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준비를 위한 주요 기업들의 임원인사가 속속 발표되는 가운데 재계 경영 승계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최근 수혈되는 오너 일가의 '젊은 피'는 사원으로 입사해 바닥부터 다양한 경험을 쌓는 과거와 달리 20대부터 중책을 맡아 30대에 별을 달며 차기 후계자로 일찌감치 눈도장을 찍는 모습이다. 경영 수업을 받던 오너 일가 4·5세들의 경영 참여가 본격화되면서 이들을 보좌해야 할 임원들의 평균연령도 40대로 낮아지는 등 그룹 전반의 '세대교체'가 가속화되는 분위기다.
4일 재계에 따르면 내년 임원인사에서 1980~1990년대생 오너 일가 3~5세들이 경영 전면에 배치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먼저 HD현대그룹 오너 3세인 정기선 HD현대 사장은 이번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정 부회장은 1982년생으로 2009년 재무팀에 입사한 뒤 2014년 상무로 승진해 약 5년 만에 임원단에 합류했다. 2021년 HD현대 사장으로 승진한 뒤 2년 만에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본격적인 오너 경영 체제를 예고했다.
코오롱그룹의 4세인 이규호 코오롱모빌리티 사장도 내년 인사에서 지주사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1984년생인 이 부회장은 2012년 코오롱인더스트리 구미공장 차장으로 입사해 코오롱 글로벌, 코오롱인더스트리 등을 거쳐 약 11년 만에 부회장까지 올랐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오너 3세인 박세창 금호건설 사장도 최근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박 부회장은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아들로 할아버지는 금호그룹 창업주인 고 박인천 창업회장이다. 2002년 아시아나항공에 입사해 전략경영본부, 금호타이어, 아시아나IDT 대표이사 사장 등을 거쳐 2021년 금호건설 사장에 올랐고 2년 만에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GS건설에선 허창수 GS그룹 명예회장의 아들인 허윤홍 사장이 이번 정기인사에서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오너4세인 허 사장은 2019년 신사업추진실 부사장으로 승진한 뒤 2020년 신사업부문, 미래혁신대표 등을 맡다가 이번에 GS건설 CEO로 전면에 나섰다. 1979년생으로 미국 세인트루이스대 국제경영학과를 졸업하고 2002년 LG칼텍스(현 GS칼텍스)에 입사해 2005년 GS건설로 자리를 옮겨 재무, 플랙트기획, 경영관리, 신사업부문 등 다양한 분야를 거쳤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장수 기업인 두산에서는 오너 5세가 등장했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의 장남 박상수씨와 박지원 두산그룹 부회장 겸 두산에너빌리티 회장의 장남 박상우씨가 주인공이다. 1994년생 동갑내기인 박상수씨는 두산 신사업전략팀에 입사해 그룹 전반의 신사업전략을 수립하는 일을, 박상우씨는 두산퓨얼셀 미국법인에서 그룹 차세대 먹거리로 부상 중인 신재생 에너지 업무를 담당한다.
5대 그룹에서는 롯데그룹 3세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의 승진 여부가 주목된다. 1986년생인 신유열 상무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으로 일본 롯데에 부장으로 입사한지 3년 만에 임원으로 승진했고, 최근에는 일본 롯데케미칼, 일본 롯데파이낸셜 등에서 존재감을 키우며 후계자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이밖에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장녀인 최윤정씨는 SK바이오팜 신약개발파트를, 장남 최인근씨는 SK E&S의 미국 에너지솔류션 투자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내년 글로벌 복합위기 속에서 끊임없이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재계가 경영만이라도 안정적인 모습을 추구하기 위해 후계자들의 승진을 서두르고 있다"면서 "후계자들 사이의 서열과 그 격을 맞추려는 분위기도 인사를 서두르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어 "해외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오너 3~5세들은 부회장단을 두기보다는 계열사 대표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그룹을 장악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창업회장과 달리 고위 임원단도 점점 축소되는 분위기"라면서 "특히 젊은 경영인들은 '소통'을 중시하는 MZ직원들과의 화합과 신사업 성과를 통해 그룹 내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하는 과제를 동시에 풀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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