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에서 한국형 제시카법을 입법예고하겠다고 나섰다. 아직 세부적인 내용이 확정된 상태는 아니지만 그 핵심적인 내용은 고위험 성범죄자의 재범을 막기 위해 출소 후에도 거주지를 국가지정시설(이하 ‘시설’로 약칭함)로 제한하는 것이다. 이는 지난 1월 법무부 신년업무계획보고에서 어린이집,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등 미성년자 교육시설 500m 안에 살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발표되었던 것을 크게 강화한 것이다.
과거 500m 제한에 대해서도 이미 과도한 제한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서울 등 대도시에서는 달동네를 제외하고는 이러한 제한 범위를 벗어난 주거지를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고 그로 인해 성범죄 전과자들은 대도시에서 밀려나 근교에 자리 잡게 될 것이라는 예상에 대도시 인근 지방자치단체들에서 반발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새로운 안에 따라 이들을 시설에 거주하게 하면 500m 제한에 따른 문제점은 회피할 수 있지만 더욱 심각한 위헌성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이후에도 자유롭게 거주지를 선택하지 못한다는 것은 새로운 형벌이라는 비판도 가능하며,시설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법체계상 형법과 보안처분은 구분된다. 형벌은 범죄에 대한 처벌로서 법원의 재판에 의해 부과되며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법률상 정해진 형벌에 한정된다. 반면에 보안처분은 재범 방지를 위해 형벌과는 별도로 부과되는 처분으로 보호관찰이나 전자장치 부착 등이 있다. 형벌과 보안처분이 함께 부과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에 고위험 성범죄자들에 대해 형기를 마친 후에 전자발찌 착용을 강제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보안처분이 무제한 허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형벌이 아니기 때문에 이중 처벌 금지에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인권 제한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인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아닌지에 대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것이다.
먼저 시설에 강제로 거주하게 하는 것은 과거 안에 비해 거주⋅이전의 자유를 더욱 강력하게 제한한다. 과거 안은 좁은 범위 내에서나마 선택의 가능성이 있었지만 새로운 안은 아예 선택 가능성을 박탈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하여 가족이 있더라도 가족과 함께 거주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며 이것도 인권 침해 문제로 대두될 수 있다.
또한 시설 운영 방식에 따라 추가적인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한국형 제시카법은 고위험군 성범죄 전과자들을 시설에 강제 입소시키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하고 있는데 만일 24시간 시설 내에서 살도록 한다면 이는 교도소와 다를 바 없고 사실상 형벌이라고 보아야 한다.
일정 시간 시설 밖으로 외출할 수 있도록 한다면 언제부터 언제까지 외출이 가능한지에 따라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예컨대 외출시간이 지나치게 짧으면 과도한 제한이 문제될 것이고, 외출시간이 길면 시설 수용의 실효성이 문제될 것이다.
시설에 수용된 성범죄 전과자의 개인적 사정에 따라 예외를 인정할 것인지도 문제될 수 있다. 예컨대 가족을 만나거나 직장을 다니게 됐을 때 외출시간에 예외가 인정될 수 있는지, 예외 인정 기준은 어떻게 할 것인지도 문제된다.
시설의 위치도 문제될 수 있다. 일반 거주지에 시설을 두게 되면 인근 지역 주민들이 불안해 할 수 있고, 그렇다고 외딴 곳에 시설을 만들면 시설 시용자 불편이 가중되며 사실상 유배라는 비판이 나올 것이다.
최근 묻지마 범죄를 비롯하여 각종 범죄가 심각하고, 아동 성범죄에 대한 국민적 불안도 높다. 이런 상황에서 재범 위험성이 높은 성범죄 전과자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여 선량한 시민들을 보호하겠다는 입법 취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전과자 인권은 무시되어도 괜찮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들도 국민이고, 이들도 인권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의 인권과 선량한 시민들의 인권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상황에서는 선량한 시민들의 인권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적 위험성이 아닌 잠재적 위험성, 재범 가능성 때문에 이런 정도의 심각한 제한을 가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에 대해서는 다음 몇 가지 쟁점을 중심으로 많은 논란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첫째, 재범 위험성이 높다는 평가가 어느 정도의 의미와 비중을 갖는지에 대한 논란이 불가피하다. 이미 행한 범죄에 대해서는 형벌을 받았는데, 아직 행하지도 않은 재범의 위험성만으로 형벌과 비슷한 정도로 인권을 제한하는 것에 대해서는 과도한 제한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둘째, 기존에 활용되고 있던 전자발찌 부착이나 화학적 거세라는 방법의 실효성에 대한 정확한 평가도 필요할 것이다. 만일 이러한 방법으로 재범 위험성을 크게 낮출 수 있다면 굳이 시설 입소라는 추가적인 제한을 가할 필요성과 정당성이 있는지가 문제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시설 입소 강제 시 기대할 수 있는 재범 방지 효과와 기존 전자발찌 또는 화학적 거세의 효과성 강화를 비교할 때 어느 쪽이 더 적은 비용으로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는지에 대한 검토도 필요할 것이다.
셋째, 시설의 위치, 수용 인원, 수용자들 간 관계 등에 대해서도 논란이 소지가 크다. 자칫 시설이 고위험군 성범죄 전과자의 재범을 억제하는 기능 대신에 한곳에 모인 이들이 재범을 모의하는 장소로 기능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 밖에 새로 시설을 건립할 것인지, 기존의 다양한 시설을 활용할 것인지, 전국에 몇 개 시설을 둘 것이며, 매년 60명 정도인 출소자들을 어떤 기준에 따라 분산⋅수용할 것인지 등 논란의 대상은 매우 많다.
흔히 이야기되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은 그만큼 세부적인 사항을 합리적으로 정하는 것이 어렵다는 뜻이다. 한국형 제시카법이 과연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이며, 위헌 논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도 그 구체적인 내용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다만, 현재로서는 악마의 디테일을 극복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비상임위원 △ 경찰청 인권위원회 위원장 △전 국회 개헌특위·정개특위 등 자문위원 △전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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