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위로 올라와 주세요! 계단 위로 올라오셔야 출발할 수 있어요!”
지난 15일 오후 6시 44분 서울 광진구 광나루역 버스정류장. 서울에서 남양주시까지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A씨(50)는 연신 손님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퇴근길에 사람이 몰리면서 버스 하차문 계단까지 승객이 서 있자 문이 닫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단에 서 있는 승객들은 어떻게든 통로 위로 발을 옮기려 낑낑거렸다. 그럼에도 문이 닫히지 않자, A씨는 서너 번 더 날카로운 목소리로 “계단 위로 올라와 주세요”를 외쳤다. 비로소 ‘삐-’ 소리가 멈추며 하차문이 닫혔다.
A씨는 경기도 시내버스 기사다. 그는 하루 16~17시간 버스를 운전하고 다음 날 쉬는 격일제 근무를 한다. 서울시와 인천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수도권 시내버스 기사들이 A씨와 같은 격일제 방식으로 일한다. 이들은 하나같이 장시간 운전이 시내버스 서비스의 품질을 떨어뜨린다고 얘기한다. 노동 강도가 높아 친절하게 승객을 응대하려다가도 감정적으로 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A씨는 불규칙한 근무 시간에 따른 수면 시간 부족이 특히 더 스트레스를 유발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장시간 근무하면 생체리듬이 깨져 잠이 잘 안 온다”며 “잠을 적게 자는 날은 몸이 피곤해서 손님한테 쉽게 짜증을 내게 되기도 한다”고 했다. 근무 시간과 출퇴근 시간 2시간 정도를 제외하면 최대 5시간 정도밖에 잠을 자지 못하는데, 그마저도 수면 질이 좋지 않다는 얘기다. A씨는 "오늘도 사실 잠을 별로 못 잤다"며 껌을 씹었다.
도로교통 상황이 혼잡해지는 출퇴근길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또 다른 요인이다. 배차간격을 맞춰야 하는데 승객도 많고, 차도 막히기 때문이다. A씨가 운전하는 노선은 구리시와 남양주시로 들어가는 버스 중 가장 승객이 많아 출퇴근길 운행 난이도가 더 높다. 기자가 A씨의 버스를 탄 이날은 비슷한 노선의 다른 버스들이 배차간격을 지키지 못하면서 A씨 버스에 더 많은 승객이 몰렸다.
최대한 친절하게 응대하려고 했던 A씨는 결국 경적을 울리고 말았다. 급브레이크도 연달아 밟았다. 앞차가 갑작스럽게 차선 변경을 해서다. 중간중간 오토바이도 무리하게 끼어들었다. 승객들로 가득 찬 버스는 그럴 때마다 둔탁하게 멈춰 섰다. 곳곳에서 승객들이 힘들어하는 소리가 들렸다. A씨는 “타고 있는 승객이 많을 때는 안전사고라도 날까 걱정돼 더 예민해진다”며 “부드럽게 운행하고 싶은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돌발상황 등에 승객에게 성질을 내게 되는 건 단순히 기사 개인의 성격 문제일까.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실제로 A씨는 운행 내내 승객들을 배려하려 신경 썼다. 사람이 많아 뒤쪽 하차문으로 내릴 수 없는 승객들을 위해 먼저 앞문을 열겠다고 얘기했다. 승객 입장에서는 먼저 양해를 구할 필요가 없어 고마운 일이다. 그런 A씨조차 성질을 내게 만드는 건 근무시간과 관련이 있다.
2015년 가톨릭대학교 사회건강연구소에서 실시한 ‘버스 운전노동자 과로 실태와 기준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1일 2교대 근무자보다 격일제 근무자, 격일제 근무자 중 3일 연속 근무를 수행한 근무자의 스트레스 대응능력이 현저히 낮았다. 장시간 일하는 운전 노동자들에게서 타액코티졸 농도의 생체 반응성, 즉 인체 내 스트레스 대응력이 감소돼 있는 양상이 확인된 것이다.
다른 운수회사에서 경기도 시내버스를 27년째 운행하고 있는 김모씨는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CT를 찍은 적이 있다. 김씨는 “20년 차일 때 두통이 하도 심해 뇌에 이상이 있는 줄 알고 CT를 찍었다”며 “의사가 아무 이상이 없고 스트레스 때문이라고만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이야 익숙해져 ‘원래 그런 것이다’ 하고 마음을 내려놓고 운전하지만, 연차가 낮은 기사들 중에서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인력 충원 원하지만, TO 못 채우는 게 현실...” 준공영제만 오매불망
경기도 버스 운수회사 측도 이런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당장의 해결책은 기사를 추가 고용하는 것. 그러나 격일제 근무로 악명이 높고 근무강도에 비해 임금이 낮아 처우가 나은 서울이나 인천 등 다른 지역으로 수요가 몰린다. 각 운수회사는 여러 방편을 통해 기사를 모집하고 있지만, 코로나19 이후 줄어든 버스기사 숫자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2019년 12월 2만4882명이던 경기도 버스기사는 2022년 12월 기준 2만1855명으로 줄었다. 3000여 명 정도 감소한 것이다.
경기 북부 지역에서 버스 회사를 운영하는 KD운송그룹은 “미경력자 양성 교육 등을 별도로 실시하며 다방면으로 기사 충원 노력을 하고 있다”며 “하지만 각 지역마다 정해진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버스 기사와 운수업체 모두 내년 1월부터 시행될 경기도 시내버스 준공영제를 바라보고 있다. 경기도청에 따르면 시내버스 준공영제는 내년 1월 1200대를 시작으로 2027년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도와 시가 3 대 7 비율로 재정을 분담하고, 시내버스 전 노선을 공공관리제로 전환한다. 공공관리제가 시행되면 1일 2교대가 가능해지고 공공버스 운전기사의 88% 수준인 시내버스 운전기사 임금이 100% 수준으로 인상된다.
이종화 경기도버스노동조합협의회 국장은 “서울과 인천 등 인근 지역과 비슷한 수준으로 근로조건이 좋아지면 인력 수급이 될 것”이라면서도 “전 노선 준공영제는 2027년으로 상당 기간이 걸리기 때문에 내년부터 바로 인력 수급이 원활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문가, “준공영제가 대안 될 순 있지만 완전한 해답 될 수 없어”
일각에서는 시내버스 전 노선 준공영제가 정부 재정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나온다. 준공영제를 시행한 서울시와 인천시 모두 막대한 재정 부담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시내버스 준공영제를 실시한 2004년 7월 첫해 반년간 지원금 600억원을 투입한 후 20년간 연평균 3000억원대를 지원했다. 코로나19 이후 운송수입이 감소한 최근 5년간 연평균 지원금은 5100억원대로 늘었다. 인천 역시 준공영제 도입 초기인 2010년 430억원이던 재정지원금이 2022년 2650억원으로 12년 사이 6배가량 늘었다.
경기도 또한 향후 4년간 1조1000억여원이라는 막대한 재정을 투입한다. 다만 경기도는 기본지원금과 성과이윤으로 운영되는 기존 서울시의 준공영제와는 다르다는 입장이다. 버스회사에 기본이윤을 지급하지 않는 대신 경영 및 서비스 평가를 통한 성과이윤만 지급해 업체의 자구적인 노력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상당한 규모의 정부 재정이 투입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애초 경기도가 김동연 도지사 임기 내인 2026년까지 준공영제 전면 전환을 계획했다가 2027년으로 연기한 이유도 재정 부담 때문이었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공공관리제라 하더라도 현재 도와 시의 재정 상태를 보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시민부담을 가중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지속가능한 정책을 만들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변화하는 대중교통 체계에 맞춰 버스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는 “2000년대 초반과 2023년 지금의 교통망을 비교하면 철도가 생기는 등 많이 달라졌다”며 “앞으로도 GTX가 생기는 등 전체적인 교통산업이 계속 변화할 텐데 그에 맞게 버스 시스템을 연착륙시켜야 한다”고 전했다.
경기도 또한 향후 4년간 1조1000억여원이라는 막대한 재정을 투입한다. 다만 경기도는 기본지원금과 성과이윤으로 운영되는 기존 서울시의 준공영제와는 다르다는 입장이다. 버스회사에 기본이윤을 지급하지 않는 대신 경영 및 서비스 평가를 통한 성과이윤만 지급해 업체의 자구적인 노력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상당한 규모의 정부 재정이 투입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애초 경기도가 김동연 도지사 임기 내인 2026년까지 준공영제 전면 전환을 계획했다가 2027년으로 연기한 이유도 재정 부담 때문이었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공공관리제라 하더라도 현재 도와 시의 재정 상태를 보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시민부담을 가중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지속가능한 정책을 만들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변화하는 대중교통 체계에 맞춰 버스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는 “2000년대 초반과 2023년 지금의 교통망을 비교하면 철도가 생기는 등 많이 달라졌다”며 “앞으로도 GTX가 생기는 등 전체적인 교통산업이 계속 변화할 텐데 그에 맞게 버스 시스템을 연착륙시켜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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