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상한제 단지에 적용되는 실거주 의무를 3년간 유예하는 방안이 9부 능선을 넘어섰다. 지난해 1월 정부가 실거주 의무 폐지 방침을 발표한 지 1년여 만이다. 개정안이 오는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그간 마음을 졸이던 전국 5만 가구에 달하는 입주 예정자들도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다만, 당초 정부가 약속한 ‘실거주 의무 폐지’가 아닌 한시적 유예인 만큼 3년 뒤 다시 시장 혼선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7일 국회에 따르면 이날 오후 열린 국회 국토위 전체회의에서 실거주 의무를 유예하는 주택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실거주 의무가 시작되는 시점을 '최초 입주 가능일'에서 '최초 입주 후 3년 이내'로 완화하는 것이 골자다. 여야는 주택법 개정안을 이번 국회 회기 마지막 날인 오는 29일 본회의에 상정해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실거주 의무는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는 아파트에 당첨이 되면 입주 시점에 2~5년간 직접 거주하도록 하는 규정으로, 투기 수요 방지 등을 위해 지난 2021년 2월에 도입됐다
주택시장이 과열되던 시기에 투기를 막기 위한 규제였는데, 2022년 하반기부터 분양 시장이 침체되자 정부는 지난해 1·3부동산 대책을 통해 전매제한 완화와 실거주 의무 폐지를 약속했다. 이후 4월 주택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전매제한은 완화됐으나, 실거주 의무 폐지는 여야 합의가 안 돼 관련 법 개정이 1년 넘게 미뤄지면서 입주 예정자들이 큰 혼란을 겪었다.
그러나 오는 4월 총선 이후 21대 국회 회기 종료와 함께 법안 자체가 폐기될 위험에 빠지자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수분양자들의 목소리가 커졌고, 야당 측이 폐지 대신 '3년 유예안'을 꺼내들면서 극적인 합의가 이뤄졌다.
국토부에 따르면 해당 의무가 적용되는 단지는 지난 1월 말 기준으로 77개 단지, 4만9766가구에 달한다. 올해 6월 입주를 앞둔 서울 강동구 강동헤리티지자이(1299가구)와 11월 입주 예정인 올림픽파크포레온(1만2032가구) 등이 이에 속한다.
정부가 당초 발표했던 '폐지'는 아니지만, 3년간 실거주 의무가 유예되며 당장 새 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 기존 전세 계약을 변경, 연장하거나 무리하게 대출을 받을 상황에 놓인 가구는 한숨을 돌릴 수 있을 전망이다. 실거주 의무 규제가 적용됐던 2021~2022년 사이 청약에 당첨된 수분양자들은 청약 시점에 실거주를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정부의 폐지 발표를 믿고 지난해 1월 이후 아파트 청약에 나서 당첨된 사람들은 자칫 분양받은 아파트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실거주 의무를 지키지 못하면 1000만원 이하 벌금 또는 1년 이하 징역에 처해지고 아파트는 분양가만 받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되팔아야 한다.
전문가들은 당장 최악의 사태를 막았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폐지가 아닌 유예인 만큼 3년 뒤 시장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올해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는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 후분양 단지가 늘어나기 때문에 실거주 의무 적용 대상 가구수는 5만 가구를 더 넘길 것으로 관측된다.
고준석 연세대 경영대 상남경영원 교수는 "시장 상황 상 자금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기존 살던 집이 안 팔리는 상황의 수분양자들이 있다"며 "실거주 3년 유예안이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실거주가 어려운 경우 임차인의 보증금으로 잔금을 해결할 수 있고, 3년이라는 기간을 확보한 만큼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해당 의무가 완전히 폐지되지 않으면 계속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만큼 추가적인 논의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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