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갈등이 발생 이틀 만에 봉합 국면으로 전환됐다. 4월 총선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당정 갈등이 계속된다면 패배로 이어져 '공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한 위원장은 23일 당초 예정됐던 당 사무처 방문 일정을 전격 취소하고 대형화재가 발생한 충남 서천군 서천수산물특화시장 피해 현장을 찾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화재 진압에 총력 대응을 지시한 직후 화답하듯 나온 결정이었다. 당초 별다른 일정이 없었던 윤 대통령도 현장을 찾아 한 위원장과 악수를 나눴다.
이에 본지 취재에 응한 정치전문가 4인은 윤 대통령이 4월 총선 승리를 위해 한 발 물러선 것으로 진단했다. 총선이 8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한 위원장 외에 마땅한 대안이 없고, 한 위원장을 무리하게 교체할 경우 오히려 역풍이 거셀 것이라는 설명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갈등을 봉합하지 않으면 총선은 물 건너가게 된다. 윤 대통령이 먼저 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다만 그는 "대통령실은 김건희 여사 문제에 대한 해법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며 "해법을 내놓지 못하면 다시 갈등이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 역시 "임시봉합이라고 봐야 한다"며 "마그마가 잠시 식은 것이다. 김 여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언제 또 터질지 모른다"고 평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극적 봉합"이라고 평했다. 황 평론가는 "한 위원장은 불출마 선언을 한 데다 계파가 없기 때문에 잃어버릴 게 없는 입장"이라며 "한 위원장이 물러나게 되면 총선을 수행하기 어려워진다. 총선 패배에 대한 책임은 윤 대통령이 고스란히 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결과적으로 한 위원장이 정국의 주도권을 쥐게 됐다.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는 악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갈등이 결국 '약속대련'이 아니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약속대련은 태권도 용어로 공격과 방어를 사전에 약속했다는 뜻으로, 30%대 지지율에 머물고 있는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여론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일종의 '충격요법'을 썼다는 의미다.
이종훈 시사평론가는 "이번 조기봉합 의미는 결국 약속대련인 게 밝혀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평론가는 "한 위원장이 대통령과 선을 긋고 싶었으면 윤 대통령이 화해 제스처를 취해도 절연하는 모습을 보였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당과 대통령실의 관계는 결국 수직적 관계가 될 것이다"라고 했다.
한 위원장과 용산 대통령실 간 갈등의 직접적인 원인은 결국 '김건희 리스크' 대응 방식이다. 대통령실은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 등에 대해 '몰래카메라 정치 공작'에 당했다며 '피해자 김건희' 프레임으로 대응 중이다. 그러나 한 위원장은 최근 '국민 눈높이'를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한 위원장이 공개석상에서 김경율 비대위원이 서울 마포을에 출마한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사천'(私薦) 논란을 일으킨 점도 윤 대통령 심기를 건드린 이유로 꼽힌다. 공교롭게도 김 비대위원은 김 여사를 프랑스 대혁명 당시 처형된 마리 앙트와네트에 비유하기도 했다.
장 소장은 "(한 위원장은) 김 여사와 관련해서는 당분간 조심하겠지만 윤 대통령과 뜻이 다른 공천이 진행되면 다시 한번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며 "앞으로의 화약고는 공천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국민의힘 의원들이나 출마를 준비하는 이들은 김 여사 리스크를 놓고 당분간 눈치보기에 들어가면서 침묵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윤·한 갈등'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김경율 비대위원이 자진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만 장 소장은 "최소한의 선택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한 위원장의 리더십 훼손으로 직결될 수도 있는 문제"라며 "김 비대위원은 당분간은 조심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사퇴는 하지 않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이틀간의 정국을 달궜던 '윤·한 갈등'은 결국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함께 대통령전용열차를 타고 서울로 귀환하는 일으로 일단락되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들의 행보를 두고 화재현장에서 '깜짝 정치쇼'를 벌였다는 비난도 나온다. 이종훈 평론가는 "허무한 결말이다. 중도층은 물론이고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이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됐다"며 "약속대련을 통해 얻고자 했던 일련의 효과도 결국 잃어 버린 것"이라고 혹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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