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株式) 거래와 채권(債券)을 비롯한 증권 투자가 대중화하고 있습니다. 거래소에는 나날이 새로운 종목이 상장하고 수많은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는 이들 종목이나 지수와 관련한 상품을 끝없이 쏟아냅니다. '채권·주식 가치 탐구(권주가·券株價)'는 자본시장에 이제 입문한 기자가 종목, 시장, 산업을 공부하고 관점을 세워 가는 과정을 기록합니다. <편집자 주>
IT서비스 업계에 국가·공공 행정기관의 중요한 전산 시스템 구축과 인프라 관리를 중소·중견 업체에만 맡길 수 없다는 메아리가 퍼졌습니다. 전국의 행정 전산 체계가 먹통이 돼 며칠 동안 수많은 국민에게 불편을 끼친 이후부터죠. 정부가 먹통 사태 재발 방지책으로 대기업의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 참여를 허용하는 법령 개정을 추진하기로 하자, 주요 삼성·LG·SK·현대차·롯데 같은 주요 그룹 계열 IT서비스 업체가 혜택을 볼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보고 들은 IT서비스 업계의 실상은 그렇지 않은데요. 대형 IT서비스 기업 가운데 코스피·코스닥에 상장했거나 기업공개(IPO)를 진지하게 준비하는 곳일수록 공공 SW 사업 참여를 꺼리는 것으로 파악됐어요. 왜곡된 사업 금액 산정 체계, 빈번하고 무리하게 변경되는 요구사항과 추진 일정, 사업 발주 공공 기관이 아닌 민간 수주 업체가 모든 사고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힘의 비대칭 구조 등 불합리한 관행과 고질적인 문제가 20여 년 동안 누적된 결과죠.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는 대기업은 2013년부터 공공기관 전산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명 공공 SW 사업에 참여할 수 없었어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관 법률 ‘소프트웨어 진흥법’에서 중소·중견 SW 업체에 공공 SW 시장을 열어 성장할 기회로 활용케 한다는 취지였죠. 실제로 대기업이 참여하지 못하게 된 사업을 맡은 일부 중견 SW 업체가 외형을 빠르게 키워 왔는데요. 이런 회사들은, 공공 SW 사업 비중이 클수록 재무제표상 이익률이 낮은 특징을 보인답니다.
공공 SW 사업의 예산은 일종의 투입 인력 또는 개발 공수(결과물 제작에 필요한 작업량)의 규모에 따라 산정돼요. 사업 수행 업체로 선정된 곳이 수행 비용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줄일 수 없기 때문에 이익률을 높이기 어려운 구조예요. 입찰 단계에 가격 경쟁을 해야 하고, 이미 결정된 발주 기관 예산 범위 안에서 사업을 수행해야 해요. 추가 매출 상승 기회도 제한적이에요. 시스템을 구축하는 도중에 발주처 요구사항(과업 범위)이 바뀌기도 해요. 시스템 개통 이후 오류가 났을 때 예정하지 않았던 개발·운영 인력을 투입해도 추가 비용을 청구하기 어렵고요.
이러니 돈이 될 만한 사업이라고 할 수 없지요. 대기업 그룹 내 일감을 대거 맡고 있거나 외부 민간 기업 시장을 원활하게 공략하고 있는 IT서비스 업체인데도 공공 SW 사업을 탐내는 곳이 있다면, 수익성 외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봐야 해요.
코스피 시총 23위의 IT서비스 업계 선두 삼성SDS가 이를 방증하는데요. IT서비스 업계에서 '공공 차세대 전산 시스템' 사업이 뜨면 입찰 경쟁을 벌이는 대기업 중 한 곳이었는데 지금은 아예 공공 SW 사업 전담 조직을 두지 않고 있어요. 앞서 얘기한 것처럼 경쟁사들과 저가 입찰 경쟁을 해서 사업을 따낸들, 큰 매출을 거둘 수도 없고 많은 이익을 남길 수도 없다는 판단에서죠. 그럴 여력이 있다면 성장성이 큰 클라우드, 인공지능(AI) 같은 디지털 신기술 분야 역량을 강화하자는 게 이 업계의 공통된 인식이었습니다.
최근 살펴본 삼성SDS 주가는 최근 한 달 사이에 상승세를 보였네요. 종가 기준으로 10월 31일에 13만8200원이었는데 11월 30일에 16만8400원이 됐어요. 오늘(4일)은 16만3700원으로 하락 마감하긴 했지만, 올해 7월 7일 장중 최저가(11만4600원)를 염두에 두면 주가가 낮다고 할 수 없죠. 이 회사는 수년간 공공 SW 시장과 거리를 뒀어요. 올 3분기 클라우드 사업만 분기 매출 4700억원을 기록해 주 사업인 IT서비스 부문 비중 30%를 넘겼죠.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4.3% 증가했어요.
아무리 덩치가 크고 재무상 여력이 있는 대기업 계열 IT서비스 업체라 해도 이익률을 훼손당하기 쉬운 공공 SW 사업 비중을 늘리기보다 적정선 이하 규모를 유지하는 게 합리적이에요. 삼성SDS와 함께 ‘IT서비스 빅3’로 묶이던 LG CNS와 SK㈜ C&C의 속내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특히 비상장사인 LG CNS는 증권가에서 주관사를 선정하고 작년부터 IPO를 추진하고 있는 ‘대어’로 주목받고 있는데요. 이 회사의 상장을 추진하는 주관사나 투자자 입장에서는 투자 매력도를 떨어뜨릴 수도 있는 공공 SW 사업에 일절 관심을 주고 싶지 않을 거예요.
잠깐 다르게 생각해 보죠. 혹시 IT서비스 업계 밖으로 눈을 돌리면 다른 수혜주가 있지 않을까요? 대통령 직속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출범 이후 국정과제인 디지털플랫폼 정부 실현이 추진되고, AI와 클라우드 기술을 보유한 ‘디지털 전환’ 전문 기업을 자처하는 회사들이 나오고 있으니까요.
네이버·카카오·KT·NHN 등이 저마다 기술 개발 경쟁력에 초점을 맞춘 자회사를 통해 관련 사업을 전개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들 역시 순전히 공공 SW 사업만으로 큰 이익을 거둘 가능성은 작아요. 네이버와 NHN이 일부 공공 클라우드 시장 수요를 공략하고 있지만 기대치가 더 높은 곳은 국내 금융권이나 해외 신흥 국가의 민간 시장일 거예요. 카카오와 KT는 현재 진행형인 경영진의 사법 리스크 때문에 사업자에게 수행 역량과 의지가 있다고 해도 공공 SW 사업 기회를 줄 만한 상황이 아니기도 하고요. 오늘 네이버 주가는 전날보다 2.18%(4500원) 오른 21만500원에 마감했네요. 카카오는 2.21%(1100원) 올라서 종가가 5만800원이고요. NHN과 KT도 소폭 올랐네요.
제게 익명을 당부한 IT서비스 업계 관계자는 “이미 현행 제도 안에서 사업 금액 규모(1000억원 이상), 디지털 신기술(클라우드·빅데이터 등) 사용 여부를 기준으로 일부 대기업 참여를 허용하고 있는 상황 아니냐”며 “이 제한을 일부 완화하든 전면적으로 걷어내든 고질적인 공공 SW 사업 내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전향적으로 수행 의지를 갖추고 달려들 대기업 IT서비스 회사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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