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기술 전시회 ‘CES 2024’에 다녀왔다. 레거시(기존) 산업에 종사하던 기업들의 인공지능(AI) 전환과 미래 가전·모빌리티 등 볼 것과 흥미로운 점이 많은 행사였지만, 가장 인상적인 기억은 따로 있다.
CES 2024 주요 행사장인 베니션 엑스포를 나설 때 한 백인 청년이 약간은 어설픈 한국어로 “한국인? 보세요”라며 전단을 하나 쥐여줬다. 그곳에는 신장개업한 한국 식당의 이름과 위치, 소고기·돼지고기를 5인분 이상 시키면 한국 소주 1병을 무료로 주겠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CES가 절반은 한국인·한국 기업의 잔치가 됐다는 것은 사실 알고 있었다. 미중 분쟁으로 떠난 중국 기업의 빈자리를 한국이 채웠다.
CES 2024가 열리기에 앞서 많은 전문가와 미디어가 생성 AI가 행사의 핵심 화두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로레알·월마트의 키노트(기조연설)를 빼면 생성 AI 기술·서비스를 CES 2024 행사장에서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는 생성 AI의 선두 기업으로 꼽히는 마이크로소프트(오픈 AI)·구글·메타·엔비디아·아마존 등이 CES 2024에 불참하거나 제한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오픈 AI는 별도의 부스 없이 사티아 나델라 최고경영자가 월마트 키노트에 깜짝 등판하고 참여 스타트업들 둘러보는 선에서 그쳤다. 구글은 생성 AI와 클라우드에 대한 소개 없이 안드로이드와 모바일 기기 알리기에 주력했다. 이마저도 사실 지난해 5월 공개한 정보의 재탕이었다. 메타는 비공개 기업 간 거래(B2B) 미팅룸만 운영했고, 엔비디아는 온라인 키노트에서 소비자용 신제품만 발표하고 따로 부스를 운영하지는 않았다. 아마존도 에코 등 스마트홈 기기 알리기에만 주력했다.
냉정하게 평가해 상품과 서비스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는 S급 기업들, 이른바 '빅테크'는 CES 2024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였다. 참여는 하되 자사 개발자 행사에 더 주력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CES를 중요시 하는 기업은 매출·영업이익과 네임밸류는 글로벌 수준이지만, 제품·서비스 공개 행사를 자체 흥행시키기에는 기술 역량이 조금 부족한 A급 기업들에 한정됐다. 아쉽지만 한국 주요 대기업들도 여기에 해당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A급 기업들이 뭉쳐서 S급 기업들이 하는 행사만큼의 홍보·마케팅 효과를 낸다는 점에서 CES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한국인들은 한국 기업·스타트업만 둘러보고, 미국인은 미국 기업·스타트업만 보는 등 부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국가 간 장벽이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다.
이역만리 미국 땅까지 가서 한국 사람·기업끼리 어울리자니 너무 아쉽다. 한국 기업·스타트업 부스에 더 많은 외국인 관람객과 투자자를 끌어들일 방안을 찾고, 한국인들도 앞장서서 다른 국가 기업·스타트업의 혁신 상품·서비스를 둘러보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정부 기관도 앞으로 이점에 신경써서 전략적인 CES 참여 기업 선별과 부스 배치를 해야 한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