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사회로의 급격한 전환 속에서 우리는 혁신적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일상생활에서 많은 편의와 이익을 누리고 있다. 이를테면 블록체인 기반 분산 신원증명(Decentralized Identity) 기술은 신분증 사용 이력을 자신만 확인할 수 있도록 해 안전하면서도 더 이상 실물카드 형태의 신분증을 지참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을 제공한다. 인공지능(AI) 음성합성과 영상합성 기술이 적용된 키오스크는 실제 사람이 말하는 것과 유사한 솔루션을 제공해 주문받는 직원 없이도 매장 운영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디지털 혁신이 불러온 변화된 세상은 헌법체계 전반의 가치 이념 속에서 기본 권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요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생활에 필수적인 공공영역에서 디지털 기술에 친숙하지 못한 취약계층에는 대체수단이 보장돼야 한다는 '아날로그 접근권'과 같은 새로운 권리의 필요성이 대두하고 있다.
이런 시대적 요구에 발맞춰 지난 9월 25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디지털 공동번영사회의 가치와 권리에 관한 헌장'을 보고했다. '디지털 권리장전'이라 약칭하는 이번 헌장은 디지털 공동번영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기본 원칙과 권리를 천명하고 있으며, 글로벌 논의를 선도할 수 있는 보편적 디지털 질서 규범의 기본방향을 담고 있다.
권리장전에서 핵심 가치로 내세우는 자유·공정·안전·혁신·연대는 앞으로 디지털 사회의 새로운 질서를 정립할 때 중요한 기준점으로 삼아야 할 가치다. 나아가 디지털 시대에 대응해 다양한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법제 정비 과정에서는 이러한 근본 가치를 관철하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디지털 기술을 통한 혁신은 경제 주체에게는 새로운 성장 기회를 부여하기도 하지만, 반면 여기서 소외돼 혁신적 이익을 누리지 못하는 주체에겐 오히려 차별과 불균형을 초래하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각 주체가 자유를 최대한 보장받으면서도, 공정한 생태계 내에서 안전과 혁신을 동시에 추구함으로써 국제적 연대를 주도하겠다는 권리장전의 담대한 포부는 디지털 사회의 균형적인 글로벌 규범 형성을 위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앞으로 이러한 디지털 권리장전의 핵심 기조를 어떻게 사회에 접목하고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계승해 나갈 것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문제 해결은 사회 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조정하는 과정을 통해 합리적인 대안들을 모색해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대안의 모색 과정에서는 디지털 소사이어티와 디지털 신질서 협의체를 구성해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게 된다. 각계각층의 사회적 공론화 과정과 한국법제연구원을 비롯한 유수 연구기관들이 참여해 성안한 이번 권리장전의 제정 과정이 우리 사회의 공감대를 형성해 가는 데 좋은 모델이 될 것이다.
디지털 사회 진전을 위한 규범적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2023년은 대한민국이 지나온 격동의 헌정사 가운데서도 큰 획을 그은 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근대화와 산업화 이후 긴 역사에 걸쳐 정립돼 온 법치주의적 이론과 기본 권리 개념은 디지털 시대 변화에 맞추어 근본적인 재발견과 재해석이 불가피하다. 이런 현실에서 국가의 입법정책을 뒷받침해 온 한국법제연구원도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다양한 법제 정비 연구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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