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회사채 시장이 전반적으로 호황기를 맞이했지만, 국내 증권사 입장에서는 다른 이야기일 뿐입니다. 불확실한 금리 인하 시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려에 따른 증권업계에 대한 불신이 투심을 위축시켰기 때문입니다. 증권가는 금리 인하 직전까지는 회사채 발행은 보수적으로 접근하되 당분간 단기채로 연명하겠다는 계획입니다.
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증권사들의 일반단기사채 발행량은 약 27조원으로 전년 대비 40%가량 증가했습니다. 이 중 KB증권(2조7100억원)이 가장 많은 물량을 발행했습니다. 만기는 하루짜리부터 6개월 등까지 모두 1년 미만으로 모두 전자 방식으로 채권이 만들어집니다.
반면 중장기채 발행량은 예년 대비 급감한 모습입니다. 연초 이후 신용등급이 AA 이상인 증권사들의 회사채 발행 규모는 총 2조900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이 중 KB증권이 8000억원으로 가장 발행 규모가 컸고, 미래에셋증권(4200억원), 삼성증권(4000억원), NH투자증권(2500억원), 신한투자증권(2500억원)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표면 이율은 3.9~4.296%로 발행됐습니다. 회사채 특성상 신용평가 등급이 낮을수록 표면 이율은 더 올라갑니다. AA0급인 미래에셋증권은 4.296%로 3년물 선순위채로 발행됐습니다. AA+로 분류되는 KB증권은 3.942%로 1년물이 시장에 나왔습니다.
회사채 시장이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증권사들이 발행하는 이른바 ‘증권채’는 소외된 모습입니다.
지난달 AA급 이상의 우량채인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KB증권, NH투자증권은 회사채 공모에 나섰습니다. 4개 증권사 모두 수요예측은 모집 금액을 넘어섰지만, NH투자증권을 제외한 나머지 미래에셋증권과 삼성증권, KB증권 모두 오버금리(발행금리가 민평금리보다 높게 결정)를 면치 못했습니다.
미래에셋증권의 경우 2년물, 3년물, 5년물의 발행금리가 민평금리 대비 각각 0.15%포인트(p), 0.3%p, 0.18%p 가산되며 전 구간 오버금리가 찍혔습니다. 삼성증권은 2년물, 3년물은 0.01%p, 0.04%p가 더해졌습니다. KB증권도 1년 6개월물은 0.09%p, 2년물 0.07%p, 3년물 0.04%p가 더해졌습니다. NH투자증권만 2년물과 3년물에서 민평금리보다 0.05%p 낮게 결정됐습니다.
전반적으로 증권업종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돼 중장기적으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것으로 금융투자업계는 보고 있습니다.
미래에셋증권, 신한투자증권 등과 같은 대형 증권사를 비롯해 상상인, 부국증권 등 중소형 증권사 등 대부분의 증권사들이 만기 하루짜리 단기채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상황입니다.
증권채 투심을 위축시킨 요인은 부동산PF 대출 자금 때문으로 관측됩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부동산PF 투자 비중이 높은 곳은 PF 대출 차환 자금이 필요하다”면서 “전단채를 계속 발행해 돈을 갚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반복되는 금리 인하에 대한 불확실성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시기는 계속 뒤로 밀리고 있습니다. 미국의 고용 서프라이즈에 따른 미 국채 금리 급등 여파도 국내 금리 상승을 자극하고 있는 중입니다.
발행사인 증권사도 금리가 낮아질 때까지는 단기채로라도 연명하겠다는 계획입니다. 당장 장기부채인 회사채가 단기채보다 금융비용을 줄일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채권금리가 하락하면 오히려 금융비용이 오르기 때문입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단기적으로 금리 변동폭이 다시 오를 수 있지만, 연내 금리가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며 “높은 금리로 1~3년물 회사채를 발행하는 것보다는 1년 미만의 단기물로 자금을 조달한 뒤 이후 금리 하락 시기가 명확해지면 장기채를 발행하는 것이 현 상황에서는 더 낫다고 판단했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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