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주인공 트레버는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한 가지 과제를 받는다. 바로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를 내고 실천에 옮기기'다. 기한은 1년 내내다.
첫 과제 발표 시간에 트레버는 분필로 칠판에 그림을 그리며 본인 아이디어를 설명한다. 이른바 '도움 릴레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자신이 3명에게 선행을 베풀고, 도움을 받은 3명은 다른 3명에게 선행을 베풀면 된다. 그렇게 트레버는 선행이 뻗어나가는 모습을 나뭇가지 모양으로 표현한다.
자칫 유토피아(이상향)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영화 밖 현실에서 트레버의 아이디어를 17년째 실천 중인 이가 있다. 바로 1세대 국민 영어 선생님으로 알려진 민병철 중앙대 석좌교수다.
"굿모닝 에브리원! 하우 아 유?"
민 교수는 1981년부터 10년간 MBC '민병철의 생활영어'를 진행했다. 아침마다 영어 인사를 건네던 그가 지금은 "선플 운동에 동참해 달라"는 당부를 건넨다.
본지는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역 인근 선플운동본부에서 민 교수를 만났다. 선플 재단은 악플과 혐오 발언 추방을 위해 민 교수가 2007년에 설립한 시민단체다.
품위 있게 빗어 넘긴 머리, 빳빳하게 다린 검은색 정장에 은은한 광택이 나는 금빛 넥타이. 44년간 영어 교육에 매진해 온 민 교수는 여전히 초롱초롱한 눈빛을 간직하고 있었다.
10년간 아침 영어 방송···영어 학원 강의실 빌 정도로 큰 인기
민병철 하면 '영어'가 떠오를 만큼 민 교수는 이름 자체가 아이콘이다. 그는 초등학생 시절 영어와 첫 인연을 맺었다. 민 교수는 당시 호주 선교사가 있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소재 교회를 다니면서 또래였던 선교자 자녀들과 어울려 지냈다. 그의 삶에 영어가 자연스레 스며든 계기다.
민 교수는 "처음부터 영어가 되진 않았다. 하지만 대화에 필요한 말을 선교사 큰아들 그레그에게 녹음해 달라고 했고 수백 번씩 따라 했다"며 "하도 많이 들어 테이프가 늘어질 정도였다"고 말했다.
영어와 맺어진 인연은 성인 이후로도 이어졌다. 그는 대학생(중앙대)이던 1973년 당시 KBS 라디오 영어회화 방송을 진행했고 대학 졸업 이후엔 미국 시카고로 유학을 떠났다. 민 교수는 그곳에서 외국인 이민자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이 시기는 훗날 책 <민병철 생활영어>를 출간하는 밑바탕이 된다.
민 교수는 "내가 맡은 반에는 한국에서 이민 온 분들이 많았다. 그분들이 상황별 영어 표현을 질문할 때마다 영어를 알려줬는데 이 표현들만 정리해 나중에 책 <민병철 생활영어>를 냈다"고 회상했다. 1979년 출간한 이 책은 당시 100만부 넘게 팔렸다. 한 집 건너 한 집마다 그의 책이 책장에 꽂혀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민 교수의 영어 교육은 책장을 벗어나 각 가정 안방으로도 확장됐다. 그가 1981년 10월부터 MBC에서 영어 강좌 방송을 시작하면서다. 방송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묻자 그는 "1979년 시카고 시청 앞 광장에서 '한국 문화의 날' 행사 사회를 맡았을 때 당시 MBC 관계자가 '한국에 오면 연락하라'며 명함을 건넸다"며 "이듬해인 1980년 한국에 돌아와 연락했더니 라디오 영어회화 프로그램 진행 제안을 해왔다"고 말했다.
이를 계기로 민 교수는 1년 반 동안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1981년 10월부터는 방송도 맡게 됐다. 당시 영어 방송 인기에 대해 민 교수는 "아침 영어 방송 시간에 영어 학원 강의실이 빌 정도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설명했다.
악플로 세상 떠난 연예인 소식 접한 뒤 선플 운동 시작
우연한 만남은 때로 한 사람의 삶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 그가 유년기 시절 만난 선교사 아들 그레그가 그러하고 그를 방송으로 이끈 방송사 관계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명함에 '선플운동본부 이사장'이 새겨진 계기도 우연한 만남 때문이었다.
그가 선플 운동가의 길에 들어선 2007년은 신년 벽두부터 연예계에 우울한 사건이 잇따랐다. 극심한 악플로 정신적 고통을 겪던 한 연예인이 세상을 등졌기 때문. 이 소식을 우연히 접한 민 교수는 이때부터 선플 운동을 시작했다.
당시 중앙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민 교수는 한 가지 과제를 냈다. 악플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기분 좋은 '선플' 10개를 달고 인증하라는 과제였다. 민 교수는 "당시 온·오프라인 수강생 570명이 1인당 선플 10개를 달아 일주일 만에 5700개 선플이 달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플만으로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던 학생들의 말은 내게 울림을 줬다. 이를 계기로 그해 5월 선플달기운동본부를 발족했다"고 설명했다.
선플 운동은 간단하다. 선플운동본부 홈페이지에 주제가 올라오면 참여자가 댓글을 남기는 식이다. 주제도 다양하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종식, 세계 평화 기원, 다문화 가족 배려 등이다. 초·중·고등학생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악플에 선플을 단 뒤 인터넷주소(URL)를 선플 홈페이지에 제출하면 봉사 시간도 받을 수 있다. 한 참여자는 다문화 가족 배려 주제에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 모두 평등한 사회가 되길"이란 댓글을 남겼다. 2007년부터 차곡차곡 쌓인 선플은 16년 만인 지난해 11월 1000만개를 돌파했다. 민 교수는 "선플 하나로 선플 받는 사람과 쓰는 사람, 보는 사람이 행복해진다"고 말했다.
민 교수는 해외에서도 선플운동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필리핀 하원의원 47명이 선플운동 참여 서약서에 서명했다. 필리핀 하원의원 선플운동 서약은 2018년 민 교수가 제안해 처음 시작됐다. 그는 "해외에서도 선플운동을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한 국가 의회가 선플운동에 동참하면 그 나라에 거주하는 우리 국민과 기업도 존중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지난해 9월 출간한 책 <확실한 성공은 우연한 만남에서 이루어진다>를 건넸다. 책을 스르륵 넘기다 한 줄에 눈길이 멈췄다. '당신이 베푼 작은 친절은 물결과 같아 베풀수록 파도가 돼 상대방에게 밀려간다.'
초반에 언급한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원제는 'pay it forward'다. 직역하면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행'이란 뜻이다. 오늘 하루 대가 없는 '선플' 한 줄 남겨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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