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건설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올해 상반기에만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12조원 이상을 투입하겠다고 밝혔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먼저 공사비 상승에 맞춰 사업비도 현실성 있게 책정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물가 모두 뛰어오르고 있는데 정부가 책정한 공사비로는 사업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22일 국토교통부와 조달청 나라장터 등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핵심 사업으로 추진하는 국가 SOC 프로젝트들이 시공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GTX-A 환승센터) 사업(3170억원 규모), 일산 킨텍스 제3전시장 사업(6199억원 규모) 등 1000억원 이상 책정된 공공사업 8건이 유찰되기도 했다. 사업비 3934억원이 책정된 '서울 강남역 일대 대심도 빗물 배수 터널' 프로젝트는 입찰참가자격사전심사(PQ) 단계부터 신청 업체가 없어 유찰됐다.
총 사업비만 1조원이 넘는 제2경춘국도(남양주~춘천) 건설사업도 마찬가지다. 당초 2029년 개통 예정이었지만 아직 삽을 뜨지 못하면서 사업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비금~암태국도 사업(3995억원 규모)은 입찰 과정에서 DL이앤씨만 참여해 총 4차례 유찰됐고, 고창~부안국도(3870억원 규모) 사업에도 지역업체인 금광기업만 입찰에 참여해 4회 유찰됐다.
정부의 대형 SOC 사업 프로젝트가 시공사를 찾지 못하고 유찰되는 데는 낮은 공사비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공사 비용은 치솟고 있는데 정부가 책정한 공사 비용으로는 사업성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금~임태국도 입찰에 참여한 DL이앤씨 측은 "사업성이 낮다고 판단되는 경우 입찰 경쟁이 불붙지 않고, 경쟁이 있어도 공격적인 제안을 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건설업계에서는 건설사 살리기를 위한 정부의 SOC 예산 조기집행도 중요하지만, 급상승한 공사비 등을 반영한 사업비 책정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국토부는 SOC 예산 20조8000억원 중 경제 활성화와 관계없는 부분을 제외한 19조1000억원을 신속 집행 관리 대상으로 지정하고, 상반기 중 12조4000억원(65%)을 조기 집행하기로 했다.
정부도 사업비 재검토를 준비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사비 증액이 되지 않으면 계약이 성립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어 예산 당국과 증액을 협의하고 있는 중"이라고 전했다.
정부와 민간 건설사 사이의 공사비에 대한 이견을 줄이기 위한 가이드라인도 마련된다. 국토부는 지난해 10월 '도로건설 적정 사업비 산출 가이드라인'을 통해 사업 기초 자료와 비용을 검토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 등을 지방국토관리청 및 광역·기초지자체에 배포한 상태다.
전문가는 SOC 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보다 근본적으로 공사비 현실화가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이창무 한양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는 "정부의 비용 처리와 관련된 부분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어 비용 변화에 급격하게 반응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공사비 현실화가 반영돼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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