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부터 불거진 전세사기 여파로 빌라(다세대·연립주택) 시장이 얼어붙으며 '서민 주거사다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궁극적으로 '빌라는 위험하다'는 인식을 줄이고 수요를 살릴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30일 서울시 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까지 서울 빌라 전세 거래량은 5만9539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7만6368건보다 22% 줄었다. 전세수요가 줄며 매매가격도 떨어졌다.
한국부동산원 집계에 따르면 연립·다세대주택 매매가격지수는 올해 1월 100.3에서 10월에는 98.7로 하락했다. 앞서 정부가 9·26 대책으로 비아파트 건설에 자금 지원, 금융 지원 등 공급 촉진 방안을 내놓았지만 빌라시장 위축은 여전한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전세사기 여파로 꺾인 빌라 전세수요를 회복할 만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주거비용을 절약하기 위한 선택지가 빌라였는데, 전세사기로 서민들의 주거 선택지가 줄어들었다"며 "임차인 입장에서 빌라는 '깜깜이 시세'다. 감정평가사가 정확하게 시세를 감정하고, 그 금액을 바탕으로 매매가의 일정 비율 이상은 전세가로 설정하지 못하도록 캡을 씌우는 방안이 있다"고 말했다. 고 대표는 "근저당권이나 가압류 등 선순위 권리가 있는 빌라는 전세계약을 못하도록 제한하는 방안도 법제화를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정부가 전세계약 시 정보의 투명한 공개를 보장하는 시스템을 만들 것을 촉구했다. 김인만 소장은 "모든 문제는 전세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인데, 결국 수요자들이 안전하게 계약할 수 있는 공공 시스템을 정부가 구축해줘야 한다"며 "중개사를 통해 계약할 때 자동으로 집주인 체납정보, 연체율, 과거 이력 등을 조사해 검증결과를 보여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추후 금리가 오를 때 또 전세사기가 재발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도 "전세사기 예방을 위해 빌라 매매·전세·월세 가격 정보가 지금보다 훨씬 더 투명하게 수요자에게 전달돼야 한다. 공인중개사도 빌라 중개 시 매뉴얼을 더욱 철저히 지키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빌라 공급을 활성화할 수 있는 대책으로는 임대사업자 인센티브, 용적률 완화 등이 제시됐다. 고종완 원장은 "빌라는 소득, 자금이 부족한 서민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주거사다리인 만큼 공급이 위축되지 않도록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관리·감독할 수 있는 주택 등록임대사업자들에게 세제 완화 등 혜택을 적용해서 공급을 유도하는 방안이 있다"고 조언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전세사기로도 위축됐지만 토지가격과 공사비 급등으로 사업성이 안 나와 공급한계가 올 시점인데, 용적률을 높여줘서 사업성을 높여주는 방법이 있다"며 "서울시가 아파트 용적률 상향해주듯, 빌라도 용적률을 50% 정도 더 올려주는 방안을 조례 수준이 아닌 법적 허용 기준으로 상향하는 것을 검토해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이 밖에 빌라에 대한 선호도를 궁극적으로 높여 비아파트 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빌라도 아파트와 같은 수준은 아니라도 쾌적한 실거주를 할 수 있도록 주차장 확보, 커뮤니티 시설 등을 지원하는 정책이 마련되면 장기적으로 빌라에 대한 선호도가 개선, 주거사다리 공급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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