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냉장고는 들어온 지 4년이 넘었어요. 팔리기는커녕 폐기처분해야 할 물건들만 쌓여 있습니다."
4년째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에서 일해온 30대 김모씨는 "최근 상권이 완전히 침체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올해 들어 가게에 들어오는 주방집기도, 팔리는 주방집기도 없다는 게 이씨 설명이다. 하도 폐업이 많아 중고 주방집기를 가게에 파는 게 돈이 안 되는 탓이다. 자영업자들은 가게에 집기를 팔지 않고 폐기처분하고 떠난다. 이씨는 "어쩌다 손님이 오면 어떻게든 다른 가게보다 싸게 팔려고 한다"며 "팔아도 남기지 못하는 상황에서 경쟁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 20일 기자가 만난 황학동 주방거리 상인들은 올해 들어 상권이 완전히 얼어붙었다고 입을 모았다. 고물가에 자영업자 폐업이 잇따르고 창업을 하려는 이들이 줄며 중고 주방집기를 찾는 이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10년간 황학동 주방거리에서 중고 주방집기를 판매한 박모씨는 "1년에 10개 정도 팔리면 많이 나가는 편"이라며 "올해는 하나도 못 팔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주방거리를 찾는 이들은 하루에 많아봐야 10~20명"이라며 "장사가 안 돼 상인들도 3분의1 정도 줄었다"고 울먹였다. 60대 안모씨도 "재고가 쌓이고 있는 탓에 품질을 엄밀히 따져 받고 가격도 내렸지만 손님은 계속 줄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고물가에 폐업 급증…자영업자 "부담 심해"
자영업자들은 고물가에 견디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8%로 9월(3.7%)보다 0.1%포인트(p) 올랐다. 정부 당초 연말 목표치였던 2%대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서 순대국집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대출이자 등 가게 유지비와 물가가 크게 올라 음식값을 올리다보니 손님이 줄었다"며 울상을 지었다.
공인중개업소들도 최근 폐업을 문의하는 자영업자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용산구에서 공인중개소를 운영하는 성모씨는 "올 들어 경기가 악화되면서 폐업 후 '임대문의'가 붙는 곳은 늘었지만 빈 자리에 들어오겠다는 문의는 적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공실이 거의 없었지만 최근 들어 공실이 늘어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폐업하면 돈 더 들어"…빚더미에 신음하는 자영업자들
폐업을 바라고 있지만 대출금 상환 등을 이유로 쉽게 폐업을 결정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잖다. 서울 노원구에서 배달 전문 족발집을 운영하는 A씨(38)는 "올해 들어 물가가 올랐는데도 가격은 그대로니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가 돼 폐업을 하고 싶다"면서도 "폐업시 대출금 상환이 감당이 안돼 그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울상을 지었다. 서울 중구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50대 이모씨는 "30평(99㎡)짜리 업장을 폐업하려면 비용이 5000만원 든다"며 "차라리 폐업보다 가게를 파는 게 낫다"고 했다.폐업조차 힘든 자영업자들은 빚더미에 오르고 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신용보증재단중앙회로부터 받은 '지역별 신용보증 사고·대위변제액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누적 사고액은 1조6601억원으로 1년 전 5419억원보다 3배 늘었다. 사고액은 신보를 통해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린 소상공인이 돈을 갚지 못하겠다고 선언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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