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사회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연관된 러·북 밀월관계라는 새로운 변수와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이라는 예상치 못했던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 두 가지 국제정세가 한반도와 국제사회에 미치는 파급영향을 살펴보자.
지난 9월 13일 러·북 정상회담이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열렸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 간의 정상회담은 국제사회의 시선을 끌었다. 정상회담이 개최되기 전부터 한국과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에서 회담 내용에 주목하면서, 향후 우크라이나 전쟁과 한반도에 미칠 파급영향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었다. 국제사회에서는 러시아와 북한을 겨냥하여 “왕따 국가(pariah state)”라고 지칭하고 있다. 사실상, 러시아와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국가이다. 푸틴 정부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세계 각국으로부터 제재를 받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으며, 김정은 정권도 비핵화를 거부하고 한반도와 미국을 겨냥하여 핵·ICBM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어 국제사회로부터 제재를 받고 있다.
러시아와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왕따들의 만남”이라는 비난까지 받으면서 정상회담을 추진한 배경과 향후 파장은 다음과 같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장기화함에 따라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탈피하고 전쟁을 지속하기 위해 전쟁물자를 확보하는 것이 시급한 상황이며, 북한도 최근 한·미·일 간의 안보협력 구도가 강화되자 불안감을 느끼면서 북한과의 뜻이 맞는 지원군이 필요했으며 식량부족 해결, 첨단기술 확보가 절실하였다. 북한은 올해 두 번씩이나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실패하여 러시아로부터 기술이전이 필요한 실정이다. 러·북 정상회담에서 회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았지만, 군사전문가들은 러·북 양측이 북한의 무기·탄약과 러시아의 첨단 군사기술 이전을 맞교환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김정은이 보스토치니 우주기지, 수호이 전투기 공장, 블라디보스토크 태평양함대를 방문하여 북한의 관심사가 이곳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러시아와 북한의 속내를 다각적인 시각으로 파헤쳐보자. 러시아는 미국을 비롯한 유럽국가들의 러시아 제재에 부담을 느끼고 있어 국제사회의 관심을 우크라이나에서 분산시키기 위해 동북아 지역의 말썽꾼이자 핵 공격 능력을 보유한 북한과 손을 잡은 것으로 본다. 물론 전 세계에서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할 국가는 몇 안 된다. 러시아가 동북아 지역에서 북한·중국과 함께 연대하여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체제에 맞서는 군사적 대결 구도를 만든다면, 한반도 주변에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현재 우크라이나에 집중된 미국의 힘과 관심을 분산시킬 수 있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북한도 러시아와의 관계개선을 통해 한·미·일 삼각연대를 견제할 수 있으며, 러시아의 첨단 군사기술을 이전받을 경우, 바이든 정부와 한국에 대한 압박의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 바이든 정부는 2021년 출범한 이후 북한 김정은 정권과의 협상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미·중 패권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따라서 최근 러시아와 북한의 행동은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미국여론 분열을 조장하고 미국의 관심을 북한 문제로 다시 끌어오기 위한 다목적인 포석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만일 북한이 러시아에 탄약과 무기를 지원할 경우 파장은 커지게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 국면에 빠져들게 되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5일 미국 CBS 뉴스에서 “북한이 러시아에 대포를 제공하고 있다”라고 보도하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바이든 정부 입장이 어려워진다. 피로감이 누적되어 유럽국가 간의 결속력이 흐트러질 수 있고 미국 내부에서도 반발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내년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과 공화당 간의 본격적인 선거 레이스가 시작되고 있다. 최근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상승하고 있는 데다, 바이든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공화당의 불만도 커지고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우크라이나에 대한 바이든 정부의 지원 동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러·북 밀월관계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또 다른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은 동북아 지역에서 미·중 패권경쟁의 지렛대로 북한을 활용해 왔으며, ‘북한을 통제할 수 있다’라는 점을 미국·한국 등에 과시해왔는데, 북한이 러시아와 가까워 짐에 따라 ‘중국의 대북 통제력이 약화한 것’으로 주변국들에 비추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은 UN 안보리에서 러시아와 북한 입장을 두둔하고 있으나, 우크라이나 전쟁 문제에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시진핑 정부는 바이든 정부로부터 글로벌공급망 재구축이라는 강력한 압박을 받고 있으며 미국의 대중국 봉쇄정책에 대항하여 유럽국가를 대상으로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하면서 유화정책을 펼치며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만일, 중국이 러시아·북한과 합세하여 우크라이나 전쟁은 물론, 동북아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민주주의 가치 국가들과 군사적 대결 구도로 갈 경우, G2 국가로서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쌓아왔던 리서쉽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
한편 지난 10월 7일 중동에서 국지전이 발생하였다. 이슬람 무장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여 새로운 중동전쟁으로 번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미·중 패권경쟁,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러·북 밀월 등 국제문제에 직면해 있는데 중동전쟁이라는 새로운 변수까지 발생하여 복잡한 국제정세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현재 미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조기 해결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만일 한반도에서 북한이 국지전 등 무력도발을 감행할 경우, 미국의 군사력과 외교력의 역량이 중동, 유럽, 동북아로 분산되는 힘든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최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과 러·북 밀월관계가 주는 시사점과 우리 정부의 대처방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대공 방어시스템 아이언 돔(Iron Dome)은 하마스의 공격을 막지 못하고 구멍이 뚫렸으며,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도 하마스의 기습공격에 대해 조기경보를 하지 못했다. 픽업트럭·패러글라이드·모터보트 등을 동원한 하마스의 지상·공중·해상 기습공격에 이스라엘의 첨단기술 방어체계가 무력화되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북한은 한국을 대상으로 각종 군사적 도발 행위를 자행해 왔으며, 한국에 핵 선제타격 위협을 가하고 있다. 국제 왕따 국가인 러시아와 북한의 밀월관계 속에서 향후 북한의 예상치 못한 기습 도발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을 교훈으로 삼아 우리의 국방 경계태세를 더욱 높여야 하겠다.
동북아 지역에서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체제와 중·러·북 연대 간의 군사적 대결 구도가 형성하게 될 경우, 신냉전 시대로 회귀하게 된다. 1950년 북한은 구소련 스탈린과 중국 마오쩌둥의 지원을 받아 한국전쟁을 일으켰다. 과거의 역사가 또다시 반복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북한은 지난 30년 동안 한반도에서 핵 개발을 추진해왔으며, 2022년 핵무력 법제화를 한 데 이어 올해 9월 ‘핵무력 정책’을 헌법에 명시하였다. 최근까지 각종 전략무기를 개발하여 한국을 위협하였으며 전술핵잠수함까지 선보였다. 우리는 북한의 호전적인 태도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하며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처럼 북한 특수부대 침투 등 다양한 군사적 도발에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 북한의 핵 위협을 억제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 미국이 다시 한반도에 전술핵을 배치해야 할 필요성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1991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북한의 NPT 탈퇴와 핵 개발로 인해 실효성이 없어졌다. 한반도의 핵 균형을 위해서는 미군의 전술핵 배치가 필요하다.
북한의 도발을 사전 차단하기 위해서는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 체제를 더욱 강화하여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 한·미·일 안보협력을 지렛대로 삼아, 중국이 러시아·북한 간의 부적절한 밀월관계에 합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중국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한·미·일 안보협력 체제가 강화되는 데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불편해하였다. 그동안 중국이 “한국에 대해 미국 편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압박해 왔다”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한국과 일본은 한·일·중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중국이 러·북 밀월과 거리를 두도록 외교적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중국에도 이득이 된다. 중국은 한·일·중 관계복원을 통해 러시아와 북한을 견제하면서 동북아에서 리더쉽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도 북한의 핵실험 등 군사적 도발을 억제하는데 중국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윈윈(win-win)관계가 필요한 실정이다.
한반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북한의 영향력을 제어하기 위해 국제사회에서 활발한 외교적 활동이 요구된다. 러시아와 북한의 잘못된 행동이 확산하지 않도록 국제사회의 단결과 제동이 시급하다. 국제사회는 탄약 지원, 첨단군사기술 지원 등 러시아와 북한 간의 물밑 거래에 대한 감시활동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에 대한 강력한 제재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엄태윤 필자 주요 이력
△Pace대학 경영학 박사 △한국외국어대 국제관계학 박사 △한국외국어대 대학원 국제관계학과 특임 강의교수 △주미 한국대사관 참사관 △통일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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