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묘'의 열기는 흥행 성적이 증명해 냈다. 영화는 개봉 16일 만에 7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새로운 기록을 써냈다. 지금의 분위기라면 영화 '서울의 봄'에 이어 두 번째 천만 영화까지 노려볼 만하다.
이 같은 영화 '파묘'의 인기 중심에는 배우 최민식이 있다. 오컬트의 외피를 입은 민족의식과 개인에서 역사로 흐르는 흐름에서 단단히 중심을 잡으며 35년 차 베테랑다운 무게감을 보여준다.
아주경제는 화제작 '파묘'의 주역 최민식과 만나 인터뷰를 나누었다. 영화 안팎의 이야기부터 베테랑 배우의 삶을 관통하는 철학까지 그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장재현 감독은 데뷔작 '검은 사제들'부터 '사바하' '파묘'에 이르기까지 오컬트 장르에 한국적 요소를 녹여 자신만의 장르를 구축해 왔다. 엄청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철저한 고증과 자신만의 해석을 더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그는 관객은 물론 업계 관계자들에게도 엄청난 신뢰를 쌓고 있다.
"장재현 감독은 신과 인간 그리고 자연과 종교 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들에 관심이 있어요. 사실 장 감독이 기독교기 때문에 다른 종교나 민속신앙을 불편하게 여길 수도 있고 편협한 사고에 갇힐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자기의 영역을 깨고 확장하는 게 위험할 수도 있는데 아주 깨어있고 열려 있죠. 그 '열린 마음'과 '이해'를 바탕으로 형이상학적이고 관념적인 걸 이야기로 만들어낸다는 게 참 신기했어요. '이런 걸 어떻게 이렇게 재밌게 만들지?' 궁금해졌죠. 시나리오만 읽어도 '이건 실력이다' 싶더라고요."
시나리오뿐만이 아니었다. 최민식은 전작과 '파묘'의 시나리오도 훌륭했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을 허물었던 건 장 감독이 건넨 말 한마디였다고 털어놓았다.
"대본을 받고 함께 술 한잔을 했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장 감독이 제게 그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우리 땅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싶다'고요. 상처를 뽑아내고 거기에 약을 발라주고 싶다고 하는데 그 정서가 굉장히 와닿더라고요. 소위 말하는 '국뽕'으로는 느껴지지 않았어요. '이야, 그런 표현은 처음 듣는다!' 땅의 트라우마라니요. 그 말에 마음이 확 쏠리더라고요."
극 중 최민식이 연기한 '상덕'은 조선 팔도 땅을 찾고 땅을 파는 40년 경력의 풍수사다. 그는 "40년간 땅 팔아먹고 살았던 남자"가 캐릭터의 중심이라고 보고 이를 표현하기 위해 심도 있는 고민을 더했다.
"'40년 동안 땅 팔아먹고 살았다는 표현이 이 캐릭터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평생 자연을 보며 살았던 사람인 거잖아요. 어디가 길하고 흉한지 단박에 알 수 있는 관찰력을 가진 사람이고요. 평생 연구한 사람이기 때문에 일반인처럼 보지 않을 것이니까 흙의 맛을 보고, 나무 한 그루를 볼 때도 일반인들과 같지 않은 시선이 있을 거라고 판단했어요. 그런 태도나 느낌을 중요하게 보았고 그게 김상덕의 큰 줄기라고 생각하고 다져나간 거죠."
그는 풍수사 역할을 위해 따로 취재나 인터뷰는 가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작품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석에서 우연히 만난 적은 있었다"며 당시 만났던 지관을 묘사하기 시작했다.
"사석에서 지관을 만난 적이 있어요. 그냥 아저씨였어요. 두루마기를 입는다거나 수염을 기른다거나 그런 (이미지적인) 것도 없고 점퍼 하나 입고 오셔서는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었어요. 그 평범 속에서도 자신이 받은 의뢰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의견을 내놓는 게 특별하다고 여겨졌던 정도죠."
최민식은 그 어떤 장르나 캐릭터도 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게끔 만드는 배우다. 제아무리 비현실적인 요소라도 최민식을 거치고 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저런 상황도 가능하다'라고 납득하고 만다. 이는 단순히 시간이 만들어준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최민식에게 "비현실적인 상황들을 현실에 발붙일 수 있도록 만드는 비결"을 묻자, 대번에 "없다"며 웃어버린다.
"그냥 그게 제 일이에요. 그럴싸하게 사기 치는 거예요. 허구의 삶, 허구의 인간을 현실에 있을 법하게 만드는 것. 비결도 노하우도 없습니다. 그저 많이 대화하고 마인드 컨트롤하면서 내가 만든 인물에게 다가가는 수밖에 없어요. 그래야 밀착되니까요. 장 감독이 아무리 김상덕에 대한 모양새나 데이터를 짜주어도 내가 그 인물이 되지 못한다면 말짱 꽝이에요. 카메라 앞에 서면 누구도 개입할 수 없는 거죠. 배우가 제일 외로운 순간이에요. 오롯이 제가 감당해야 할 일이기도 하고요. 때마다 절벽으로 떠밀린다는 느낌을 받기도 해요. 아주 절박해요. 하지만 뭐 어쩌겠어요? 못하면 장사해야죠."
'파묘'의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각자의 방식을 존중하고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화합한다는 것이다. 실제 현장에서도 최민식은 후배들과의 호흡 덕에 신선함을 느꼈다며 깊은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우리를 두고 (팬들이) '묘벤저스'라고 부르시더라고요. 하하하! 우리 '묘벤저스'는 극 중 비즈니스 파트너인데요. 그중에서도 지관과 장의사는 '한 팀'과 같은 사이에요. 척하면 척 아는 사이여야 하죠. (유)해진이와는 오래 알고 지냈으니 억지로 만들 필요가 없었는데요. (김)고은이나 (이)도현이는 처음 만나는 사이였어요. '오래 협업한 사이'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좀 필요하지 않나 싶었는데. 워낙 넉살도 좋고 서글서글한 친구들이라서 그럴 필요가 없더라고요. '그렇구나. 이 친구들도 프로구나'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었죠. '묘벤저스'를 표현할 때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최민식은 '파묘'의 제작발표회 때부터 일관되게 김고은의 대살굿 장면을 명장면으로 꼽으며 신들린 연기를 극찬해 왔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라며 김고은의 연기력에 감탄했다고 재차 말했다.
"사실 여배우가 무속인 역할을 하기 쉽지 않아요. 그런데도 스스럼없이 자신을 내려놓고 뛰어 들어가서 배우고 몰입하는 걸 보면서 놀랍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죠. 선배 입장에서는 그저 칭찬해 주고 싶어요. 앞으로도 그런 자세로, 그런 도전정신으로 대담하게 자신을 열어놓는다면 더 큰 배우가 될 친구입니다. 김고은의 또 다른 모습을 상상하면 앞으로가 더욱더 기대돼요. 이런 친구들과 작업하면 정말 기분이 좋고 즐거워요."
그는 김고은을 두고 "'파묘'의 스트라이커"라고 표현했다. 그동안 크고 작은 영화를 통해 '스트라이커'의 역할을 해왔던 최민식이 다른 배우에게 그 롤을 물려준다고 생각하니 놀라움과 아쉬움이 밀려왔다. "아직 충분히 스트라이커 역할을 해낼 수 있지 않느냐"고 말을 건네니 그는 멋쩍게 웃음을 보였다.
"우리 배우들은 건축으로 따지자면 '벽돌' 같은 거죠. 연출가의 뜻에 따라 쓰여야 해요. 자기 마음대로 그 벽돌의 크기를 주무르면 안 돼요. '파묘'는 김고은의 퍼포먼스가 중요한데 저의 욕심에 따라 그 옆에서 함께 춤출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왜 우리들끼리 '그 장면을 누가 따먹었느냐'고 표현하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그건 전체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내에서 하는 거예요. 경쟁이 아니죠. 고은이가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는 게 일이었어요. 그렇지만 물론 '볼'이 제게 들어온다면, 저도 아직 힘껏 해낼 수 있습니다! 하하하!"
어느새 연기 경력만 35년이다. 연기 외에는 관심도 마땅한 취미도 없다고 털어놓은 최민식은 "아직도 해보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제가 최근에 신구, 박근형, 박정자 선생님이 출연하시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고 왔거든요. 어우 저는 아직 핏덩이더라고요. 그분들의 무대를 보는데 눈물이 났어요. 주변에서 자꾸 '연기 경력이 35년이다' 뭐다 하는데. 전 그런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고 해요. 제가 (경력을) 세기 시작하면 퇴보하는 일밖에는 남지 않아요. 주저앉으라는 소리나 다름없죠. 저는 아직 욕심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거든요. 노인네 흉내 내긴 싫어요. '왕년에'라는 말은 창작자라면 진짜 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기 위해서라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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