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매일 아침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출근하는 배우자를 배웅하는 지인이 있다. 건설 현장으로 출근하는 뒷모습을 본 지도 30년 가까이 돼 가지만, 여전히 산재 사고 뉴스를 접할 때면 가슴이 철렁해져 아무 사고 없는 하루를 기원하는 게 습관이 됐다고 한다. 위험한 일을 하다 다치거나 병에 걸릴 수도 있고, 어쩌면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무사히 퇴근하기 전까지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2022년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기업들은 법의 철퇴를 피하기 위한 조치들을 마련하고 있지만 여전히 가야 할 길은 멀어 보인다. 지난해 말 영풍 석포제련소는 유독가스 유출로 인한 근로자 사망 사고 직후 “작업자들의 안전보호장구 착용 여부는 알려줄 수 없다”고 대응해 공분을 샀다. 이곳에선 1997년부터 중금속 중독을 비롯한 각종 사고로 노동자 12명이 숨졌고, 7년간 불순물 제거 작업을 해온 노동자는 2017년 급성 백혈골수암을 진단받아 지난해 11월에야 산재를 인정받았다. 이른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표방해온 기업의 행보라기에는 아쉬운 점이 적지 않다.
전문경영인뿐만 아니라 기업 총수도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2022년 1월 경기 양주 채석장 토사 매몰로 근로자 3명이 숨진 사건에선 검찰이 상법상 대표이사 지위에 있지 않은 삼표그룹 회장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최고안전책임자, 대표이사 등 공식적인 회사 직함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최종적이고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다면 경영책임자로 볼 수 있다는 판단이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하는 연례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2022년 4일 이상 요양이 필요했던 재해자는 13만348명이었으며 그중 사망자는 2223명이었다. 재해율은 전년 0.63%에서 0.65%로 증가했다. 일상에서 0.65%란 수치를 체감하는 일은 많지 않지만, ‘재해율 0.65%’는 산재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을 생각할 때 결코 낮은 수치일 수 없다. 인원수로 따지면 30명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그렇기에 최근 ESG 경영을 화두로 삼고 있는 기업들이 근로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나서는 건 반가운 일이다. 건설업이나 제조·제련업 등 현장직 비중이 큰 업종들도 사업장 안전 관리를 한층 강화하는 모습이다. 한동안 친환경 비즈니스와 사회공헌 활동에 주력하던 기업들이 근로자 안전과 인권을 존중하는 윤리 경영으로 초점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윤 창출이라는 기업의 본질적 목적과도 무관치 않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중요해진 오늘날 산업 재해 등 근로자 이슈가 기업 평판과 매출은 물론 지속 가능한 성장에 치명적인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0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기업 재해율이 1% 증가할 때 노동자 1인당 연간 매출액은 약 1215만~1431만원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재의 사후 대응만큼이나 사전 예방을 위한 적극적인 투자가 기업의 생존 과제로 부상한 셈이다.
현장에서 달성한 생산 성과로 기업 성장을 일군 기업의 총수와 경영진, 이사회는 수년간, 길게는 수십 년간 생산 및 산업 현장에서 되풀이된 비극을 이제 멈추게 해야 할 책임이 있다. 안전과 생명이 직결된 사안이야말로 리더의 만기친람(萬機親覽)이 필요한 영역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근로자들이 오늘도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은 채 무사히 귀가해 가족들과 편안하게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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