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행정부는 이전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봉쇄전략의 내용을 대체로 승계하였지만 형식상으로 미국 홀로 중국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동맹, 우방국들과 연합전선을 구축하여 중국의 봉쇄를 더 촘촘히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났다. 그래서 바이든 행정부는 미·영·호주 3국이 참여하는 오커스(AUKUS)를 작년 출범시켰고 한·미·일 3각 안보협력도 올해 더 강화하고 인도와 베트남을 이 대열에 참여시키기 위하여 그간 많은 공을 들여왔다. 미국의 동맹인 우리는 미국의 세계 대전략에 어느 정도 동조할 필요가 있기에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현 정부는 이전 정부보다 남중국해와 대만 문제에 대해 한 걸음 더 나간 표현을 사용하여 중국을 다소 자극하였다.
자유진영과 권위주의 진영 간의 분열이 불가피해지면 우리는 자유민주국가로서 당연히 자유진영의 편에 서야 하고 따라서 권위주의 진영과 대립각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 국가의 정체성은 이런 정책방향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중국의 공세적 대외정책이 계속되고 우리의 생명선이나 다름없는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배타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우리의 국익이 심각히 손상되기에 이에 대해 우리가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중국이 지향하는 세계질서, 중화적 세계관과 중국몽이 반영된 국제체제는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와도 충돌할 것으로 전망되므로 이 점에 대해서도 우리는 경계의 눈초리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중국이 내정문제로 간주하는 대만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조금 더 유의해야 하는 점을 빼고는 현 정부의 대중 정책방향에 잘못은 없다. 단지 현 정부가 중국이 보기에는 이전 정부와 달리 좀 반중적이고 훨씬 친일적으로 보일 뿐 아니라 미국의 대중봉쇄에 적극 가담하듯 보인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런데 자유진영의 대중견제 전선이 잘 유지되고 더 강화된다면 우리의 이런 대중 정책방향이 문제가 될 일은 없다. 그러나 이런 대중 견제전선이 약화되거나 개별국가들이 중국과 화해무드로 돌아서면 우리만 난감해진다. 사실 우리의 의도가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우리의 정책방향은 그런 인상을 남기고 ‘가까운 이웃의 말이 더 아프다’는 자국 속담을 떠올리며 중국은 한국을 홀대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런데 최근 미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들의 대중 견제전선에 이상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우선 견제전선을 설계하고 앞장서 이끌던 미국이 중국에 대해서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올해 4월 들어서 미국은 EU를 뒤따라 중국과 ‘분리(decoupling) 정책’을 포기하고 첨단기술 분야가 군사목적으로 전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위험감소(derisking) 정책’으로 대중 정책의 방향을 전환하였다. 그 이후 미국의 고위급 인사들이 중국을 연거푸 방문하면서 중국 고위급과 대화채널을 열고 시진핑의 방미를 거듭 요청하였다. 그럼에도 중국은 미국이 관계개선을 위한 실질적 조치, 즉 5불 정책을 취할 것을 요구하며 시진핑의 방미와 미·중 정상회담에 대한 확답을 회피했다. 올 10월 중반이 되어서야 시 주석과 미국 CEO 300명과 회동계획이 알려지면서 그의 방미는 기정사실화 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거듭된 요청에도 중국은 정상회담에 대해 답을 하지 않고 미국의 제재해제를 요구하며 시간을 끌었다. 결국 미·중 재무장관의 회동이 있고 난 후, 정상회담 개최 불과 나흘 앞두고 이를 확인하였다. 이것은 보통 국가들 사이는 물론 강대국간 외교관행에서 볼 때는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어렵사리 성사된 미·중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큰 돌파구는 마련하지 못했지만 양국간 긴장, 대결 국면을 화해, 조정 국면으로 전환하는 데는 뜻을 같이하였다.
이렇게 미국이 공들여 중국과 화해의 물꼬를 트기 전 호주 총리도 11월 초 중국을 방문하여 지난 7년간 긴장, 갈등을 지속하던 양국간 관계를 해빙무드로 돌려놓았다. 이전 자유당 정부하에서 호주는 자국의 정체성에 입각하여 중국에 대항하는 원칙주의적 외교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미국이 주도하는 AUKUS에 가입하여 대중봉쇄의 선봉에 서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중국이 가한 강압적 경제보복 조치를 호주는 몇 년간 꿋꿋이 버텨냈다. 작년 5월 알바니즈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이 집권한 초기에 호주 신정부는 전 정부의 정책을 계승해 초당파적인 대중외교를 하겠다고 천명하였다. 그런데 지난 1년 반 중국의 화해공세에 화답하며 호주는 최근 대중 관계개선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하였다.
그리고 미국이 대중전선에 합류시키기 위하여 바이든이 지난 9월 방문까지 하며 공을 들인 베트남이 11월 하순 다른 아세안 4개국과 함께 중국 본토에서 합동군사훈련을 하였다. 베트남은 중국과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두고 오랜 기간 충돌을 거듭하면서 미국, 호주와 전략적 연대를 맺는 것을 당연한 정책 선택으로 여겼다. 베트남은 그래서 이 두 국가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맺었고 이들과 힘을 합쳐 남중국해에서 중국 영향력을 축소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그런 베트남이 갑자기 중국과 합동군사훈련을 한다는 것은 상당한 정책방향 선회인데 이를 가능케 한 베트남의 복합외교술이 놀랍다.
마지막으로 일본 기시다 총리도 APEC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일본은 정상회담을 성사시켰을 뿐만 아니라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재개를 중국에 당당히 요청하는 공세적 외교를 펴서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일본도 중국 견제 목적의 인·태전략을 처음으로 발표하고 자국의 다이아몬드 전략과 유사한 미국의 쿼드(QUAD) 협력체에 바로 가입하여 대중견제 전선의 최일선에 서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일본이 친미적이고 중국과는 표면적으로는 상당히 관계가 경색된 것처럼 보였으나 일본도 물밑으로는 중국과 관계개선을 위한 끈을 놓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을 비롯한 대중 견제전선에 우리와 같이 서있던 나라들이 이제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정책선회를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만 견제전선에 홀로 남아 마치 우리가 그 전선의 선두에 서있는 것처럼 보이는 형국이 되었다. 그러니 중국이 우리와 관계개선을 하려하기 보다는 우리를 오히려 길들이기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배경하에 이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우리가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 백방 노력했음에도 무위로 돌아간 것은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다.
앞에 예를 든 4개국이 중국과의 관계개선에 나선 이유는 각기 다 달라 보이고 우리가 그 속을 다 알 수도 없다. 다만 전체적으로 공통적인 이유를 분석한다면 각국이 중국을 봉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중국과의 대결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자국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실용주의적 판단을 했을 수 있다. 그래서 원칙적인 부분을 양보하지는 않더라도 중국과 관계개선을 위하여 상징적인 부분에서 중국의 체면을 세워주는 조치들을 취하며 타협을 모색했을 수 있다.
우리도 앞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이들 나라처럼 국익기반 실용외교 기조로 운영해 나가야 한다. 중국과의 관계를 우리 국익적 관점에서 냉정히 판단해야지 다른 나라의 구상이나 이념을 그냥 쫓아가면 안 된다. 그리고 중국과는 철저히 실질적으로 상호 이익이 되는 카드를 찾아 물밑 거래를 해야 한다. 그냥 상식적 논리로 중국을 설득하거나 중국의 선의를 구걸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우리가 양보할 수 없는 우리의 정체성과 가치는 분명히 밝혀두어 중국이 우리에게 부당한 기대를 하지 말게도 만들어야 한다.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호주와 베트남도 사실 이러한 노선을 분명히 지켰기에 오히려 중국이 관계개선을 먼저 시도하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며 우리는 중국과의 관계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 대사 △국회의장 외교 특임대사 △주호주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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