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현대차의 경우 과거 전기버스 화재로 LG에너지솔루션에서 SK온으로 배터리 공급사를 한 번 바꾼 적이 있어, 이번에는 외산 LFP 배터리로 선회를 고려해야 하는 등 셈법이 복잡하게 됐다.
5일 경기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12일 안양에서 전기버스 화재가 발생했다. 불이 난 차량은 현대차 일렉시티로, 버스 상단에 탑재된 SK온 배터리에서 불이 난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차는 과거 코나EV 연쇄 화재로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1조4000억원에 달하는 코나 리콜비용을 배터리 제조사인 LG에너지솔루션과 나눠낸 것이다.
현대차는 2021년 하반기 신형 일렉시티 저상 전기버스를 내놓으면서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대신 SK온 배터리를 써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상용차에서만큼은 NCM(니켈·코발트·망간) 등 삼원계 배터리 대신 LFP 배터리를 써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NCM은 LFP에는 없는 니켈을 첨가해 출력을 높일 수 있지만 니켈이 많이 들어갈수록 화재 취약성은 커지는 단점이 있다.
이 때문에 화재 안전성과 장기 수명을 우선 고려하는 상용차에는 중국이 강점이 있는 LFP 배터리가 적합하고, 주행 거리와 충전 속도가 중요한 고성능 전기차에는 한국이 주로 만드는 NCM 배터리가 유리하다고 평가받는다.
국산 전기 버스 화재로 상용차 및 배터리 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게 됐다. 현대차로서는 LFP 채택을 고려할 수밖에 없고, 배터리 업체로서는 높은 수요가 예상되는 국내 상용차 시장에서 화재 리스크를 불식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정부는 갈수록 늘어나는 중국버스를 견제하기 위해 보조금을 반토막 내며 한국 업계에 힘을 실어준 터였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작년 국내 상용차 브랜드 톱10의 신차 판매량은 2574대를 기록했다. 중국산이 1280대(49.7%), 현대차가 977대(39.7%)로 각각 집계됐다. 2019년만 해도 중국 브랜드의 점유율은 11.4%에 그쳤지만 해마다 신규 진출하는 회사가 늘어 지난해 과반에 가까워졌다.
정부는 중국산 전기버스를 견제할 목적으로 지난해 보조금 지급 요건을 전면 수정했다. 성능보조금을 둬 배터리 에너지 밀도가 배터리 용량 1ℓ당 500Wh(와트시)를 넘으면 보조금 전액을 주고, 500Wh 미만 450Wh 이상에는 80%, 400Wh 미만이면 70%를 주는 것이 골자다. 이는 중국산 LFP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가 400Wh가 되지 않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LFP 배터리는 NCM 배터리 대비 에너지 밀도가 20∼30%가량 낮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중국 상용차 제조사들이 국내 유통을 위해 SK온 배터리 탑재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화재 리스크가 발목을 잡게 됐다.
한편 현대차 버스 전용 생산 공장인 전주공장은 지난 12월 30일부터 공사에 들어간 상태다. 내연기관 버스를 만들던 기존 생산라인을 축소하고 전기·수소버스 생산을 늘리기 위해서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배터리 업체의 LFP 양산은 2026년에서야 시작돼, 현대차로서는 선택지가 없다"면서 "K 배터리는 판로 확장을 위해 상용 시장을 잡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LFP 조기 양산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