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타 요시히로의 한일 풍경
오가타 요시히로 ogatayoshihiro@gmail.com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緒方義広. 연세대 정치학박사. 전)홍익대 조교수, 전)주한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
자니즈 사무소(Johnny&Associates, 이하 자니즈)는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고 팬도 많은 J-팝(POP)을 대표하는 연예 기획사다.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SMAP이나 V6, 아라시(嵐) 등이 이곳 기획사 아이돌 그룹이었다. 그런데 최근 자니즈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아니, 자니즈뿐만 아니라 일본 연예계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나아가 일본 사회의 인권 의식과 미디어가 가져야 할 본연의 자세를 되묻는 사건이 벌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지난 3월 영국 BBC가 'J팝 포식자 : 숨겨진 스캔들(Predator : The Secret Scandal of J-pop)'
자니를 둘러싼 성추문은 J-POP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나조차도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였는데, 사실 그것은 ‘소문’이 아니었다. 2003년 재판부에서 자니의 성 가해 사실을 인정한 바 있기 때문이다. 1999년 한 주간지에서 자니가 소년들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사실을 보도했고, 이에 대해 자니 본인과 자니즈가 명예훼손으로 주간지를 고소한 재판이었다. 사실 이전부터 자니즈를 떠난 연예인들이 피해 사실을 꾸준히 호소해왔으나 주요 언론사에서 이를 거론하는 일은 거의 없었고, 여론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남성이 성범죄의 피해자가 된다는 게 믿기지 않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이유는 그뿐만이 아닐 것이다. 피해자의 증언은 매우 구체적이고 충격적이었으며 사법부에서도 그 만행이 사실로 인정되고 있었지만, 정작 일본 사회에서 자니의 성적 학대 문제는 그저 ‘소문’으로만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최근에서야 밝혀진 사건의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이미 자니즈 측에서 확인했다고 한 피해자만 478명이고, 아직 목소리를 내지 못한 피해자까지 더하면 그 규모는 수천 명에 이르지 않을까 이야기되고 있다. 또한 자니가 30대 때부터 87세에 사망하기까지, 50~60년에 걸쳐 아동 및 10대 소년들에 대한 성적 학대가 이어져왔다고 한다면 아마도 세계적으로도 전대미문의 대범죄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대범죄가 왜 일본 내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까. 그것은 역시 자니라는 인물이 키워온 자니즈라는 연예 기획사가 큰 영향력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연예계에 머무르지 않고, 일본 사회에 있어서 ‘자니즈’의 존재감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예를 들어, 한국의 SM, YG, HYBE 등의 기획사를 모두 합친 것보다도 영향력이 크다고 하면 짐작할 수 있을까? 그만큼 일본의 TV를 켜면 자니즈 소속 연예인이 나오지 않는 날, 시간대는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가요 프로그램과 예능, 드라마뿐만 아니라 스포츠 프로그램과 뉴스 프로그램에서조차도 자니즈 소속 연예인을 볼 수 있다. 즉, 일본의 TV 방송은 자니즈의 연예인을 제외하고는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미디어 특히, TV 방송국에서는 자니즈에게 미움을 받고 싶지 않았고, 자사의 콘텐츠를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자니즈를 비판할 수 없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었다고 한다. 자니를 둘러싼 ‘소문’을 몰랐던 것이 아님에도 침묵했던 것은 자니즈와 언론의 비정상적인 관계 때문이었다. 그러나 외신의 고발로 가해자인 자니의 사후에야 그 범죄 사실이 주요 언론에서 크게 다뤄지게 됐고, 자니로 인한 피해자들이 여러 명 전면에 나서자 국제사회도 주목하게 되었다. UN인권이사회 조사단이 일본을 방문해 피해자들로부터 청취도 이뤄졌고, 그제서야 성범죄 사실을 자니즈 측에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문제가 공론화된 뒤 자니즈는 지금까지 두 차례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하고, 향후 대응에 대해 설명했다. 자니즈가 그런 자리를 마련한 것 자체가 일본 사회에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동안 사장을 맡고 있던 자니의 조카 후지시마 줄리 게이코(藤島ジュリー景子)가 물러나고, 사장 자리에는 소속 연예인이자 전 아이돌 그룹 ‘소년대(少年隊)’의 히가시야마 노리유키(東山紀之)가 취임했고, 부사장 역시 아이돌 그룹 ‘V6’ 출신의 이노하라 요시히코(井ノ原快彦)가 맡았다. 자니가 생존해 있던 당시의 자니즈 간부는 전면에 나서려고 하지 않고 있다. 가해 기업으로서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보상을 담당할 책임자 또한 소속 연예인이라는 것은 신기한 체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 가운데 1차 기자회견에서 사과는 이뤄졌지만, ‘자니즈 사무소’라는 이름은 남기기로 한 것을 두고 많은 비판이 일었다. 그 결과, 2차 기자회견에서는 가해자의 이름을 딴 소속사의 이름을 ‘SMILE-UP.’으로 바꾸는 동시에, 연예 기획사로서의 활동은 멈추고, 피해자에게 보상하는 회사로 존속시킨 후 폐업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자니즈의 이름을 딴 관련 기업들도 모두 명칭을 바꾸고, 현재 소속 연예인은 새로 설립하는 새 회사와 에이전트 계약을 맺는 형태로 진행할 것이며, 새 회사와의 계약 체결 여부는 각 소속 연예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맡기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보상에 대해 자니즈(SMILE-UP.)는 법적인 기준을 넘어 성의를 다하겠다고 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보상의 범위나 방법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피해와 그것을 은폐해온 자니즈의 실태에 관해 구체적인 조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목소리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 신임 사장 히가시야마에 대해서도 자니의 범죄를 못 본 척 해온 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소속사 후배들에 대한 본인의 성추행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문제를 수습하기 위해 열린 2차 기자회견에서는 자신들에게 곤란한 질문을 할 것 같은 기자 명단을 사전에 작성해 그들에게는 질문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 진심으로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다.
또, 질문하지 못한 기자들이 소란을 일으키자 부사장 이노하라가 “아이들도 보고 있다. (성범죄) 피해자 분들이 자신들의 일로 이렇게 옥신각신하고 있구나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룰을 지키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며 기자를 달래려고 한 것도 물의를 빚고 있다. 성범죄를 저지른 가해자 측에서 할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당시 이노하라의 발언에 그 자리에 있던 다른 기자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아동 성범죄 사실과 그 책임을 밝혀야 할 자니즈 측이 아동과 피해자를 보호하는 듯한 말로 기자를 달래고, 본래 가해 기업을 규탄해야 할 언론이 반대로 그 대응을 칭찬하는 이상한 광경이야말로 이 문제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후 언론에서는 사전에 작성된 이 기자 명단을 둘러싸고 기자회견을 준비한 컨설턴트 회사의 독단인지 자니즈 측이 알고 있었는지 등의 내용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말로는 성범죄를 막지 못한 언론에도 책임이 있다며 자성하는 듯한 자세를 보이지만, 여전히 문제의 핵심을 파고드는 보도가 아닌 가십에 치우친 보도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자니즈 연예인들에 대한 팬심이나 애꿎은 소속 연예인들의 처지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그것과 성범죄 피해자 문제의 본질을 동등하게 거론하는 것에서는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은 한 연예 기획사의 스캔들에 그치지 않고, 일본 사회의 인권의식과 미디어가 가져야 할 본연의 자세를 되묻는 문제가 되고 있다. 나 자신도 지난해 한국 대학에서 일본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그 차이를 새삼 피부로 느끼는 중이다. 물론 어느 쪽이 낫다, 나쁘다를 비교해봤자 의미는 없다. 다만 한국에서는 이미 의식이 미치고 있는 부분이 일본에서는 아직 의식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 부모들 중에는 일본 TV 프로그램이 너무 비인권적이어서 어린 자녀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지하철 안에 성인잡지 광고가 공공연히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얼굴을 찌푸리는 외국인도 많았을 것이다. 어린아이를 비롯해 누구나 볼 수 있는 편의점 잡지 코너에도 성인잡지가 버젓이 놓여 있는 것이 문제시되기 시작한 것도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2018년 전 세계적으로 ‘미투(MeToo)’ 운동이 주목받았을 때 한국에서는 다양한 업계에서 그 영향이 나타나면서 한국 사회 전반의 인식에 큰 변화가 생겼다. 물론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는 백래시(backlash)나 갈등이 생긴 것도 사실이고, 그것은 바람직한 상황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그 미투 운동의 파급효과가 지극히 한정적이었고, 당시 아직 한국에 살고 있던 나에게는 일본만 세계와는 동떨어진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편, 일본에서도 조금씩 변화는 나타나고 있다.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이 일본에서 큰 주목을 받은 것 또한 그 변화 중 하나일 것이다. 책의 무대가 한국이기 때문에 내용에 대한 거부감 없이, 그리고 자신의 일로 절실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에 큰 주목을 받았다고 나는 생각하지만, 일본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는 주제였기 때문에 화제가 된 것 또한 틀림없는 사실이다. 한국 사회의 경험에 관심을 보이며, 그것을 일본과의 공통 과제로 보는 사람들이 일본 사회 내에서 늘고 있다고 느낀다.
다만, 자니의 성범죄 문제와 그 대응을 둘러싼 현재 진행 상황에 대해서는 낙관할 수 없다고 본다. 이 문제가 일본 사회에서 ‘책임지는 방법’이나 일의 결정을 이끄는 ‘과정의 문제’를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공론화시킨 계기였던 BBC 다큐멘터리 속에서도 일본 사회는 마찰을 피하고, 때로는 그것이 자기검열을 낳고 있다는 점, 아직도 일본 사회는 못 본 체하려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책임 추궁 과정에서는 핵심에서 벗어난 이야기에 논의가 집중되고, 세간의 관심은 본질에서 어긋난 방향으로 모아진다. 문제의 핵심 책임자를 모호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방대한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고,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는 신중하고 섬세한 논의가 추구된 나머지 문제의 핵심에는 도달하지 못한 채 어느새 종식되고 만다. 이것이 바로 일본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논의 양상이다.
이번 자니즈 성범죄 사건에서는 무엇보다 피해자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이행되고, 그들의 존엄성이 회복되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러나 이미 조금씩 지적되고 있듯이, 이 문제를 한 고인에 의한 성범죄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 범죄를 용서하고 은폐해온 주변과 그 기회가 있었음에도 피해를 막지 못한 사회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검증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을 둘러싼 논쟁을 계기로 일본 사회의 인권의식과 사회구조, 그리고 사람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 변화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오가타 요시히로(緒方義広) 주요 이력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연세대 정치학박사 ▷전 홍익대 조교수 ▷전 주한 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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