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세부 규정이 나오면서 전기차와 배터리 기업의 공급망 이슈가 심화한 가운데 한국 기업들이 이중고를 겪게 됐다. 이미 IRA에 따른 수출 제약으로 발동이 걸린 상태인데, 유럽판 IRA가 등장하며 외산 전기차에 빗장을 강화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는 오는 15일(현지시간) 전기차 보조금 지급 대상 차종을 발표한다. 탄소배출량을 추정화한 '환경 점수'를 충족시키면 최대 7000유로의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것이 골자다.
애초 이 제도는 프랑스 정부는 저가 중국산 전기차의 자국 시장 진입을 막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정작 세부 내용을 따져보면, 국내 기업들에도 부담인 내용이 포함됐다. 환경 점수에서 전기차를 선박으로 나를 때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포함하면서 아시아 국가들이 만드는 전기차는 보조금 대상에서 사실상 제외된 것이다.
당장 기아는 사정권 안에 들게 됐다. 유럽 내에서 전기차를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프랑스 전기차 시장 5위(1만6570대)를 기록했다. 현재 현대차는 체코 공장에서 전기차 1개 모델(코나 EV)만 생산중이다.
최근 이탈리아 정부도 중국산 전기차를 보조금에서 제외하는 제도 개정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튀르키예는 전기차 수입사가 전국에 의무적으로 140개 이상의 공인 서비스센터와 콜센터를 보유토록 하는 등 외산 전기차에 대해 진입장벽을 높이고 있다.
최근 유럽연합(EU) 집행위가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반(反)보조금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히면서 이 같은 조치가 생겼다. EU 집행위는 중국 전기차 업체가 국가 보조금에 기대 가격을 유럽 차 대비 평균 20% 낮췄는데, 이는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표면적으로는 시장 질서를 바로잡겠다는 이유지만, 속내는 유럽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는 데 있다. 중국을 비롯한 다른 주요 자동차 수출국도 규제의 칼날에 직면할 수 있다는 얘기다.
글로벌 업계는 이미 IRA에 따라 원소재 수급 다각화와 수출 다변화 등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진 상황인데, 유럽마저 보호무역 기조를 강화하고 나서자 국내 기업들의 시름도 깊어졌다.
최근 미국은 중국 자본의 지분율이 25%를 넘는 합작사를 '해외우려집단(FEOC)'으로 확정하며 중국산 원소재를 쓰면 IRA에 따른 보조금 받을 수 없게 못 박았다. 현재 업계는 배터리 핵심 소재에 대한 대(對)중국 의존도를 쉽게 끊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판단, 보조금을 포기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현대차는 IRA 적용가에 차를 판매하기 위해 수익성 하락을 감수하고 딜러사에 주는 인센티브를 늘리며 현지 점유율 방어에 나섰다.
보호무역 기조가 갈수록 심화하는 상황에서 일본 정부는 전략산업 살리기에 나섰다. 전기차 등 5개 산업 분야에 대해 10년간 세금 감면 혜택을 주기로 하면서다. 기업이 감세로 얻은 이익을 설비투자 및 공급망 강화로 연결하기 쉽게 하는 게 일본 정부의 목적이다.
일본 정부와 여당인 자민당은 2024년부터 세제를 개정해 전략물자의 자국 내 생산량과 판매량에 비례해 기업의 법인세를 줄여주는 '전략 분야 국내 생산 촉진 세제'를 신설하기로 지난 13일 확정했다. 이는 자국 내 생산을 촉진하는 IRA를 참고한 제도여서 '일본판 IRA'로 불리지만 중국 견제 수단이라기보단 전략물자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는 목적이 크다.
골자는 전기차와 배터리, 반도체, 재생항공연료(SAF), 그린 스틸, 그린 케미컬 등 5개 분야의 생산량에 비례해 반도체는 20%, 나머지 4개 분야는 40%까지 법인세를 10년간 감면해 주는 것이다. 세금 감면 규모는 전기차 1대당 40만엔, 항공 연료는 1리터당 30엔, 철강은 1톤당 2만엔이다.
국내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일본의 경우 IRA 등에 따른 보조금을 못 받더라도, 국내 생산 보조금으로 수출시 가격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며 "한국 정부도 생산에 비례한 보조금을 검토하는 등 실질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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