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새해 벽두에는 세계 최대 기술 전시회 CES(소비자전자쇼)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인의 큰 관심 속에 열린다. 올해는 코로나 팬데믹 직전 규모를 거의 회복하거나 능가하는 역대 최대 규모로 열렸다. 153개 국가에서 4300여 개 전시업체가 참가하고 13만5000명이 참관하며 대성황을 이루었다.
올해는 AI(인공지능) 쇼라 불릴 만큼 AI가 CES 2024의 핵심으로 자리 잡은 것은 예견된 바였다. 미국의 생성형 AI 기업인 오픈AI가 2022년 11월 30일(현지시간) 챗(Chat)GPT를 발표한 후 불과 2개월 만에 이용자가 1억명을 돌파하고 6개월 만에 18억명을 돌파하는 역대 최고의 세계적 열풍을 일으키며 AI는 세계인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AI는 특성상 독자적 산업이라기보다 모든 산업의 기반 내지 핵심 기술로 내재될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올해 CES에서는 사실상 대부분 기업이 AI를 전면에 내세우며 AI 전환을 대세로 부각시켰다. 오픈AI의 챗GPT와 GPT-4, 마이크로소프트의 코파일럿, 구글의 제미나이(Gemini) 등 클라우드 기반의 생성형 AI를 활용한 서비스 플랫폼 구축으로 고객 서비스를 혁신하거나 업무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제고하는 사례가 많이 제시되었다. 동시에 AI가 자동차, 스마트폰, PC, TV 등 다양한 제품에 내재되는 온 디바이스(On-Device) AI가 큰 주목을 받았다. 이제 AI는 모든 산업의 제품 및 서비스는 물론 업무의 기본이 되어 AI를 잘 쓰는 기업이 못 쓰는 기업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국가의 흥망성쇠가 AI 역량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AI와 함께 CES 2024의 관심은 자동차 및 모빌리티 분야와 헬스케어 분야에 쏠렸다. 특히 자동차 및 모빌리티 분야는 신축한 대규모 전시장인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 웨스트홀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노스홀까지 들어올 정도로 전시업체와 참관인이 늘어났다. 통상 CES 다음 주에 열리는 세계 4대 모터쇼의 하나인 디트로이트 모터쇼가 뒷전으로 밀릴 정도로 확대 추세다.
자동차 및 모빌리티 분야가 세계적으로 산업 중요도가 매우 크고 대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음에 따라 CES 2024에서 산업 및 기술 트렌드가 주목을 받았다. 자동차 산업은 생산, 수출, 고용, 세수 등 모든 면에서 우리나라 전체의 10%를 훨씬 상회하는 현재는 물론 미래 대한민국 경제의 핵심 산업이다. 자동차 산업이 디지털·그린·문명 대전환을 통해 항공, 철도, 선박, 농기계, 건설기계는 물론 서비스, 정보통신, 에너지, 콘텐츠 산업 등 연관 산업과의 융합을 통해 모빌리티 산업이라 불리는 거대한 융합 신산업으로 빅뱅하고 있다. AI가 그 핵심에 있는 건 두말할 여지가 없다. 이러한 산업 트렌드로 인해 자동차 및 모빌리티 산업은 미·중 기술패권 전쟁의 중심에 있고 미국, 중국만이 아니라 EU, 일본 등 모든 선진국이 국력을 집중하고 있는 산업이다.
올해 CES의 모빌리티 산업 트렌드를 정리하면 먼저 자율주행의 정체 내지 침체가 두드러졌다. 전 세계적으로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수백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누적 투자금액을 쏟아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율주행 상용화가 계속 지연되자 글로벌 자동차·ICT 기업의 의구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으로 재무적 타격이 커지자 투자 재검토 내지 삭감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재작년 포드와 폭스바겐의 투자 중단으로 자율주행 스타트업 아르고AI가 문을 닫아 업계에 큰 충격을 준 이후 구글의 웨이모, GM의 크루즈 등 자율주행 선도 기업이 일제히 투자 삭감, 서비스 중단, 대규모 감원에 나서고 있다. 현대차그룹도 미국 자율주행 기업 앱티브와 합작한 모셔널의 대규모 적자 지속으로 앱티브가 투자 중단을 선언하여 향후 방향에 고심하고 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이 CES 2024에 그대로 투영되며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승용차 부문에서는 도로 인프라, AI 및 센서 기술의 획기적 개선 없이는 달성이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도심 자율주행, 특히 자율주행 레벨 4·5 목표에서 탈피하여 레벨 3 또는 법적 책임이 없는 소위 레벨 2.9급에 해당하는 고도의 ADAS(운전자지원시스템)로 목표를 수정하는 자동차 기업이 많아질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중국에 자율주행 기술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는 주장도 있으나 안전 중시 추세와 새로운 전략적 방향을 감안하면 기우에 불과하다. 그보다 CES 2023에 이어 올해도 더욱 강해진 ‘목적 중심의 기술혁신’, 다시 말해 ‘인류를 위한 기술혁신’으로의 관점 및 시대정신의 변화가 자율주행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즉, 막대한 투자에 걸맞을 만큼 자율주행의 목적이 인류에 절대적이냐는 의문이다. 환경, 식량, 의료, 안전 등 인류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에서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어서 편의적 목적이 큰 자율주행이 상대적으로 투자 우선순위 면에서 떨어질 개연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탄소중립, 도시 기능 재설계, 원격 근무 등에 따른 모빌리티 혁신 트렌드까지 감안하면 승용차 부문의 자율주행이 탄력을 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신 상용차 부문에서 자율주행이 활발해질 전망이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트럭 운전자 부족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며 고속도로 트럭 자율주행은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고속도로 트럭 자율주행은 도심 자율주행 대비 훨씬 용이하다. CES 2024에서도 미국 자율주행 기업 오로라가 트럭 제조사 팩카와 제휴하여 고속도로 자율주행을 선보였다. 아울러 저속 자율주행 셔틀버스, 농기계, 건설기계, 광산기계 등 특수목적 차량에 대한 자율주행 기술 적용도 확대될 전망이다. CES 2024에서도 존디어가 자율주행 트랙터, 캐터필러가 자율주행 광산기계, HD현대가 자율주행 건설기계를 제시하며 주목을 받았다.
둘째로, 전동화 추세는 자동차는 물론 선박, 항공기로 확대되는 한편 순수 전기모빌리티에 집중하기보다 수소 연료전지, 수소 및 이퓨얼 연소엔진, 하이브리드 등 탄소중립을 위한 목적 지향적 다양화를 추구하고 있다. 순수 전기차는 소니와 혼다의 합작사인 소니혼다 모빌리티가 야심 차게 개발하고 있는 아필라, 메르세데스-벤츠의 보급형 고성능 전기차인 CLA 콘셉트카 등이 관심을 모았다. 순수 전기차는 충전시간 단축과 일 충전 주행거리 확대가 주요 기술 트렌드가 되고 있다. 수소를 동력으로 사용하는 수소 기반 모빌리티도 올해 CES의 주요 화두가 되었다. 현대차는 엑시언트 수소 전기트럭 등 트럭 및 버스를 중심으로 수소 연료전지차, 독일 보쉬는 직분사형 수소연소 엔진, HD현대는 수소 연료전지 굴착기를 제시하여 눈길을 끌었다. 수소 모빌리티는 미국, EU, 일본 등 선진국이 추진하고 있는 수소 사회를 향한 기폭제가 될 전망이다.
셋째로, 대부분의 글로벌 자동차 회사가 SDV(Software Defined Vehicle)라 불리는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를 새로운 기술 트렌드로 제시하였다. 자동차는 물론 모든 주변 환경까지 AI와 소프트웨어로 정의하고 제어하는 SDV 로드맵이 현대차, 메르세데스-벤츠, BMW, 블랙베리·QNX, KPIT 등 자동차 및 솔루션 기업 중심으로 제시되어 주목을 받았다. 다만 SDV가 기술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소비자 입장에서 효용성, 즉 기술혁신의 목적 관점이 아직 크게 부각되지 않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SDV 및 OTA(무선업데이트)를 통한 자동차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미스매치 해소, 다양한 서비스 모델 개발 등 장점이 있는 반면 완벽을 기대하기 어려운 소프트웨어 품질 등 단점도 있어 현명한 전략적 접근이 요구된다. 퀄컴, 인텔·모빌아이 등의 AI 반도체 및 온 디바이스 AI 경쟁, 아마존 오토모티브의 생성형 AI 등 AI의 자동차 적용 확대도 대세다.
우리 핵심 주력 산업인 자동차 및 모빌리티 산업의 지속적 발전을 기대한다.
주영섭 필자 주요 이력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산업공학박사 △현대오토넷 대표이사 사장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전 중소기업청장 △한국디지털혁신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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