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중 인터넷 공시 정보 웹사이트 '다트(DART)'에서 누구나 사고팔 수 있는 ‘토큰 발행 증권신고서’ 공시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부가 올 초 토큰 증권 발행과 유통을 제도권에 끌어안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법령과 규율 체계 정비에 나섰거든요.
토큰 증권은 발행과 유통에 블록체인과 같은 분산원장 기술을 이용하고, 법적으로는 자본시장법상 증권으로 인정받는 디지털 자산을 뜻하는데요. 업계는 토큰 증권을 통해 다양한 실물 자산에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투자하고 상응하는 권리를 나눠 갖는 일명 ‘조각 투자’의 시장 기반을 조성하고 양적·질적으로 시장을 키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요.
신석영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지난 2월 관련 보고서를 통해 국내 토큰 증권 시가총액이 2024년 34조원에서 2030년 367조원으로 급성장할 것으로 내다봤어요.
7일 현재는 토큰 증권 발행과 유통이 불법이에요. 합법화하려면 자본시장법과 전자증권법을 바꿔야 해요. 그래서 올해 7월 분산원장 기반 전자증권을 수용하고 발행인 계좌관리기관 지위를 신설하는 전자증권법 개정안과 장외거래중개업자 지위를 신설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발의됐는데, 국회에 계류 중이죠.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의 보고서는 토큰 증권 관련 법령이 완비되는 시기를 2024년으로 예측하고 2028년이면 국내 토큰 증권 시장 규모가 233조원에 이르러 GDP의 9.4% 수준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했어요. 보고서를 쓴 신 연구원은 “증권과 같은 금융 상품은 법제화와 전산화 수준이 높아 토큰 증권 발행에 적합하다”며 “국내 토큰 증권 시장은 주식, 부동산과 같은 금융 관련 시장이 주도”할 것으로 본다고 해요.
尹 정부, 가이드라인 통해 토큰증권 발행·유통 합법화 '빌드업'
정부는 작년과 올해 조각 투자와 토큰 증권 관련 법제화 논의 과정에 몇 차례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는데요. 2022년 4월 29일 ‘조각 투자 가이드라인’에서 “투자자가 수익 청구권을 취득하며 투자자가 얻게 되는 수입에 사업자의 전문성이나 사업 활동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 ‘투자계약증권’으로 인정”할 수 있고 “자본시장법 등 관련 규제를 모두 준수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어요.
이후 조각 투자 서비스에서 물건의 공유지분을 판매해 실물 자산의 소유권을 취득하는 경우에도 증권인지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는데, 정부는 2022년 11월 29일 보완한 가이드라인을 통해 “실물자산 가치를 높여 수익을 배분받기 위한 서비스의 계약상 권리를 함께 취득하므로 (실물 자산 소유권을 취득하는 경우도)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한다는 해석을 제시했지만, 즉각 유통시장을 허용하지는 않았어요.
이어 올해 2월 6일 ‘토큰 증권 가이드라인’이 나왔어요. 현행 자본시장법상 증권의 정의는 그대로였지만, 토큰 증권이라는 디지털 자산이 새로운 증권 발행 형태라는 점을 감안해 투자계약증권 요건에 대한 기존 설명을 보완하는 게 목적이었는데요. 정부는 이때 “국내에서 공모 발행됐거나 시중에서 거래되는 디지털 자산이 증권으로 판명될 경우 발행인 등은 자본시장법을 위반한 것이므로 원칙적으로 제재 대상”이라면서 “디지털 자산의 증권 여부 판단에 대한 적용례 및 판례 등이 축적될 경우 가이드라인에 반영해 지속 보완하고 안내”하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3월에 ‘토큰 증권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방안’을 발표해 자본시장법의 틀 안에서 투자자 보호 취지를 살리면서 이를 허용하겠다고 선언했어요. 업계 분위기가 확 달라진 것도 이때부터예요.
정부는 법 개정을 통해 토큰 증권을 전자증권법 제도상 ‘증권발행’ 형태로 수용하기로 하고, 토큰 증권을 등록·관리하는 ‘발행인 계좌관리기관(증권사·은행 등)’ 지위와 투자계약증권·비금전 신탁수익증권을 사고팔 수 있는 ‘장외거래중개업’ 지위를 신설하려고 해요. 비정형적인 투자계약증권이나 기존 주식·채권·파생결합증권(ELS)·증권예탁증권(DR)처럼 정형적인 증권을 분산원장 기반 토큰 증권 형태에 담아 발행하고 유통할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이에요.
“경쟁보다 협력”… 증권·IT 업체 컨소시엄, 사업 기회 발굴
기술적인 인프라와 사업 조직, 인력을 갖춘 민간 기업들이 반색하고 있어요. 특히 증권사들과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이에 대응해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하나증권은 지난달 22일 토큰 증권 비즈니스 생태계 조성과 사업 협력을 주제로 증권사 10여곳 등 70여곳이 참여한 세미나를 진행했어요. 지난 6일 기술 매칭 솔루션 업체 일루넥스와 업무협약을 맺고 기술특허 기반 토큰 증권 발행 사업모델 개발에 나섰고요. 앞서 피나클, 오아시스비즈니스, 프린트베이커리, 아이티센, 다날엔터테인먼트 등과 손잡고 부동산, 예술품, 금·은, 모바일콘텐츠 같은 기초자산 조각 투자 플랫폼과 토큰 증권 사업 전략 일환이에요.
미래에셋증권도 토큰 증권 컨설팅 업체 ‘크로스체크’와 지난달 업무협약을 맺었고 이 분야 사업 협력을 예고했어요. 앞서 링거스튜디오, 열매컴퍼니, 한국토지신탁, HJ중공업, 핀고컴퍼니, SK텔레콤, 서울옥션블루, 밸류맵 등과도 업무협약을 맺었다고 하네요. 미래에셋증권은 ‘넥스트 파이낸스 이니셔티브(NFI)’라는 이름의 컨소시엄과 실무 협의체 ‘ST워킹그룹(STWG)’에 참여해 활동하면서 시장 초기 입지를 넓히려고 해요.
신한투자증권은 증권형 토큰 플랫폼 서비스(공식명 ‘블록체인 기반의 금전채권 수익증권 거래 플랫폼 서비스’)가 지난 21일 금융위 금융규제샌드박스를 통해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받았다고 밝혔어요. 내년 하반기 이 서비스를 출시할 계획이에요. 이 서비스는 신한투자증권이 이지스자산운용, 블록체인 기술업체 ‘EQBR’과 설립한 합자법인 ‘에이판다파트너스’와 함께 추진되고 있죠.
증권사들끼리 경쟁만 하는 건 아니에요. 신한투자증권은 KB증권, NH투자증권과 지난달 26일 토큰 증권 분야 증권사 컨소시엄 구성 전반에 대한 업무협약을 맺고 3사 공동 인프라 구축을 넘어 전략적 사업모델 발굴까지 협업해 나가겠다고 선언했죠. 신한투자증권은 토큰 증권 발행과 유통 과정을 테스트했고 ‘STO얼라이언스’라는 협의체에서 토큰 증권 발행 실증 사례를 만들어 시장 활성화에 기여할 계획이에요.
KB증권은 작년에 토큰 증권 사업 전담 TF를 구성했고 올해 4월 조각 투자 서비스 운영사 ‘바이셀스탠다드’와 업무협약을 맺었어요. 토큰 증권 발행 및 유통 시스템을 구축해 테스트하고 고도화해왔고 ‘ST오너스’라는 협력체도 구성했죠. 시스템 구축 경험을 바탕으로 증권사 토큰 증권 인프라 표준화에 힘을 쏟기로 했어요.
NH투자증권은 연초 부동산 조각 투자 서비스 운영업체 ‘펀블’이나 기초자산평가업체 등을 포함하는 협의체 ‘STO비전그룹’을 구성했어요. 지난 8월에는 ‘투자계약증권 올인원 서비스’를 출시해 발행사의 증권 발행부터 청산까지 모든 과정을 지원하고 있다고 해요. ‘투게더아트’라는 조각 투자 업체의 고객 계좌·자금 관리도 맡고 있는데, 투게더아트는 이달 1일 금융감독원에 미술품 투자계약증권 사업을 위한 증권신고서와 예비투자설명서를 제출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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