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를 떠받치던 내수가 부진의 늪에 빠지고 있다. 고물가·고금리 장기화로 소비와 투자가 가라앉으면서 민간소비 둔화가 가시화하는 중이다. 눈덩이처럼 쌓인 부채는 올해 한국 경제의 최대 리스크로 거론되고 있다. 연내 금리 인하가 시작되더라도 가계 빚 부담으로 소비 위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측된다. 가계 실질소득 증대를 위한 해법 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전월 대비 0.9포인트 낮은 97.2로 집계됐다. 한은이 매월 공개하는 CCSI는 지난 8월(103.1) 이후 9월 99.7, 10월 98.1에 이어 넉 달 연속 하락세다. CCSI가 100보다 낮으면 지갑을 여는 소비자들의 심리가 비관적이란 의미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달 발표한 경제 동향에서 지난해 3월 이후 9개월 만에 '내수 둔화'를 언급했다.
내수가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도 점차 낮아지고 있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1분기 0.3%, 2분기 0.6%, 3분기 0.6% 등을 기록했는데 내수 기여도는 1분기 0.3%포인트, 2분기 -0.1%포인트, 3분기 0.1%포인트 등으로 부진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경제적 악재로 중동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와 고금리 장기화를 꼽았다. 특히 국내에 국한할 경우 부채 리스크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답변이 주를 이뤘다. 강성진 고려대 교수(한국국제경제학회 회장)는 "본격적인 이자율 인하 전까지 부채 상환이 어려운 계층이 점점 증가할 것"이라며 "가계·기업부채 부문의 연착륙에 주의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김성은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도 "부채 수준이 높은 상황에서 금리 부담이 오랜 시간 지속되면 연체율이 심화돼 금융시장과 소비를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내년 상반기 경기 둔화 움직임이 가시화하면 미국은 6월부터 인하에 나설 것"이라며 "금리 역전과 외환시장, 가계부채 상황 등을 고려하면 미국이 금리를 인하하거나 인하 시점에 대한 강한 신호를 주기 전에 (우리나라가) 선제적으로 인하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고 언급했다.
안성배 대외경제연구원(KIEP) 수석이코노미스트도 "물가상승률이 아직 높은 수준이고 서비스 물가와 임금 상승 압박도 여전하다"며 "목표치에 근접한다고 해서 금리를 인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조기 피벗(통화정책 전환)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물가 안정화 등 여건이 갖춰질 경우 한국이 선제적으로 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성은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는 "물가상승률이 하락세에 있는 데다 대내외 금리 차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보다는 높은 부채 수준과 연체율 상승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 요인이 더 크다"며 "물가상승률이 목표치인 2%에 수렴하는 것이 확연해진다면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낮출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승석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도 "과도한 민간부채에 대한 원리금 상환 부담 증가로 연체율이 급증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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