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상징'서 '쥐둘기'로...비둘기 퇴치업체 찾는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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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혜린 기자·김다인 ·수습기자
입력 2023-11-24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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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년 관리대상지역만 비둘기 3만5000마리 이상 서식

  • 비둘기 먹이원 통제 위한 법안 발의

종각역 1번출구 앞에 걸려 있는 먹이주기 금지 홍보 현수막 종각역 엘리베이터 위에 비둘기가 떼를 지어 앉아 있다 엘리베이터를 둘러싼 벽과 천장에는 비둘기 분변으로 더럽혀져 있다 사진  김다인 기자
24일 종각역 1번출구 앞에 걸려 있는 먹이주기 금지 홍보 현수막. 종각역 엘리베이터 위에 비둘기가 떼를 지어 앉아 있다. 엘리베이터를 둘러싼 벽과 천장은 비둘기 분변으로 더럽혀져 있다. [사진 = 김다인 기자]
서울 종로구에서 일하는 20대 직장인 정모씨는 출근 시간대 종각역 1번 출구를 지나갈 때마다 수십여 마리의 비둘기를 마주쳐야 한다. 정씨는 “한두 마리도 아니고 거의 스무 마리씩 되는 비둘기들을 보면 저길 어떻게 지나가야 하나 싶다”며 “별 생각 없이 지나가려 해도 갑자기 떼로 날아드는 비둘기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혐오감이 든다”고 말했다.
 
도심 어디서나 보이는 비둘기는 골칫거리가 된 지 오래다. 길거리와 공원, 지하철 승강장 안까지 들어와 시민들에게 불쾌감을 주고 있다.
 
비둘기로 인해 위험천만한 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지난 10월 부산 동래구 명륜동에서는 10kg에 달하는 육교 외장재가 내부에 낀 비둘기 배설물 등에 부식돼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같은 문제로 '평화의 상징’이던 비둘기는 ‘닭둘기’, ‘쥐둘기’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사람들에게 외면받는 혐오 대상이 됐다.
 
2009년 서울시 전수조사 결과 서울시에만 3만5000여 마리의 비둘기가 살고 있었다. 비둘기로 인한 피해가 계속되자 환경부는 2009년 비둘기를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했다. 그러나 비둘기가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된 이후에도 여전히 시민들 민원은 줄지 않고 있다.
 
민원 발생지역 위주 조사 한계..비둘기 개체수 파악 걸림돌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에서 각각 3000마리와 2400마리를 방사한 이후 비둘기 수가 증가했다. 야생 비둘기의 경우 보통 연 2회 번식을 하는데, 도심에서는 먹이 공급이 활발하고 천적이 없어 번식 횟수가 5~6번까지 늘어난다.
 
환경부와 각 지자체는 집비둘기가 집단 서식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는 관리대상지역을 선정해 개체수를 확인한다. 지자체가 민원을 받아 집비둘기 관리대상지역을 선정한 뒤 해당 지역에 있는 개체수를 파악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환경부는 지자체에서 민원이 발생하는 지역에 대한 조사다 보니 비둘기의 정확한 개체수를 파악하는 건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비둘기 관리대상지역에 서식 중인 것으로 파악된 비둘기는 총 3만5967마리다. 2015년 3만291마리였던 것과 비교하면 2022년에 약 5000마리 이상 증가했다. 관리대상지역에만 한정해 집계했기 때문에 실제 비둘기 개체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비둘기 관련 민원, 7년 새 2배 급증
비둘기 관련 민원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환경부가 제공한 비둘기 관련 민원은 2015년 1129건에서 2022년 2818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경기도 하남시에 사는 30대 최모씨는 아파트 실외기에 앉았다 가는 비둘기가 남긴 분변으로 피해를 겪었다. 최씨는 “실외기에 앉아 있는 비둘기들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몇 번 있다”며 “나중에는 실외기에 쌓인 비둘기 분변을 치우느라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일상에서 겪는 불편함이 크다 보니 시민들은 직접 조류 기피제를 사서 설치하거나 비둘기 퇴치 업체를 찾고 있다. 비둘기 기피제 제조 및 판매 업체 이지플렉스 황창영 관리이사는 “불경기에도 비둘기 퇴치제 수요는 줄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평균 비용이 30만원인 비둘기 퇴치 업체 서비스 문의도 매년 꾸준하다. 비둘기 퇴치 전문 업체 반짝반짝열매 황승배 대표는 “성수기인 여름에는 하루에 약 20건, 겨울에는 하루에 약 8건 정도 문의가 들어온다”고 답했다.
 
지자체장 허가 있어야 비둘기 포획 가능...개체수 조절 난제
환경부가 올해 2월 배포한 ‘집비둘기 관리업무 처리지침’에는 먹이원 통제, 기피제 살포, 물리적 시설(접근방지시설) 설치, 개체수 조절 등 세부 관리방법이 설명돼 있다.
 
비둘기가 밀집하는 서울 종로구 도로에 비둘기들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안내 현수막이 부착돼 있다 사진  김다인 기자
24일 비둘기가 밀집하는 서울 종로구 도로에 비둘기들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안내 현수막이 부착돼 있다. [사진 = 김다인 기자]
비둘기가 밀집하는 공원이나 인근 도로에서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 ‘비둘기가 스스로 먹이를 찾아 생태계의 당당한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적힌 현수막을 볼 수 있다. 인위적으로 먹이를 제공하거나 먹이를 판매하는 먹이원을 통제할 수 있도록 환경부나 지자체 주도하에 공원, 하천변 산책로, 교량 하단 하천 둔치 등 집비둘기 밀집지역에 먹이 제공 금지 안내 간판을 설치하거나 현수막을 부착하는 것이다.
 
공원 내 동상이나 조각상 등 시설물, 주택가 선반, 처마 또는 문화재 주변에 조류 기피제를 살포하거나 코팅하기도 한다.
 
구조물 피해 방지나 번식 억제를 위해 접근 차단 효과가 있는 버드스파이크(조류퇴치침), 버드넷(방조망), 버드슬로프(경사거치대) 등을 설치해 물리적 접근을 방지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다만 비둘기를 포획하거나 도살처분하는 등의 개체수 조절 방법은 법적 제한사항이 있어 실행이 쉽지 않다. 비둘기를 직접 포획하려면 시장, 군수, 구청장 등 지자체장 허가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새로 배포한 환경부 지침에 따라 포획 전에 전문가, 시민단체 등을 포함한 협의회를 구성하고 이 협의회가 비둘기 포획 여부와 방식 등을 결정해 처리해야 한다.
 
먹이원 통제 필요...개정안 발의
문제는 집비둘기 개체수를 줄이는 데 가장 효과적인 먹이원 통제를 실효성 있게 관리할 방안이 없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먹이원 통제가 비둘기 개체수를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보고 있다. 먹이를 많이 줄 경우, 영양이 풍부해져 2~3번에 그칠 비둘기 번식 횟수도 5~6번까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상 유해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것에 대해 별다른 벌칙 조항은 없다. 유해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줘 이상 증식이 일어나는 경우, 지자체는 먹이원에게 비둘기 먹이를 주지 말라고 홍보하거나 계도를 하는 게 전부다.
 
이렇다 보니 지자체들이 환경부에 가장 시급하게 요청하는 것은 먹이원을 통제할 실질적인 방안 마련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 외 9명이 입법 마련에 나섰다. 지자체 조례로 정해 유해야생동물에게 먹이주기를 금지하고 벌칙도 가능하도록 하는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된 것이다.
 
제23조의3(유해야생동물의 관리)을 신설해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조례로 정하는 바에 따라 장소 또는 시기를 정하여 유해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를 금지하거나 제한할 수 있다’, ‘환경부장관은 유해야생동물의 관리를 위하여 필요하면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피해예방활동이나 질병예방활동, 수확기 피해방지단 또는 인접 시ㆍ군ㆍ구 공동 수확기 피해방지단 구성ㆍ운영 등 적절한 조치를 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지자체에서 정한 먹이주기 금지 사항을 어겨 단속된 먹이원에게는 과태료를 부과할 수도 있게 된다. 현재 관련 개정안은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으며,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될 예정이다.
 
곽정규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사무관은 “현장에서 요청이 가장 많았던 먹이원 단속에 대한 부분이 해결되면 비둘기 개체수 저감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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