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드림 대행진] 자유롭게 나를 표현하는 자신감 …한류의 원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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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수 작가
입력 2023-10-02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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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수 오송씨와 함께 한류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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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수원 밤밭공원에서 백운호수까지 걸었다. 거리상 그리 길지 않은 코스다. 도심에 들어올수록 걸을 수 있는 코스는 제한된다. 예전부터 있던 삼남길(현재는 코리아트레일)은 아파트나 도로건설로 원래 길은 없어지거나 변경되었다. 그래도 남아있는 산림이나 녹지를 통해 과거의 길을 재현해 놓고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요즘은 걷는 사람들이 많아져 각 지자체별로 하천이나 산에 걷기 좋은 둘레길을 내고 있어 걸을 수 있는 공간은 예전보다 더 많아졌다. 아직도 서울로 향하는 코스가 자동차 길만이 아니라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길이 보존되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오늘 <위대한여정-코리안드림대행진> 41번째 구간을 함께 걷는 이는 가수 오송씨다. 그와 나이 차이는 꽤 나지만 함께 이야기 하다보면 그가 쓰는 용어나 정신세계는 범상치 않다. 그와는 12년 전 일본에서 그가 속해 있는 아이돌그룹 FIX를 런칭하면서 부터다.  남성3인조 그룹인데 노래는 기막히게 잘했다. 그 가운데 오송씨는 정말 키 크고 잘 생기고 노래 잘하는 거기에 인성까지 좋은 훈남 그 자체였다. 당시 한류에 대한 이미지도 좋은 상태라 이들을 일본에 런칭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을 듯했다.

그러나 현실은 쉽지 않았다. 아무리 한국 호떡을 사 먹기 위해 10미터의 줄을 서고 한국 연예인인 온다면 공항에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든다고 해도 내 팬을 만든다고 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우리는 FIX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신오쿠보 극장에서 매일 공연을 열었다. 방송사, 언론사는 물론 멀리 있는 지역축제에도 다녔다. 그 가운데 후쿠시마 부흥축제에 가서 지진과 쓰나미로 고통받는 주민들을 위한 공연은 지금도 마음에 남는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는 쓰나미에 의한 피해보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로 인한 풍평(바람처럼 떠도는 소문)피해가 더 심했다. 후쿠시마 해산물은 물론이거니와 농산물, 공산풍도 후쿠시마산은 외면되었고 사람들마저 만나길 꺼려했다. 이런 이들에게 한류 스타가 와서 위로공연을 해주는 것에 대해 주민들은 감동했고 무척 고마워했다. 나는 이런 것이 한류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국민학교를 다닌 세대다. 국민학교와 초등학교의 차이를 모르겠지만 1996년부터 일제잔재청산 차원에서 ‘국민’을 ‘초등’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우리 안에서 통용되는 ‘일제’는 열등감의 대리충족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열등감을 숨기거나 해소하기 위해 상대를 비하하거나 부정하는 것이다. 일본에 의해 식민통치를 받았다고 하는 역사적인 치욕에서 벗어나는 길은 일본을 비방하거나 야유 혹은 부정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일본보다 더 힘있는 나라, 일본보다 더 멋진 나라를 만들면 되는 것이다.

한일간의 문화개방은 한국의 정치적 결단이었지만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했다. 7080 이전 세대는 일본에 대한 부러움과 열등감을 해결의 길을 일본을 야유하고 배척하고 부정하는 것에서 찾았다. 일본을 배우고 일본 것을 익혀 더 좋은 것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나 의욕마저 ‘친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들은 겉으로는 일본을 무시하고 깔보는 거 같지만 속으로는 일본을 부러워했다. 그래서 반일을 외치면서 뒤로는 이자카야에 가서 사케를 즐겼다.

문화에 대한 자부심은 자기 문화에 대한 우월감을 갖고 남의 문화를 얕잡아보고 깔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대문화를 인정하고 교류하며 뭔가 배울 점이 없는가를 찾는다. 이제 세상은 글로벌화되어 타인종과 더불어 살고 타문화를 적극 받아들이고 향유하는 사람이 선진 시민이며 인류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글로벌 시민의식이다.

한류가 세계적인 붐을 일으키고 세계인들이 즐기는 문화가 된 것은 한국문화의 독특함만이 아니다. 한국 문화에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수용할 수 있는 넉넉함과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이를 우리는 접화군생(接化群生)이라고 한다. 타 문화를 배제하지 않으며 수용하면서 더 즐겁고 가치 있는 문화로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문화개방정책은 한국문화의 글로벌화이며, 한류의 글로벌화는 절대로 문화를 무기로 한 타 문화에 대한 정복이나 침략의 개념이 아니다.

개인의 독립된 실체가 되는 것을 인격완성이라고 한다면 이 독립은 자기 우월성에 빠지는 것이 아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민족, 국가의 레벨에서도 마찬가지다. 김구가 말한 문화강국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마음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오, 경제력도 아니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우리 국조(國祖) 단군(檀君)의 이상이 이것이라고 믿는다.”

가수 오송씨는 요즘 발라드 가수가 아닌 트롯에 새롭게 도전하고 있다. 지난해는 MBN에서 주최한 ‘불타는 트롯맨’에 도전장을 내밀기도 했다. 그의 발라드 곡에 익숙한 나이지만 요즘 그의 트롯에는 인생의 무게가 조금 실려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전 동경의 작은 동네였던 신오쿠보를 한류의 메카로 만드는 데는 많은 예술인들과 상인들의 노력이 있었다. 그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지만 젊은 날 그의 노래가 일본의 한류발전에 한 역할을 했다고 나는 믿는다. 일본에서 돌아와 그는 남양주에서 ‘어메리칸 트레이’라는 레스토랑을 운영했다. 크지 않은 가게지만 착실하게 사업기반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매출은 줄지 않았고 먹고 살만 했다.

착실하게 가게 운영하며 괜찮은 사업주로 사는가 싶었는데 마음 속에는 ‘내가 이래도 되는가.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 하는 고민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느닷없이 학생시절 처음 자신을 이끌어 주었던 엔터테인먼트 사장으로부터 다시 음악을 하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처음엔 거부했지만 자신 안에 살아있는 끼를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한다.

트롯은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다. 삶은 운명인 거 같기도 하지만 매번 새로운 도전인 거 같다는 게 그의 말이다. 이렇게 새롭게 도전하는 삶이 자신의 운명일지도 모르겠다고도 말한다.  MBN에서 주최하는 ‘불타는 트롯맨’에 출전해  1라운드는 통과했지만 2라운드에서 최종 우승자와 붙게 되어 탈락했다.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해 대진표에 대한 불만, 팀원에 대한 서운함 등 외적인 요인이나 심지어는 나를 떨어뜨리기 위한 조작음모 이런 것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망상까지 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자신의 실력이며 현주소라고 받아들이며 자신만의 색깔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나이도 있고 지금 뜨지 않으면 기회가 없다는 절박감도 있지만 그것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참가자 모두가 다 같은 처지지요. 그것은 음악계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이런 극한 경쟁사회에 살고 있다고 봅니다.

저도 요즘 걷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걷는 것은 남과 경쟁하여 이기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의 대화이며, 나를 이기려고 하지 말고 나를 내려 놓고 삶을 즐겨보자. 뭐 이런 말은 굉장히 사치스런 말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욕심을 내려놓자’ 이런 말이 내면에서 들려오네요”

그는 삶은 내면의 나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지 남과 싸워 이기는 과정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고 한다. 물론 남과 경쟁하고 경연에서 이겨야 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이제는 경연을 나를 더 발전시킬 기회라고 생각하니까 경쟁의 늪에서 벗어나는 거 같다고 말했다.

한류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음악인들과 예술인들이 이런 마음과 자세를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자신감이다. 삶에 굴곡이 있고 다양해질수록 문화의 폭은 더 넓어어진다. 더 많이 경험하고 깨이고 쓰러지고 좌절하고 아프고 상처 난 그 삶을 예술로 표현할 때 그 소리에 한을 얹었다 하고, 그 그림엔 혼이 깃들어 있다고 말하지 않을까 싶다. 나도 그런 소리꾼, 그런 가수, 그런 예인, 아니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의 노래 ‘일장춘몽’을 들으며 오늘도 걷는다.
아마 이 세상은 한바탕 꿈일지도 몰라
깨어나면 아스라이 봄날처럼 아주 짧은 꿈

아마 인생이란 한바탕 꿈일지도 몰라
알고 나면 아스라이 바람처럼 사라지는 꿈

누구나 딱 한 번 놀다가는 인생 걱정만 짊어지고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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