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를 열흘여 앞둔 대한민국 서민 가계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을 거쳐 엔데믹(풍토병 수준) 시대로 접어드는 동안 고금리·고물가에 실질소득 감소가 더해져 삶의 질은 더욱 열악해졌다. '풍요롭고 넉넉한 설 명절'은 옛말이 됐다는 자조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29일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등에 따르면 올해 설 차례상 비용은 평균 30만717원으로 코로나19가 터지기 직전인 2020년 설(25만1494원) 때보다 19.6% 급등했다. 지난해에는 29만8398원이었다.
인플레이션 여파에 농산물 작황 부진까지 겹쳐 제수용품 물가가 큰 폭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대중교통도 KTX 등 철도 운임은 정부가 요금을 통제 중이지만 고속·시외버스 요금은 2022년 11월과 지난해 7월 두 차례 인상되며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달 시외버스 요금 물가지수는 110.18(2020년=100)로 전년 동월 대비 5.0% 올랐다. 같은 기간 택시 요금 물가지수도 121.66으로 19.2% 급등했다.
물가와 금리는 오르는데 임금 상승률이 뒤따르지 못하는 양상이다.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1~10월 누계 월평균 실질임금은 전년 동기 대비 1.0% 하락한 354만2000원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명목임금 상승률은 2.7%에 그친 반면 물가 상승률은 3.7%를 기록했다.
월급이 오르지 않는 건 경기 둔화 여파로 기업 실적이 악화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명절 상여금 지급도 줄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소기업 설 상여금 평균 예상액은 40만원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전인 2019년(65만1000원)보다 38.6% 감소했다. 올해는 사정이 나아져 60만9000원 정도로 예상되지만 상여급 지급 업체 비율은 2019년 51.9%에서 지난해 44.3%, 올해 41.8%로 계속 낮아지는 추세다.
이형석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공요금 인상과 유가 등이 물가 상승을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임금을 포함한 개인서비스업은 둔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면서 "공급요인 불안이 계속되면서 물가 상승률 둔화가 예상보다 느린 상황"이라고 말했다.
빈기범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단기적으로 정부가 물가를 억제할 정책적 방향이 딱히 없는 상황이다. 잡히더라도 일시적인 조절에 그칠 것"이라며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리면 일시적 영향은 있겠지만 부동산 문제로 인해 주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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