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1·10 부동산 대책을 통해 재건축 사업의 첫 관문으로 꼽혔던 '안전진단'을 사실상 폐지하겠다고 밝혔지만 수혜 예상 지역을 중심으로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지는 않는 모습이다. 치솟는 공사비와 분담금 우려 등으로 구축 아파트에 대한 메리트가 높지 않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아울러 이번 규제 완화책 가운데 법 개정이 전제돼야 하는 부분이 있는 점도 시장에 영향을 준다는 견해도 있다. 지난해 정부가 실거주의무 폐지를 발표했으나 정작 해당 내용을 담은 주택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공사비 급등과 고금리 등의 영향으로 추가 분담금 부담이 높아진 상황에서 안전진단 완화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적정 공사비 확보 등 재건축 사업의 사업성 회복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노후아파트가 밀집해 1·10 부동산 대책 수혜가 예상되는 노도강(노원·도봉·강북)과 강남, 양천 등의 집값이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지난 8일 발표한 주간아파트가격동향(5일 기준)에 따르면 노원구(-0.06%→-0.08%)와 도봉구(-0.08%→-0.11%), 강남구(-0.03%→-0.05%)는 전주보다 아파트 매매가격지수의 낙폭이 더 커졌다. 양천구(-0.04%→-0.03%)의 경우 낙폭이 소폭 줄었지만 하락세는 이어졌다. 정부 발표 이후 한 달 가까이 흘렀지만 시장 분위기는 오히려 냉랭해지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재건축 사업의 큰 문턱을 없애겠다는 발표에도 시장이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는 이유로 고금리와 고물가로 공사비 인상이 계속되면서 추가 분담금 우려가 커지고 있는 점을 꼽고 있다.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의 경우 최근 조합원 추가 분담금이 5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재건축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둔촌주공 재건축과 은평 대조1구역 재개발은 공사 중단 여파로 조합원들은 최소 1억원 이상 분담금을 추가로 내야 하는 상황이다. 상계2구역 재개발 조합은 조합원 분양가가 너무 높아 관리처분 계획안이 부결됐다.
문제는 시간이 지체될수록 공사비 상승, 금융 비용이 늘어나 사업성이 더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렇다 보니 재건축 이후에도 과거처럼 수억원의 시세차익을 손에 쥐는 게 쉽지 않다는 인식도 늘고 있다. 집값 하락기와 맞물려 재건축 단지에 대한 수요가 약해지는 배경이다.
재건축 단지의 하락 거래도 잇따르고 있다. 노원구 상계동 상계주공5단지 전용 31.98㎡는 지난 2일 4억6000만원(4층)에 거래됐는데, 이는 지난해 10월 5억원 대비 4000만원 하락한 금액이다.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기자촌 2단지 전용 83㎡는 지난달 18억5000만원(12층)에 손바뀜됐다. 작년 12월 19억2000만원에서 7000만원 떨어진 수준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1·10 대책이 재건축 추진단지에 있어서는 긍정적인 정책이지만 곧바로 가격상승으로 반영되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지금은 인허가 등 정책 이슈보다 추가분담금 등 개별 조합원의 경제여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규제 완화에 대한 불확실성도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 이번 대책의 핵심으로 꼽히는 안전진단 규제 완화는 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이다. 정부는 다음 달 도시정비법 개정안을 발의한다는 계획이지만,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있어 법안이 처리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실질적인 재건축 사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결국 사업성이 확보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용적률 상향 등의 정책과 함께 병행해야 실질적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진형 한국부동산경영학회 회장(경인여대 교수)은 "부동산 경기 침체와 공사비 인상 등 재건축 이후 시세차익에 대한 기대감이 매우 낮은 상황"이라며 "재건축 사업을 실질적으로 활성화하려면 용적률 상향은 물론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같은 법도 함께 손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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