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3년간 한국산 전투기가 외국에 수출된다는 뉴스가 관심을 끌면서, '우리 힘으로 전투기를 만드는 것도 대단한데 수출까지 한다니' 라는 놀라운 생각이 들었다. 사실, 비행기는 해외여행을 떠날 때나 보고 타는 것이지 출퇴근하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어찌 보면 그간 해외여행 가면서도 공항 라운지 서비스를 마일리지로 해결할 수 있는지는 관심의 대상이었지만, 우리 가족이 타는 비행기가 보잉(Boeing)社에서 만든 것인지, 에어버스(Airbus)社에서 만든 것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나에게 항공기, 전투기와 같은 분야는 매우 어려운 과학의 세계이자 군사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 기고문을 준비하면서 한국의 항공산업이 눈부신 발전 과정 중에 있고 전략을 잘 세워 정부와 기업이 지혜롭게 대응하면 국가 경제를 몇 단계 점프시킬 수 있는 분야임을 알게 되었다.
항공산업은 기술적 측면에서 다양한 산업, 그것도 첨단산업에 대한 파급효과가 크고 고급 일자리를 많이 창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이유로 미래 성장동력을 이끌 첨단산업으로 꼽히고 있으며 주요 선진국들은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항공기 제조와 항공 운송을 포함하는 항공산업은 서비스업뿐만 아니라 제조업으로서 각 분야의 첨단기술이 총집결되는 요체이다. 특히 전투기와 대형 여객기를 제작하는 제조업 측면에서 항공산업은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며 최첨단 기술이 집약되어 구현되어야 하는 분야이다. 항공 분야에서 축적된 기술은 정밀기계, 전자통신, 병기 생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되므로 기술 파급효과가 매우 큰 산업이다.
항공산업 분야가 20세기를 거쳐 21세기로 오면서 기술 융합의 가속화 현상을 반영하고, 무인화 기술의 발전 및 글로벌 경쟁의 심화 가운데 항공 분야에서도 새로운 항공기 형태와 항공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강화되고 있다. 인구팽창, 도시화, 자원고갈 및 환경문제 등의 전 인류적 트렌드에 대한 이해 없이는 앞으로 항공기 체계와 항공산업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성을 제시하기 힘든 상황이다. 한 세기 동안 내연기관에 의존했던 항공기도 이제는 전기 동력 사회로 변화되는 시대 흐름, 또한, 자율화된 무인항공기의 도심 활용 확대도 미래형 비행기의 모습을 좌우할 것이다. 국제노선 항공승객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대형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도심내-도심간 비행을 위한 소형화도 같이 진행될 것이다. 연비 효율을 확보하기 위해 첨단 소재가 장착된 가벼운 비행기일수록 환영받을 것이다.
또한, 항공산업은 산업적 측면과 함께 안보적 측면에서도 중요성을 갖고 있다. 현대전에서 공군력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점은 90년대 걸프전쟁에서부터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드론을 이용한 정밀 타격 사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북한과 대치 중인 우리나라의 특수성, 동북아시아 긴장 관계를 고려하면 항공산업을 국가적인 전략 산업으로 육성해야 하는 당위성은 충분하다.
그런데, 이런 사항에 대해 항공 선진국들은 이미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기술적 헤게모니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합병과 협력, 기술개발 투자와 정부 지원 등에 힘입어 항공 선진국과 나머지 국가들 간의 불균형 현상은 좀처럼 완화되지 않고 있다. 그나마 우리나라는 항공 분야 후발 국가로서 첨단산업의 발전과 안보상의 전략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꾸준히 수출에 힘쓰고는 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산 부품으로 만든 국산 비행기 ‘부활호’가 날아 오른 지 70년 만에 사상 처음으로 10억 달러를 돌파한 항공기 수출. 민수 분야에서 부품 수출이 꾸준히 증가하는 상황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전투기·헬기 등 방산 분야의 수출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이 밝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이런 좋은 흐름을 이어갈 수 있을까.
산업의 사이클이 길고 자본과 기술 측면에서 진입장벽이 높지만, 일단 항공산업 생태계의 플레이어로 진입하는 데 성공할 경우 비교적 장기간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항공분야에서 도약할 수 있는 전략은 우선 우리의 강점인 전기·전자 및 IT 분야를 활용하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항공핵심기술로드맵 자료(2021)에 따르면, 항공기를 구성하는 부품을 6개로 구분했을 때, 전기·전자시스템이 항공 선진국 기술 수준 대비 70% 수준까지 도달하여 나머지 기체구조(61%), 동력장치(59%), 기계시스템(54%), IT·S/W(63%), 지상설비시스템(57%) 등에 비하여 경쟁력이 있는 분야이다. 단, 융복화 트렌드에 대응하여 전기전자 혹은 IT 단독 전문 기술보다는 기체-전기·전자, 전기·전자-통신, 전기·전자-무인기시스템 기술 등의 융합을 통해 전문성과 규모의 경제를 동시에 잡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항공기의 전기·전자 제품 수명이 비행기 수명인 20여 년에 비해 절반 가까이 짧은 점을 고려하면 기술개발에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전기·전자 제품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다 보니 10여 년 전의 부품으로 기체 생산라인을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또한, 전기·전자 부품을 도입하는 경우에는 초기 도입비용이 더 들더라도 항공기의 전자장비와 소프트웨어에 대한 수리·개조에 관한 라이선스와 훈련을 제작사로부터 확보하는 것을 구매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매듭짓는 방향으로 해야 한다. 이것을 소홀히 할 경우, 항공전자장비의 업그레이드를 자체적으로 하기 힘들고 때마다 제작사에 고가의 비용을 치르면서 유지보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 내수 시장이 제한적이고, 글로벌 협력이 가능한 수준의 기술역량 자립화 및 고도화를 이루지 않고서는 글로벌 경쟁이 힘든 항공시장. 우리가 강한 전기·전자 및 IT·S/W 분야의 경쟁력을 활용하여 글로벌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항공 선진국의 국제공동개발 혹은 부품 공급자로 참여하는 전략을 활용해야 하겠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농경제학과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 농경제학 박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팀장 ▷고용노동부 고령화정책TF ▷한국장학재단 리스크관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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