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들의 제재 속에서도 중국이 전 세계 태양광 시장에서 경쟁자가 없는 압도적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미국·유럽과 비교해 절반도 안 되는 생산단가에 더해 정부와 민간의 동남아 지원 금융상품을 통해 시장을 가져간 것이 원인이다.
업계에서는 국내 기업들이 미국에 집중하는 동안 정작 중요한 시장인 아세안을 완전히 중국에 내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영국의 에너지컨설팅업체 우드 매켄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중국의 태양광 패널 생산단가는 W(와트)당 0.15달러로 집계됐다.
인도가 W당 0.22달러를 기록했으며, 유럽과 미국은 각각 0.3달러, 0.4달러로 중국과 비교해 두 배 이상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높은 생산단가 경쟁력으로 인해 중국은 전 세계 태양광 모듈 생산의 80%를 차지했다. 우드 매켄지는 2050년에는 전 세계 태양광 전력 공급량의 50%를 중국산 태양광이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사실상 중국산 태양광에 대해 반덤핑 관세 및 보조금 지급 제외 등 강력한 제재안을 내놓은 미국과 유럽을 제외하고 전 세계 시장을 점령한 셈이다.
중국산 태양광은 특히 세계 최대 태양광 시장인 아세안을 중심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제43차 아세안 정상회담에서 각국 지도자들은 ‘정의롭고 포용적인 에너지 전환 가속화’를 핵심으로 하는 성명서에 서명한 바 있다.
글로벌에너지모니터(GEM)에 따르면 현재 아세안 내에 계획된 태양광 및 풍력 발전 계획은 222GW(기가와트)에 달한다.
아세안은 지난 2015년부터 2021년까지 연간 22% 수준의 전력 수요 증가세를 보였으며, 지난해에만 3GW의 태양광 용량을 추가하면서 전년 대비 17%를 증가했다.
특히 이들 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는 베트남과 필리핀이다. 아세안의 친환경 발전 계획 중 185GW 이상이 두 국가에 집중돼 있다.
필리핀의 경우 국가 차원의 태양광 발전 및 해상풍력 발주가 지난해 300건이 넘었으며, 베트남은 40GW 규모의 태양광 및 풍력 프로젝트 발주를 앞둔 상황이다.
중국은 이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보스턴대학교 글로벌개발정책센터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22년까지 중국 기업은 1400개 이상의 해외 발전시설에 투자했으며, 이 중 31%가 아세안에 대한 투자다.
특히 중국은 베트남과 필리핀이 국가 차원에서 추진하는 친환경 에너지 전환 전략이 예산 등에 의해 보류되거나 지체되는 점을 파고들었다. 금융상품을 통한 프로젝트 지원을 함으로써 수주까지 따내는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여기서 중국의 ‘민관 파트너십’이 빛을 발했다. 정부와 민간 자본이 투입된 ‘혼합 금융’ 모델을 통해 아세안 친환경 에너지 전환 프로젝트를 지원함으로써 아세안 태양광 시장 확보와 동시에 금융상품 판매까지 가능하게 됐다.
아세안 주요 국가의 친환경 에너지 전환 사업의 자금조달부터 발전시설 완성까지 모두 중국의 손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다. 중국의 이 같은 전략은 전 세계 태양광 시장을 점령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국내에서는 한화솔루션이 미국에서 점유율 1위를 자랑하면서 활발히 해외에 진출하고 있지만, 동남아 시장에서는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국가 차원의 태양광 수출 지원이 있었던 중국과 달리 한국은 오로지 기업의 역량으로만 해외 시장을 개척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우방국인 미국과 유럽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가장 큰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사업”이라며 “우리 정부가 중국을 조금이라도 벤치마킹했다면 아세안의 대규모 친환경 프로젝트가 한국의 국익으로 이어질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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