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액이긴 하지만 자금 융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A중소기업 사장은 대출 과정에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당장 대출이 힘들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3개 시중은행이 경쟁적으로 낮은 금리를 제시하며 사실상 '입찰'에 나섰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전 같으면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하지만 대출 연장 기간이 되자 분위기는 크게 바뀌었다. 담보물에는 변화가 없는데 대출 금리가 8%대로 기존 대비 2배가량 치솟았다.
시중은행들이 중소기업을 포함한 기업대출을 통한 '몸집 불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수요를 억제하면서 가계대출을 통한 수익 확보가 한계에 직면하자 상대적으로 규제에서 자유로운 기업대출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은행이 중소기업과의 상생이나 자금난 해소를 위한 세심한 고민 없이, 오직 실적을 올리기 위한 경쟁에만 열을 올린다는 것이다. 기업 경영환경이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이라 대출 증가에 따른 부실 우려도 커지고 있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2월 말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634조9017억원으로 나타났다. 전월보다 3조7051억원, 전년과 비교하면 35조339억원 증가했다. 지난해 2월부터 1년째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반면 이들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695조7922억원으로 전월 대비 4779억원 증가에 그쳤다. 지난달 증가폭은 지난해 5월 이후 9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은행들은 가계부채 관리가 강화되고 고금리 상황이 이어지면서 당장 주담대를 늘리기 쉽지 않자 돌파구로 기업대출을 선택했다. 실적을 올리기 위해 영업력은 최고치로 끌어올렸다. 관리가 수월한 우수 중소기업에 집중하는 것은 기본이고, 당장의 결과물을 위해 중소기업과 저금리로 계약을 맺은 뒤 갱신 이후에는 '나몰라라' 하는 식이다.
일례로 1년 전 대출을 받은 한 중소기업은 당초 4%대로 중기대출을 받았는데 갱신 기간이 지나자 금리가 2배 올랐다. 이 회사 사장은 "은행권의 이 같은 대출 행태는 비 올 때 오히려 우산을 빼앗는 꼴"이라며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도한 금리"라고 토로했다.
중소기업 특화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은 최고금리 한도(캡)가 있어 아무리 기업 신용이 나빠도 9.5% 이내에서 대출을 체결하지만 시중은행은 대출 종류와 담보 여부에 따라 금리가 10%를 웃도는 경우도 있다.
경쟁에만 매몰되다 보니 제대로 된 리스크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대출은 증가하고 있는데 경기 침체, 고금리 여파로 기업들의 경영상황이 악화된 영향이다. 연체율은 국민은행이 2022년 말 0.12%에서 2023년 말 0.19%로 0.07%포인트 올랐고, 하나은행이 0.06%포인트(0.23→0.29%) 신한은행 0.04%포인트(0.23→0.27%), 우리은행은 0.01%포인트(0.23→0.24%) 상승했다.
통상 대기업은 리스크 관리가 뛰어나 기업대출 연체율 상승은 중소기업의 부실률과 밀접하다. 특히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중소기업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여파에 따른 지방 건설사 등이 약한 고리로 꼽힌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대출 경쟁이 과열되고 있어 은행 내부에서도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중소기업대출에 상생금융은 없고 한계 중소기업만 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