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대리전'이라고도 불린 13일(이하 현지시간) 대만 16대 총통 선거에서 친미·대만 독립 성향의 민주진보당(민진당) 후보인 라이칭더 부총통이 친중 성향의 중국국민당(국민당) 후보 허우유이 신베이 시장을 누르고 당선됐다.
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저녁 8시 기준 개표가 90% 이상 진행된 현재, 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는 523만표를 얻어 득표율 40.34%를 기록했다. 제1 야당인 중국국민당(국민당)의 허우유이 후보는 434만표(33.35%), 민중당 커원저 후보는 342만표(26.3%)를 기록하며 라이 후보가 사실상 당선을 확정 지었다.
오차 범위 3~5%포인트(p) 이내 초접전을 벌였던 앞서 여론조사 결과와 달리 이날 1, 2위인 라이 후보와 허우 후보 간 표 차이는 비교적 컸다.
이로써 민진당은 1996년 대만 총통 직선제가 실시된 이래 처음으로 3회 연속 대선에서 승리하며 12년 연속 집권에 성공했다. 대만 국민들이 총통 직선제를 시행한 이후 민진당과 국민당 정부는 8년 주기로 정권을 교체해 왔는데, 이런 '공식'이 깨진 것이다. 라이 당선자는 오는 5월 20일 취임해 2028년까지 대만을 이끌어가게 된다.
라이 당선자는 이날 당선이 확정되자 저녁 8시 37분 타이베이 시내 선거운동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우선 허우유이와 커원저 후보로부터 당선 축하 전화를 받았다며 두 사람에게 감사를 표시하고 앞으로 대만 단결을 위해 협력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라이 당선자는 "이번 대선은 대만이 민주와 위권(威權, 권위주의) 사이에서 민주의 편에 섰음을 전 세계에 알리고, 대만 국민이 외세(중국) 개입을 성공적으로 막아 우리의 총통은 우리가 선출한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대만은 계속해서 올바른 길을 갈 것이고, 절대 (옛길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선 저녁 7시 56분경 국민당 허우유이 후보는 사실상 패배를 인정하고 라이칭더 당선자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며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 것도 당부했다. 이어 그는 정당 교체를 실현하지 못한 것에 대해 지지자들에게 사과하면서 "대만이 도전에 직면한 상황에서 우리는 반드시 단결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민중당 커원저 후보도 이날 민중당 선거본부 앞에서 선거 결과에 승복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지자들에게 "대만 민중당은 여러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우리의 신념을 확고히 견지하면서 이 나라를, 미래를 지킬 것"이라며 "4년 후에는 꼭 집권에 성공해서 이 나라를 되찾겠다"고도 밝혔다.
'미·중 대리전'이라고도 불리는 이번 선거에서 민진당은 '민주 vs 권위주의'를, 국민당은 '전쟁 vs 평화' 프레임을 내걸고 정치적 이데올로기 싸움을 벌였으나, 정치 싸움에 피로감을 느낀 대만 유권자들이 결국엔 '현상 유지'라는 안전한 선택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선거 직전 국민당 출신 마잉주 전 총통이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시진핑을 신뢰해야 한다"는 취지의 '친(親) 시진핑' 발언이 유권자들의 국민당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는 분석도 있다.
이날 민진당의 한 고위급 인사는 “라이칭더(총통)-샤오메이친(부총통) 후보가 40% 이상의 득표율로 당선됐다”며 “이는 국민들이 민진당의 지난 8년간 국정 운영을 긍정한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고 대만 연합보는 보도했다.
특히 중도 성향의 민중당 커원저 후보가 정치적 논쟁보다 취업과 집값 등과 같은 경제 민생 문제에 관심을 갖는 젊은 청년층 유권자를 파고들며 예상 밖의 26%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대만 양당 체제의 벽을 무너뜨리진 못했다는 분석이다.
라이 당선자는 이번 16대 총통 선거에서 40% 이상 득표율로 당선됐지만, 함께 치러진 입법위원(국회의원) 선거에서 집권 민진당은 의회 과반수 확보에 실패하며 '여소야대' 국면이 예상된다. 라이 당선자로선 향후 분열된 민심을 어떻게 수습하고 정치적 신뢰를 쌓아 단합을 실현할지가 과제가 될 전망이다. 라이 당선자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입법위원 선거에서 민진당이 과반수를 유지하지 못한 결과는 인민이 유능한 정부와 효율적인 견제와 균형을 바란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전했다.
라이 당선자는 차이잉원 현 총통보다 더 강력한 친미·반중 노선을 추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당선으로 반중 성향의 민진당 정권이 유지되면서 중국의 대만에 대한 군사·외교·경제적 압박이 이어져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가 요동칠 것이란 우려도 커졌다. 이는 지난해 1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 이후 미·중 관계의 안정을 시험하게 될 것이라고도 블룸버그는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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