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충보국(精忠報國)'.
지금도 중국 사람들에게 구국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남송 시대 명장 악비(岳飛)의 등 피부에 새겨졌던 문구이다. 악비는 풍전등화의 상태인 조국을 위해 자신의 안위는 개의치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해 국토 수복에 앞장섰다.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워 연승을 이어갔지만 악가군(岳家軍)의 승리를 오히려 걱정했던 주화파 재상 진회는 갖은 모함으로 충신 악비를 결국 죽이고야 만다.
그러나 100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도 악비는 중국 최고의 충신이요, 악비를 모함했던 진회는 희대의 간신으로 평가받는다. 중국인들은 진회의 철상을 악비 장군 무덤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들어 매국노를 대대손손 기억하게 만들었다.
현재 대한민국 상황도 위기로 치닫고 있음에도 정치인들 중에 악비와 같은 충신은 보기 힘들다. 오히려 자신들의 당리당략과 자기 세력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조금 전까지 했던 약속도 돌아서면 헌신짝이요, 내가 살기 위해서는 '위성정당' 꼼수도 무방하다는 그릇된 생각들이 난무하고 있다.
프랑스 대혁명 때 앙시앙레짐(구체제)을 무너뜨린 것은 민중의 분노였다. 최근 우리 국민들도 프랑스의 마크롱과 최근 엘살바도르 대선과 총선에서 압승한 부켈레처럼 강력한 제3지대 세력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기득권 거대 양당은 오랜 기간 당명만 바뀌어 왔고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군부 쿠데타 세력과 운동권 세력의 적대적 공생관계 '양당 체제' 폐해를 이번만큼은 바꿔야 한다는 바닥 정서가 상당히 큰 편이다.
지난 2일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정권 심판이나 제1야당 심판론뿐만 아니라 현 정권과 제1야당을 동시에 심판해야 한다는 응답이 16%에 달했다. 이른바 샤이 응답자의 적극적 대답 빈도가 상대적으로 적은 전화면접 조사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로, 이는 2016년 총선에서 국민의당 바람이 불 때보다 더 강력한 잠재력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선거 환경은 새로운 정치를 원하는 토대가 구축되고 있지만 설 명절 직전 전격 합당을 선언한 정치 세력들은 매끄럽지 못한 일련의 행보 등으로 아직까지는 국민의 기대에는 다소 미흡하다고 느껴진다.
앞으로는 더 이상 거대 정당의 당대표 시절의 호시절이 아니라 풍찬노숙(風餐露宿)을 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당을 운영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른바 스몰볼(small ball·팀플레이를 극대화하는 야구경기) 운영을 통해 기성 정당과 차별화를 꾀해야 할 것이다.
이번 통합 진행에 있어 민주당 강성 지지층 및 신당 일부 지지층에서 강력한 비판을 받은 이원욱·조응천 의원은 오히려 일본인들에게 가장 추앙받는 사카모토 료마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 쇄국과 개화의 갈림길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메이지유신의 길을 열어 '근대 일본' 초석을 깐 료마처럼 두 의원은 비난을 감수하며 '새로운 미래'에 동참하지 않으면서 쉽지 않았던 제3지대 통합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이다.
여기에 더 늦기 전에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구해야 한다는 소명 의식을 지닌 이낙연 대표의 통 큰 양보와 이에 화답한 이준석 대표의 결단으로 전격적인 통합 선언이 이루어진 것이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제3지대 구성원들은 지혜롭게 숙의를 통해 중지를 모으고, 부족한 부분은 외부 전문가의 머리를 빌려 운동장을 넓힐 것을 권유한다.
결국 정치의 본령은 국민을 위한 것이지, 일부 권력자들의 입신양명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제3지대가 '그 나물에 그 밥'이 아닌 거대 양당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되어야 할 것이다. 거대 양당도 왜 국민들이 '제3지대'를 원하는지 뼈저리게 성찰하기를 바란다. 간절한 기대와 숭고한 헌신은 기적을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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