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업계는 물론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전세사기는 지난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관심사였다. KDI 경제정보센터의 빅데이터 분석을 보면 지난해 경제 관련 키워드로 '금리 인상'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고 바로 뒤이어 '전세사기'가 많이 언급됐을 정도다.
이처럼 전세사기 사건은 우리 사회의 많은 것을 바꾸고 있다.
가장 아픈 문제는 전세사기 사태 이후 우리 사회의 '주거사다리'가 급격히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서민들의 주거사다리 역할을 하던 전세제도와 빌라가 애물단지로 전락하면서다.
빌라와 다가구주택, 오피스텔은 주거 생태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자금 여력이 없는 신혼부부나 사회 초년생들이 집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돈을 모을 때까지 큰 주거비 지출 없이 거주할 수 있는, 서민들의 주거 안정을 책임졌던 주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세사기 여파로 이러한 비아파트 시장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이제는 더 이상 역할을 못하고 있다. 기피심리가 극심해졌기 때문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 서울 빌라(다세대·연립주택) 전월세 거래량은 11만1440건 중 월세 거래량은 5만1984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1년(1~10월 기준) 이후 최대치다.
더 큰 문제는 공급마저 끊길 위기라는 것이다. 국토교통부 통계누리 자료를 보면 작년 1~11월 전국 빌라(연립·다세대주택) 인허가 물량은 1만3868가구로, 2022년 같은 기간(4만2803가구)의 3분의1 수준이다. 착공 물량도 2022년 같은 시기(1만5606가구)의 3분의1 수준인 4223가구에 그쳤다.
고금리와 경기 위축 등 주택시장의 침체를 감안해도 가파른 하락세다. 공급 가뭄이 한동안 계속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처럼 새로운 주택 공급이 줄어들게 되면 기존 빌라, 오피스텔 등의 월세와 아파트 전셋값은 더 오르고 주거비 부담도 가중된다. 아직 경제적 여력이 많지 않은 서민들에겐 치명적이다.
물론 민간의 문제를 정부가 전부 책임지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서민의 '주거사다리' 역할을 해 온 빌라 시장이 붕괴되면 주거 불안정성이 커지는 것은 물론 부동산 양극화 현상도 심화하게 된다. 안정적 보금자리 부족은 향후 저출산을 비롯한 사회적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실제로 국토연구원의 '저출산 원인 진단과 부동산 정책 방향' 보고서를 보면 주거비 부담이 출산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취임 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오랫동안 갖고 있던 아파트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주택 유형 다양화에 대한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장관의 언급처럼 정부가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으로 안정적인 주거사다리를 선물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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