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의 indonesia 스토리] 부통령 후보가 된 조코위 장남 …印尼 대선 불안한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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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강원대 문화인류학과교수
입력 2023-11-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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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강원대 문화인류학과교수
[김형준 강원대 문화인류학과교수]



“정치에서는 어떤 일이라도 벌어질 수 있다.” 이는 인도네시아 정치인이 자주 언급하는 말로서, 정당 간 합종연횡이 빈번하고 개인의 소속 정당 교체가 자주 이루어지는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동시에 이는 정치적 이념, 도의, 충성보다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을 내리는 정치인의 행보를 정당화하려는 의도를 가진다. 십여 개의 정당이 경합하는 다당제 체제에서 정당과 정치인 간 연합은 자연스러운 모습이지만, 그 결합과 분리의 양상은 외부인이 쉽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채롭게 전개되어왔다. 특히, 2024년 2월 대선에 참가할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 등록을 목전에 둔 지난 10월의 상황은 어떤 일도 벌어질 수 있다는 말이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인도네시아 정치의 본질일 수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정당 간 합종연횡은 첫 대통령 직선제 선거가 치러진 2004년을 기점으로 하여 인도네시아 정치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1998년 경제 위기로 인해 수하르토 독재 정권이 와해하기 전까지 인도네시아에는 세 개의 정당만이 활동했다. 이후 민주화 과정이 진행되면서 수십 개의 정당이 출현했고, 2004년 대선에 출마한 5명의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 선정 과정에서 정당 간 연합이 가시화되었다. 이런 정치적 현실은 선거법 개정에도 영향을 미쳐서, 후보 난립이 가져올 부정적 영향의 축소라는 명분으로 국회 의석수의 20% 혹은 직전 총선 득표율 25% 이상을 획득한 정당이나 정당 연합만이 대통령 후보를 추천할 수 있게 되었다. 2019년 총선에서 국회의원을 배출한 9개 정당 중 하나만이 20% 이상의 의석을 획득했다는 현실을 고려해보면, 개정 선거법은 대선 후보 배출을 위한 정당 간 연합을 필수적 정치 과정으로 바꿔놨다.
2024년 대선에 참가할 세 명의 대통령 후보는 극적인 장면 없이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첫 번째는 대통령 후보를 단독으로 지명할 자격을 충족하고 있으며 현 조코위 대통령이 소속한 정당인 ‘인도네시아 투쟁민주당’(PDI-P)의 후보, 간자르 프라노워(Ganjar Pranowo)이다. 유권자의 14% 정도가 속한 중부 자바 주지사를 두 차례 역임한 그는 풍부한 행정 경험과 대중적 인기를 지닌 무리 없는 후보라 평가되었다.
두 번째는 2014년과 2019년 두 차례 대선에서 조코위 대통령과 경쟁한 프라보워 수비안토(Prabowo Subianto)이다. 이러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코위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으로 활동했고, 지난 몇 년간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자신이 세운 정당이 독자적으로 후보를 지명할 수 없었기에, 그는 세 개의 중소 정당과 연대하여 대통령 후보 자격을 얻어냈다.
세 번째 후보는 2017-22년 사이 자카르타 주지사를 지낸 아니스 바스웨단(Anies Baswedan)이다. 다른 후보와 비교할 때, 그의 정치적 정체성은 모호한데, 이는 세 정당의 지지를 통해 대선 후보가 된 현재에도 그의 소속 정당이 없음을 통해서 확인될 수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그는 무소속 정치인으로 여러 정당의 활동에 간여하고 여러 정당의 지지를 받아 출마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그가 가진 높은 개인적 역량과 대중적 지지에 기반을 둔 것으로서, 인도네시아의 독특한 정치 상황을 가감 없이 드러내 준다. 높은 인기를 가진 지도자가 없지만 대통령 후보 배출을 통해 정치적 존재감을 확보해야 하는 정당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식으로 외부 인물을 수혈할 수 있는 것이다.
세 명의 대통령 후보가 상대적으로 큰 무리 없이 등장했던 것과 달리, 이들의 러닝메이트가 될 부통령 선임 과정은 정치적 합종연횡에 익숙한 이들조차 쉽게 상상할 수 없던 상황을 연출했다. 먼저, 집권 여당의 간자르 후보 러닝메이트 선임 과정은 극적인 장면을 기대했던 이들을 실망하게 할 정도로 밋밋하게 진행되었다. 같은 당 소속이면서 부통령감이라는 평가를 오랫동안 받아 온 현직 장관이 후보로 선임되었기 때문이다.
돌발적 상황을 기대하던 이들에게 아니스 후보의 러닝메이트 선택 과정은 만족스러울 만했다. 선정된 인물이 프라보워 후보를 추대한 정당 연합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자기 정당이 지지하는 후보가 아닌 경쟁 후보의 러닝메이트 자리를 꿰찬 것이다. 이 행보는 아니스 후보의 러닝메이트 자리를 노리며 그를 지지하던 ‘민주당’(Partai Demokrat)을 격분시켰다. 민주당은 곧바로 아니스 후보 지지를 철회하고 프라보워 후보 지지로 입장을 선회했다. 그 결과 프라보워 후보를 지지했던 정당과 아니스 후보를 지지했던 정당이 각기 입장을 전환하여 상대방의 자리를 차지하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짧은 기간 내에 진행된 이 변화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정치적 논리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는가를 예시했다.
민주당이 재빨리 프라보워 후보 지지로 선회한 데에는 그의 러닝메이트가 결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 달리 프라보워 후보는 부통령 지명을 계속 연기했고, 후보 등록 직전에야 중부 자바 수라카르타(Surakarta)의 시장인 36살의 기브란 라카부밍(Gibran Rakabuming)을 러닝메이트로 선정했다. 물론 그의 경력보다 훨씬 중요한 점은 그가 조코위 대통령의 맏아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족벌 정치는 인도네시아의 최근 정치를 특징짓는 요소라 거론되어왔다. 민주화 국면 이후 대통령 자리에 오른 5명의 전·현직 대통령 중 한 명을 제외한 네 명의 자녀들이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만을 고려한다면 조코위 대통령 아들의 지명 역시 어떤 일도 가능하다는 정치적 논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의 지명은 이전의 합종연횡과는 상이한 평가를 받으며 시민 사회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부통령 후보 지명 직전까지 그가 후보 자격을 완전히 갖추었다고 평가될 수 없었던 상황에 기인했다.
인도네시아 선거법에는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의 연령 제한 조항이 포함되어서, 40세 이상의 사람만이 입후보할 수 있었다. 이 기준에서 볼 때, 기브란 후보는 출마 자격을 충족하지 못했고, 이런 이유로 그는 대선 레이스의 주요 구성원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물론 그가 완전히 배제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후보자 연령 제한을 문제시하는 헌법소원이 제기되었고, 대선 후보 등록을 앞두고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예정되었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정치평론가는 이 헌법소원이 기각되고 40세 연령 제한이 존치될 것이라 예상했다. 이는 족벌 정치의 논리를 역으로 적용한 결과였다. 조코위 대통령의 매제라는 친족 관계로 인해 헌재 소장이 자신의 조카인 기브란 후보를 편파적으로 편드는 판결을 내리기 쉽지 않으리라 판단되었다.
상식에 맞아 보였던 이 시각은 결과적으로 정치 논리에는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헌재는 40세 연령 제한을 합헌이라 판단했지만, 직접 선거를 통해 지자체장으로 선출된 경험이 있는 인물에게 이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예외 규정을 추가했다. 헌재 결정이 발표되자마자 프라보워 후보는 인도네시아 투쟁민주당을 탈당할 여유조차 없던 기브란을 부통령 후보로 선임했다. 어떤 일도 벌어질 수 있다는 논리의 적용 범위가 무한대일 수 있음을 단정적으로 보여주는 행보였다.
정당 간 합종연횡에 대한 불만이 강하게 제기되지 않던 이전과 달리 기브란 후보의 선임은 시민 사회의 광범위한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기브란의 고모부가 헌재 협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그에게 우호적인 판결을 유도했다는 고백이 헌재 재판관에 의해 제기되면서 비판적 시각에 기름을 부었다. 시민들의 잇따른 제소에 헌재는 윤리위를 소집하여 헌재 소장의 심의 참여가 이해충돌 방지라는 윤리 강령을 위반했는지 검토하기로 했다.
족벌 정치에 대한 관용적 분위기가 기브란에게 적용되지 않은 핵심 이유는 이 문제가 정치에만 국한되지 않고 법의 영역을 포함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라도 정치에서 벌어질 수 있다면, 정치 외적 영역에서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정서가 힘을 받았으며, 이는 정치 영역으로 환류되어 정치적 공모와 결탁, 족벌 정치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졌다.
수하르토 퇴진 이후 전개된 민주화 과정에 대해 정치 분석가들은 한동안 회의적인 태도를 취했다. 민주주의가 절차적으로만 실행될 뿐 실질적 진전을 가져오지 못했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차적 차원의 민주주의가 20여 년 동안 이어지고, 평화적 정권 교체가 계속됨에 따라, 인도네시아 정치를 보는 시각 역시 조금씩 변화했고, 동남아에서 가장 모범적인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다는 평가가 제시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수하르토 퇴진 당시 제기된 정치적 담합과 족벌 정치 반대라는 구호가 25년이 지난 현재 다시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은 그동안 진전되고 있다고 믿어졌던 민주주의의 기반이 여전히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국가의 폭력이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시민 사회의 불만이 대규모로 표출되지 않는다고 해서 민주화의 진전을 의미한다고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향후 대선 레이스 과정은 인도네시아의 정치적 역동성을 파악할 기회를 제공해 준다. 프라보워-기브란 후보의 대선 가도 성공 여부는 어떤 일이라도 벌어질 수 있다는 정치적 논리가 유효한지를 확인해 줌으로써 인도네시아 민주화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지시계로 작용할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인류학과 (학사·석사 수료) ▷호주국립대학 (박사)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전 강원대 사회과학원 원장 ▷전 한국동남아학회 회장 ▷ 인도네시아 팟자드자란 대학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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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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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익한 정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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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네시아 대선이 코 앞인데 이런 재미난 일이 벌어지다니... 인도네시아 정치는 참 다이나믹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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