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거주 목적으로 매수 계약한 집에서 세입자가 갑작스레 전세 연장(갱신청구권 행사)을 통보했다면, 매수인이 잔금 지급을 거절하더라도 위법하지 않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A씨가 B씨를 상대로 제기한 소유권이전등기 소송에서 원고 패소 취지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거주하려 샀는데..잔금일 직전 '전세 계약 2년 연장' 통보
A씨는 직접 들어가 살 목적으로 B씨의 인천 연수구 아파트를 11억원에 구매하기로 했다. 2021년 1월 계약서를 작성하고 같은 해 4월 잔금 지급과 소유권 이전을 마무리 지을 작정이었다. 세입자 C씨의 전세 계약이 같은 해 10월에 끝나기 때문에 실제 아파트 인도는 12월에 하기로 했다.
A씨는 세입자가 임대차계약만료 후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는 공인중개사의 설명을 서류로 남겼고, 12월 아파트 명도 내용도 특약에 적었다.
그런데 세입자 C씨가 돌연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하겠다며 입장을 바꿨다. B씨는 "임차인이 계약갱신청구권 행사한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A씨는 계약금, 중도금을 낸 후 약속대로 4월 잔금을 치르기 직전에 이같이 통보 받았다.
이에 A씨는 "B씨가 이 사건 매매계약에서 정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므로 피고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반발했다. 애초에 실거주 목적으로 매매 계약을 맺었는데 거주할 수 없는 상태인 집을 매도해 '계약상 의무'를 저버렸다는 취지다. 또 C씨가 나가지 않는 2년 동안 다른 곳에서 거주할 수밖에 없어 손해도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A씨가 잔금을 치르길 거부하자 B씨는 한달여 뒤인 5월 잔금 지급 채무 불이행을 이유로 매매계약 해제를 통보했다. 이에 A씨는 B씨를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절차 이행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매도인, 빈 집 넘길 의무 있나...대법 "있다"
1은 A씨의 손을 들어준 반면 2심은 잔금 지급 거부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판단이 엇갈린 지점은 B씨가 집을 거주할 수 있는 상태로 넘겨야 할 '현실 인도 의무'가 있느냐였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잔금을 안 준 건 채무불이행이 아니며 B씨가 소유권이전등기 절차를 이행해야 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2021년 12월까지 아파트를 A씨에게 거주할 수 있는 상태로 실제 인도하는 것은 매도인인 B씨의 완전한 소유권이전의무에 포함되는 것"이며 "이런 의무 이행이 현저히 불확실한 이상 그 의무 이행제공을 받을 때까지 A씨는 잔금지급의무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B씨의 계약 해제 통보가 유효하다고 봤다. A씨가 잔금 지급 의무를 부당하게 이행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1심과 같이 판단했다. 재판부는 갑작스러운 C씨의 계약갱신권 청구에 대해 "피고의 현실 인도 의무 이행이 곤란할 현저한 사정 변경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며 "이로 인해 당초 계약 내용에 따른 A씨의 선이행 의무(잔금 지급)를 이행하게 하는 것이 공평과 신의칙에 반하게 됐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사정 변경은 B씨의 계약 해제권 행사까지 해소되지 않았다"며 "A씨의 잔금 지급 의무 이행 거절이 정당한 것은 아닌지, 그 결과 원고의 의무 불이행을 이유로 한 피고의 해제권 행사에 문제는 없는지 다시 심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집주인에게 현실 인도 의무가 있다고 인정하고, 이보다 먼저 이행할 잔금 지급 의무를 매수인이 부담하는 상황에서 임차인이 잔금 지급일 직전 갱신요구권을 행사한 경우 매수인의 잔금 지급 의무 이행 거절이 정당하다고 볼 여지가 있어 이를 이유로 매매계약을 해제하는 것은 적법하지 않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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