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발 국채금리 급등에 이어 올 4분기 은행채 한도도 폐지되면서 이달 회사채와 기타금융채(여전채) 순발행 규모가 지난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태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5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0월 한 달 기준 회사채 2조8000억원이 순상환됐다. 이는 부동산PF 사태로 자금시장 경색이 일었던 지난해 10월 이후 가장 큰 규모다. 당시 회사채는 4조8000억원이 순상환됐다.
회사채가 순상환된다는 것은 기업들이 회사채를 발행해 조달한 자금보다 이미 상환한 규모가 더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순상환은 기업들이 빚을 갚고 있어 현금흐름이 나아지고 있다는 신호로도 해석되지만, 최근 크레딧 시장이 약세를 지속하고 있어 신규 발행이 어려워졌다는 것으로도 분석된다.
실제 국고채와 회사채 간 크레딧 스프레드(3년물·신용등급AA-기준)는 지난 9월 말 77.5bp(1bp=0.01%포인트)에서 10월 말엔 83.2bp로 5.7bp 확대됐다.
신용등급AA급 이상의 우량기업도 민간 채권평가사들이 매긴 금리 평균(민평금리)보다 높은 금리에 회사채를 찍는 이른바 '오버 발행' 사례가 쏟아지고 있다.
AAA의 초우량 신용도를 갖추고 있는SK텔레콤은 지난달 진행한 수요예측에서 3년물과 5년물 금리가 민평금리보다 높은 수준에서 형성됐다. 롯데칠성음료(AA), SK브로드밴드(AA), 한국투자증권(AA) 등도 민평금리보다 웃돈을 주고 회사채를 찍었다.
이에 대해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미국발 채권 약세장이 지속되면서 크레딧 스프레드 역시 확대되고 있다"며 "국채 금리가 상승 압력을 받으면서 크레딧에 대한 수요도 약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고금리 장기화에 이어 지난달 은행채 발행 한도 폐지 정책이 회사채 조달 환경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은행채 발행은 지난달 크게 늘면서 10월 한 달 동안 7조5000억원이 순발행됐다. 10월 은행채 발행 규모(23조9000억원)는 만기물량인 16조4007억원의 145% 수준이다. 3분기까지 분기별 만기도래액의 125%로 묶여있던 은행채 발행 한도가 지난달부터 폐지되자 발행 물량이 크게 늘었다.
한광열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고금리 기조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은행채 발행이 늘어나면, 회사채 수급이 위축돼 전체 채권 시장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전채도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자 신용등급 AA-인 기타금융채(여전채) 3년물 금리는 지난달 5%를 넘어선 데 이어 31일 5.275%까지 올랐다.
지난 10월 한 달간 캐피탈채는 5000억원어치가 순상환됐다. 이는 앞서 회사채와 마찬가지로 2조3000억원이 순상환됐던 지난해 10월 이후 최대 규모다.
일반적으로 채권 투자자들은 높은 금리를 보고 여전채에 투자한다. 그러나 최근 고금리 장기화와 은행채 발행 증가로 금리 대비 상환액만 늘고 있다.
정윤정·백윤민 교보증권 연구원은 "여신 전문 업체는 수신 기능이 없어 여전채 발행으로 자금 조달을 하기 때문에 금리 상승이 조달 비용 확대로 이어진다"며 "대출상품 금리를 올려 가격에 전가하기에는 최고 금리가 정해져 있고 연체율 상승에 따른 자산 건전성 저하 우려로 이어질 수 있어 즉각적인 반영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채권 시장 업계에서는 은행채 발행 증가에 이어 지난달 한전채도 3개월 만에 발행을 재개하면서 '이중 블랙홀 현상'이 재현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올해 한국전력의 원화채권 발행 규모는 11조9000억원에 달한다.
박경민 DB금융투자 연구원은 "대출 수요와 정기예금 만기 도래에 대비한 일반 은행채 발행과 특수채 발행 규모도 확대되면서 시장 전반의 수급 부담을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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