게 골자다.
주택 가격의 직접적인 자극을 방지하면서도 비아파트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사업기준을 완화하고, 청약자격 문턱도 낮춰 실수요자가 진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점도 특징이다. 시장에서는 공급대란 우려가 나오는 상황을 반영한 시의적절한 대책이라는 평가와 과도한 규제의 정상화를 요구했던 수요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반쪽짜리 대책'이라는 반응이 동시에 나온다.
◇3기신도시, 신규 택지조성해 공급물량 확대...인허가 패스트트랙, PF 지원도 강화
이번 대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수도권에 12만 가구 가까운 물량을 추가로 공급해 공급경색 우려가 ‘집값 불쏘시개’로 작용하는 것을 막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점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올해 1∼8월 주택 인허가 물량은 21만3000가구로 전년 동기 대비 39%, 착공 물량은 11만4000가구로 56% 감소했다. 금융비용 상승과 원자잿값 인상 등으로 주택사업 여건이 나빠지면서 인허가를 받아놓고 착공하지 않는 사업장이 점점 늘고 있다는 의미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사업여건이 악화돼 착공대기물량이 40만 가구를 넘어가는 등 단기적으로 주택공급이 많이 위축된 상황"이라며 "공급 속도를 막고 있는 장애물을 풀고, 법 개정없이 할 수 있는 공급규제는 최대한 완화해 공급이 부족해 집값이 상승할 수 있다는 국민의 불안감을 최대한 불식시키겠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요를 늘려서 시장가격에 영향을 주는 방안은 최대한 배제하고, 공급과 금융면에서만 '막힌 혈'을 풀겠다는 게 정부의 기본 방침"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먼저 3기 신도시 공급 물량은 3만가구 이상 늘린다. 면적 330만㎡ 이상인 3기 신도시는 남양주 왕숙(5만4000가구)·왕숙2(1만4000가구), 하남 교산(3만3000가구), 인천 계양(1만7000가구), 고양 창릉(3만8000가구), 부천 대장(2만가구) 등 5곳으로 모두 17만6000가구다. 광명 시흥(7만가구), 안산 장상(1만5000가구) 등 기타 공공주택지구까지 합치면 36만4000가구다.
3기 신도시 물량은 공원녹지(34%)와 자족용지(14%) 비율을 축소해 주택용지를 늘리고, 평균 196%인 용적률을 높여 확대한다. 진현환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지방자치단체와 협의가 완료된 물량만 3만가구로, 추가 협의가 진행되면 물량은 추가로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신규 공공택지 조성 물량은 기존 15만가구에서 17만가구로 늘어난다. 앞서 정부는 김포한강2(4만6000가구), 평택지제역 역세권(3만3000가구), 진주 문산읍 일대(6000가구) 등 8만5000가구 규모 신규 택지 조성을 발표한 뒤 6만5000가구 추가 발표를 앞두고 있었다. 이 물량에 2만가구를 더해 오는 11월 총 8만5000가구 규모의 신규 택지를 발표한다.
택지는 서울 반경 30㎞ 이내에 1만∼2만 가구 규모가 될 전망이다. 국토부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등 광역 교통망을 고려해 후보지를 선정하겠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민간 사업이 진행되지 않고 있는 공공택지를 공공주택사업으로 전환해 5000가구 물량도 추가로 확보했다.
사업성도 개선한다. 공공주택은 패스트트랙을 도입해 지구계획과 주택사업계획을 동시에 승인한다. 이를 통해 4~6개월 이상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주택사업계획 승인에 필요한 각종 영향평가를 완화하고, 지방공사 공공주택사업 타당성검토도 면제해 10개월 이상 사업기간을 단축한다.
내년 뉴:홈 사전청약은 1만가구 가량 공급한다. 3기 신도시 부지조성공사를 올해 마치고, 4분기 인천계양부터 주택착공을 시작한다. 공공도심복합사업을 통해 연내 1만가구 지구지정도 마칠 계획이다.
공동주택용지 전매제한도 1년간 한시적으로 완화한다. 현행 규정은 건설 사업자가 부실 징후 기업이거나 부도 또는 파산 상태여야 전매를 허용한다. 앞으로 1년간은 이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토지를 분양받은 업체가 계약 후 2년이 지났다면 1회에 한해 최초 공급가 이하로 다른 사업자에게 용지를 넘길 수 있다.
다만 '벌떼입찰'을 차단하기 위해 계열사 간 전매는 금지된다. 자금력과 사업 추진 의지가 있는 시행·시공사는 알짜 공공택지를 매입해 주택공급에 나설 수 있다.
기존 분양사업을 임대사업으로 전환할 수 있는 민간임대공모는 연 1만가구에서 2만가구로 확대한다. 또 공사 과정에서 사업자들이 늘어난 공사비를 원활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표준계약서'를 활용해 공사비를 조정하고, 민간참여 공공사업의 경우 증액 반영기준을 정비한다.
앞으로 건축허가시 교육영향평가도 통합심의에 포함해 인허가 기간을 단축키로 했다. 건축, 경관심의도 통합심의 도입을 추진한다. 이밖에 건설현장 외국인 인력 확충을 위해 채용쿼터제를 확대하고, 재건축부담금, 실거주의무 폐지 등 입법 과제도 국회와 적극 협의할 예정이다.
사업장의 원활한 자금조달을 위해 PF대출 보증 규모도 확대한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주택금융공사의 PF보증규모를 각각 15조원, 10조원으로 편성해 전체 보증규모는 15조원에서 25조원으로 늘었다. 전체 사업비의 최대 50% 한도 내에서 가능했던 PF대출 보증의 대출한도도 70%까지 늘어난다. 중도금 대출 지원을 통해 HUG 중도금대출 보증 책임비율도 현행 90%에서 100%로 늘어난다.
연립·다세대주택, 오피스텔 등 비(非)아파트 사업성도 개선된다. 우선 비아파트 건설자금을 기금에서 1년간 한시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대출한도는 호당 7500만원, 금리는 최저 연 3.5%다. 만약 사업자가 비아파트를 공공지원 민간임대로 건설·활용하면 9000만~1억4000만원 한도로 기존(7000만~1억2000만원)보다 더 대출받을 수 있다. 도심에서 임대형 기숙사를 임대주택 등록 대상에 포함해 건설할 경우에는 취득세·종합부동산세·양도소득세 감면 혜택이 더해진다.
건설공제조합 보증도 신설한다. PF 대출 시 부가되는 건설사의 책임준공 의무에 대해 조합이 이행보증을 서고, 사업자 대출(본 PF·모기지) 지급보증도 각각 3조원 규모로 지원한다. 또 청약 시 무주택으로 보는 소형주택 기준 공시가격을 수도권 1억3000만→1억6000만, 지방 8000만→1억원으로 높이는 등 규제를 일부 완화한다.
◇공급 물량 늘려 시장 안정시킨건 긍정적 vs 수요없는 공급대책으로는 한계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에 대해 주택 공급의지 표현을 분명히 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분양시장 청약 양극화와 물가상승, PF대출 냉각에 따른 주택공급 위축을 해결키 위한 정부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었다"며 "건설사 유동성 공급, PF사업장 유형별 맞춤 지원 등을 통해 부실 확산을 막고 전반적인 주택공급에도 속도를 내기위한 보완책을 마련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은 "지금처럼 시장이 꺾인 상황이 오히려 '규제 완화를 통한 시장 정상화'를 실행하기에 최적의 타이밍"이라며 "시장 상황이 바뀔 때를 대비해 이번 대책 처럼 여러 규제요인을 미리미리 조정해두는 것은 바람직한 대응"이라고 평가했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도 "현재의 공급 지표 축소 이슈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으로는 공공에서 적극적으로 물량을 확대하고, 중장기적으로는 민간 참여를 적극 지원해야 하는데 이번 대책에서 이런 부분에 대해 전반적으로 언급한 것은 긍정적"이라며 "이제부터는 속도감 있는 실행력 담보가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PF 지원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MD비즈니스학과 교수)는 "주택수요자의 대출은 제한하고 공급자 대출은 풀어주는 정책으로는 시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현재 부동산 시장의 흐름은 대출, 세금, 미분양 등 공급과 수요 측면에서의 문제들이 모두 맞물려 연계된 것인데 수요는 누르고 금융은 풀겠다는 방식은 부작용이 나올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연구소장은 "PF대출 확대 등 공급금융 문제를 풀어내면 주택시장에 일부 도움은 될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건설사들이 이번 대책만으로 착공에 나선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구체적인 개발 계획이 나오면 더 도움이 되겠지만, 공급 대책만으로 주택 공급이 늘 것이라고 기대하기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시장의 한 축인 수요 측면에서의 대책이 빠진 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서 대표는 "주택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려면 시장의 한 축인 수요 측면에서도 유인책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집을 사려는 사람이 많아져야 주택 건설업자들도 서둘러 집을 더 많이 짓게 돼고 집값이 안정되는 효과로도 이어진다"고 말했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위원은 "예전에는 공급이 먼저 달려가면 수요가 쫒아가는 모습이 나왔지만 현재 시장은 그렇지 않다"며 "수요가 많아야 공급도 잘되는 건데 이번 대책에서는 수요 측면이 빠져있어 공급 효과도 크게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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