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판매한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에 대해 금융당국이 긴급 실태 조사에 나선 가운데, 내년 상반기 해당 상품의 손실 규모가 최소 3조원 이상일 것으로 추산된다. 내년 상반기 만기 도래하는 관련 상품 규모만 8조원 이상인데, 홍콩H지수의 40∼50% 폭락 여파로 해당 하락분이 반영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가 여전하고 내년 하반기 관련 상품 만기 규모도 3조원에 달해 이번 홍콩H지수 ELS 사태가 '제2의 펀드 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판매한 홍콩H지수 연계 ELS 가운데 약 8조4100억원어치(지난 17일 기준)가 내년 상반기 만기를 맞는다. 은행별로 보면 KB국민은행이 4조7726억원으로 가장 많고 △NH농협은행 1조4833억원 △신한은행 1조3766억원 △하나은행 7526억원 △우리은행 249억원 순이다.
최근 금융권에선 해당 상품이 내년 상반기 8조원의 40% 이상 즉 3조원이 넘는 손실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통상 해당 상품의 만기는 2년 반에서 3년인데, 상품이 판매된 지난 2021년 이후 홍콩H지수가 약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홍콩H지수는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 가운데 50개 종목을 추려 산출하는 지수다. 홍콩H지수는 지난 2021년 2월 1만2000대를 넘어섰으나 같은 해 말 8000대까지 떨어진 뒤 현재는 40∼50%에 불과한 6000대까지 추락한 상황이다. 해당 상품에 관련 지수의 하락률이 반영된다. 중국 경제는 지난 2021년 중국 빅테크(대형 IT기업) 규제와 대형 부동산 업체 파산, 2022년 미국 내 중국 기업 상장폐지, 코로나19에 따른 상하이 봉쇄 등이 이어지며 급격히 악화됐다.
일부 은행에서는 이미 해당 상품군에서 40%대 원금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실제 하나은행에서 판매된 홍콩H지수 ELS 상품에서 지난 7월부터 이달까지 약 83억원의 원금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만기 도래 규모 약 181억원 중 손실률이 45.9%에 달하는 수치다.
금융권은 글로벌 고금리 기조가 지속돼 홍콩H지수가 반등하기 어렵고, 중국 경기가 추가로 악화될 경우 상반기 손실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여기에 내년 하반기 홍콩H지수 연계 ELS의 만기 도래 규모도 3조9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돼 관련 우려를 가중시키고 있다.
은행권은 부랴부랴 지난 6∼8월 대응팀을 구성하고 대고객 안내 및 대안 상품 연결 등 지원방안을 마련 중이다. 그러나 2021년 판매 직후 중국 경기 악화세가 뚜렷한 점을 감안하면 늑장 대응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이번 홍콩H지수 ELS 사태가 제2의 펀드 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은행권 관계자는 "손실 예상 금액이 상당해, 내년 원금 손실이 본격화하면 시장의 혼란이 커질 것"이라며 "아울러 증권사 중에서도 관련 판매사들이 존재해 사태의 파장이 확산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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