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사가 부회장직을 놓고 복잡한 셈법에 빠졌다. 조직을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선 부회장 직제가 필요하다는 시각이 우세하지만, 회장 임기 초 지배력을 높이거나 조직 슬림화를 단행할 시기엔 오히려 부회장직이 '계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그룹은 20일 양종희 회장 취임을 앞두고 2인 부회장 체제를 유지할지 고심 중이다.
그간 KB금융은 양종희·허인·이동철 부회장의 '3인 체제'를 유지했는데 양 부회장이 차기 회장에 오르면서 2명의 부회장만 남게 됐다.
금융권 안팎에선 새롭게 조직을 이끌게 된 양 회장 내정자가 장악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원톱 체제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부회장직이 없어진다면 허인·이동철 부회장은 자리에서 물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윤종규 회장은 지난 9월 열린 퇴진 기자회견에서 "부회장이란 직책 자체가 필요하면 보임하고 필요하지 않으면 비워둘 수 있는 것"이라며 "부회장 직책 자체보다 부문장 직무를 통해 가능하면 폭넓게 업무 경험을 사전에 쌓아 준비된 회장이 되도록 하는 것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인사 변화를 시사한 바 있다.
KB금융과 달리 하나금융그룹은 현재의 박성호·이은형·강성묵 부회장 '3인 체제'를 유지해 추후 후계 구도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의 임기가 2025년 3월 끝나는 만큼 경영진 육성과 검증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금융당국이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을 압박하고 금융지주 회장의 장기집권 시대도 사실상 막을 내려 하나금융은 복수의 부회장을 두면서 후계 구도를 관리하고 유지하겠다는 복안이다.
신한금융그룹은 현재 부회장직 신설을 백지화한 상태다. 조용병 전 신한금융 회장이 2020년 이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한 조직개편을 구상했으나 진옥동 회장이 올 3월 취임하면서 사실상 조직 슬림화에 나섰다. 포트폴리오 다각화 차원에서는 부회장 자리가 필요할 수 있지만 계열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우선 강화해야 한다는 진 회장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우리금융도 따로 부회장직이 있진 않다. 임종룡 회장 취임 초 부회장직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현 체제를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부회장직은 차기 회장 인큐베이터 역할뿐 아니라 회장의 경영업무 분담이나 지배구조 안정화 측면에서도 긍정적 영향을 준다"면서도 "부회장 자리가 지배구조상 꼭 있어야 하는 직제가 아닌 만큼 지주사 상황에 따라 언제든 변화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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