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소비자물가가 생활 밀착형 항목을 중심으로 크게 오르며 정부 고심이 더 깊어졌다. 먹거리 물가는 비축 물량을 푸는 식으로 잡겠다고 밝혔지만 곡물 가격 급등과 같은 대외 악재가 추가되면 정책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
겨울을 앞두고 난방비와 직결된 국제 에너지 가격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는 점도 우려스럽다. 어디서 뭐가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을 지나는 형국이라는 평가다.
2일 통계청에 따르면 10월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3.8% 올라 3개월 연속 3%대 우상향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다시 고개를 들면서 한국은행도 물가 안정 목표(2%) 달성 시점을 내년 말에서 2025년 상반기로 미룬 상황이다.
지난달 농축수산물과 에너지 물가는 고공 행진을 이어갔다. 농축수산물 지수는 123.1로 전년 동월 대비 7.3%나 증가했다. 증가율로는 연중 최대치다.
전기·가스·수도 물가 지수도 135.79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6% 상승했다. 에너지만 놓고 봤을 때 전기료는 14%, 지역난방비는 12%나 올랐다. 증가율이 20~30%에 달하던 연초와 비교해 낮아졌지만 겨울철 한파가 들이닥치기 시작하면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 휘발유 가격은 6.9% 상승했다. 8월부터 다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앞으로도 첩첩산중이다. 전기요금 인상과 난방 수요 증가, 김장 물가 상승 등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물가 당국은 올해 4분기 전기요금 인상 여부와 인상 폭을 두고 조율 중이다. 앞서 한국전력공사는 4분기 전기요금 적정 인상액으로 ㎾h당 25.9원을 제시했다.
정부도 천문학적 적자에 시달리는 한전 재무 상황을 감안해 요금 인상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가계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어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무적 판단에 따라 동결 가능성도 있지만 소폭 인상 쪽에 무게중심이 쏠리는 분위기다.
최근 국제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들썩이는 건 난방비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이날 기준 뉴욕상업거래소 천연가스 12월물 가격은 MMbtu(열량 단위)당 3.49달러를 기록했다. 불과 한 달여 만에 23% 가까이 뛰었다. 겨울 난방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이 대규모 LNG 사재기에 돌입하면 우리나라도 유탄을 맞을 수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향방도 지켜봐야 한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0%를 넘는 상황이라 서민들이 전기요금·난방비 동반 상승이라는 이중고를 맞닥뜨릴 수 있다.
유류세 인하와 경유 보조금 지급 조치 재연장 여부도 중요하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에너지 물가 부담을 경감시켜 주기 위해 연말까지 휘발유와 경유 등에 붙은 세금을 깎아주기로 했지만 세수 부족이 심각한 탓에 유류세 인하를 무한정 연장하기도 어렵다. 실제 지난해에만 유류세 인하 조치로 교통·에너지·환경세가 1년 전보다 5조5000억원 줄었다.
김장 물가 역시 비상이다. 전날 기준 배추 한 포기 평균 소매 가격은 4704원으로 평년 가격인 4230원을 웃돌고 있다. 김장 재료인 멸치액젓도 ㎏당 5705원으로 평년(5001원)보다 비싸다. 굵은 소금은 5㎏당 1만3967원으로 평년(8446원) 대비 65% 이상 오른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정부는 역대 최대인 245억원을 풀어 농수산물 할인 행사와 정부 비축물량 방출에 나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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