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국민의힘 등 여권 지도부가 29일 '이태원 참사 희생 1주기 시민추모대회'에 불참했다. 불과 3일 전인 지난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제44주기 추도식'에 윤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 등 보수 인사들이 총집합한 것과 사뭇 다르다.
여권에서는 시민추모대회를 정치적 행사로 규정했다. 불참 이유였다.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들이 총출동한 더불어민주당은 참사를 정쟁으로 몰고 가는 것은 추모대회를 정치집회로 낙인찍은 국민의힘이라고 맞불을 놨다. 억울한 죽음을 당한 희생자들을 기리는 순고한 행사가 정쟁으로 얼룩진 것이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1주기 시민추모대회는 이날 오후 서울광장에서 10월의 찬란한 햇빛 아래 장엄하게 치러졌다. 오가는 시민들이 1년 전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애도했다. 웨슬리 꽃재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천개의 바람이 되어' '어메이징 그레이스' '여러분' 3곡이 서울광장을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남은 희생자인 이주현씨 추도사가 이어졌다. 시민들과 희생자, 생존자들이 한데 어울어진 행사였다.
그러나 정치권은 달랐다. 여당은 일부 인사들이 개인 자격으로 참석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국민의힘은 인요한 혁신위원장, 유의동 정책위의장, 이만희 사무총장 등이 개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개인 자격으로 참석한 국민의힘 지도부는 추모사 명단에서 제외됐다.
민주당에서는 이 대표와 홍익표 원내대표 등 지도부를 비롯해 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다수 참석했다. 이 대표는 추도사를 했다.
이날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위한 추모대회는 정치권 현실을 그대로 드러냈다. 정권 출범 이후 터진 대형 참사와 선을 그으려는 대통령실과 여권 측 의도가 엿보인다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해석한다. 민주당 역시 참사 수습 과정에서 현 정권에 대한 압박을 통해 정국 주도권을 쥐려고 한 만큼 정치적인 면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국민의힘은 추모대회에 앞서 재발 방지 시스템 마련에 당력을 기울이겠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오전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안타까운 참사의 사전 방지책을 마련하는 것 또한 오늘 당정협의회의 핵심 과제"라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정부와 더 긴밀히 협의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우리 사회 안전 시스템이나 방재시스템 허점이 많다는 것도 확인됐다. 그리고 새로운 유형의 재난에 대해 정부와 사회가 준비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유감스럽게도 지난해 12월 제출한 재난 및 안전 관리 기본법 개정안은 지난달에야 행안위를 통과했고 다른 안전 관련 법안들도 상임위에 계류돼 발이 묶인 상황"이라며 "1년이 지나도록 지지부진한 부끄러운 현실 앞에 국민의힘이 먼저 반성하겠다. 조속히 처리할 수 있도록 당력을 집중하겠다"고 약속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 지도부와 윤 대통령을 향해 책임을 물었다. 홍 원내대표는 같은 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2023 국감 평가 및 향후 대응 방안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의힘 지도부 일부가) 개인 자격이지만 '참사 1주기 추모식'에 간다고 하는데 돌 맞을까가 아니고 마음을 풀어드린다는 마음으로 간다면 어떨까 생각한다"고 했다.
강선우 민주당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1년이 지났지만 뻔뻔하게 책임을 부인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책임자들을 보자면 인면수심(人面獸心) 정부가 아닐 수 없다"며 "'정치집회'를 운운하는 윤 대통령과 참사를 정쟁화한다며 손가락질하는 국민의힘은 안전한 대한민국을 말할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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