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탄소국경세)' 시행으로 국내 기업들의 부담이 커지자 정부가 팔을 걷어붙였다. 인증서 비용 등 부담을 완화하고 중소·중견기업의 대응 역량 강화도 지원하기로 했다.
EU와도 적극 협상에 나서 개선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서는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때처럼 뒤늦은 대처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17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전날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고 'EU 탄소국경조정제도 준비 현황 및 향후 대응 방향'을 논의했다.
이달부터 시행된 CBAM은 철강·알루미늄·시멘트 등 6개 품목을 EU로 수출할 때 제품에 내재된 탄소 배출량을 보고하고 그에 따른 인증서 구매를 의무화하는 제도다. 2025년 말까지는 보고만 해도 되고 2026년 1월부터 인증서까지 구매해야 한다.
첫 보고 대상인 올해 10∼12월 배출량 보고서 마감 시한은 내년 1월 말까지다. 기한 내에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는 등 규정을 위반하면 1t당 10∼50유로의 벌금 등이 부과된다. EU는 이후에도 후속 입법을 통해 내용을 계속 정비해 나갈 계획이다.
정부는 철강·알루미늄·시멘트 등 탄소 배출량이 많은 품목을 중심으로 국내 140여 개 기업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본다. 특히 철강은 EU로의 수출 비율이 지난해 기준 11.7%로 당장 가격 경쟁력 약화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한국무역협회도 CBAM 대상 품목 중 철강이 약 89.3%를 차지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우려했다. 탄소배출권 구매에 따른 비용 부담이 크다. 또 상대적으로 국내 배출권거래제(K-ETS) 활용 경험이 부족한 중소·중견기업 역시 대응에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정부는 EU와의 협상을 강화하고 중소·중견기업 지원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입장을 가진 국가들과 공조해 향후 EU의 이행법 추가 제정 등에 대처할 계획이다. 양자 채널도 적극 활용해 국내 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전달하기로 했다.
중소·중견기업 대상으로는 업종별 해설서, 실제 보고 사례집을 배포하고 배출량 산정 방법 등 실무 교육도 진행한다. 또 업계의 저탄소 전환을 돕기 위해 내년에만 1277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이와 별개로 업계에서는 정부의 사전 대응이 아쉬웠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협상을 통해 어떤 성과를 낼지와 별개로 당장 타격이 불가피한 탓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번에 전체가 시행되는 게 아니라 추가 입법안이 순차적으로 나오는 부분"이라며 협상이 뒤늦었다는 지적에 반박했다. 이어 "(탄소국경세로) 가격이 오르면 당연히 수출 경쟁력이 저하된다"면서도 "EU 내 기업과 제3국 기업 간 차별을 없애는 데 협상력을 집중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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