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가 금융불안을 사전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한국은행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그간 금융안정과 물가안정 사이에 상충관계가 다수 발생했던 만큼 한은이 거시건전성 정책 수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금융정책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신 교수는 20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2024 아시아·태평양금융포럼(APFF)'에서 '중장기 금융정책 방향'이라는 주제 강연을 통해 이같이 말했다.
신 교수는 "지난 2011년 한국은행법 개정을 통해 목적조항 내 '금융안정'을 포함시켰지만 거시건전성 정책 수단은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독점하고 있다"며 "한국은행의 참여를 위해 거시경제금융회의가 운영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 한은은 금융안정국을 두고 시장을 모니터링하고 있으나 금융안정을 위한 정책 수립에는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건전성 확보를 위한 거시정책은 금융당국이 모두 담당하고 있다.
그는 "한은의 금융안정 참여가 제한적임에 따라 그간 통화정책과 금융안정 정책 간 조화로운 운영이 어려워지고 상충관계가 발생할 우려가 커졌다"고 진단했다. 일례로 한은이 최근 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금융당국은 은행의 대출 금리 상승을 억제하고 DSR의 예외 규정을 확대했다.
신 교수는 "금융불안에 대한 사전적 대응은 거시건전성 정책이 우선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한은이 거시건전성 정책수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사후적 금융안정'은 진정한 금융안정을 추구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융부문의 불안정이 실물경제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줬다"며 "금융위기가 일단 벌어진 후에는 사후 수습이 쉽지 않고 경우에 따라 막대한 비용이 소요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은에 최종대부자 기능이 있긴 하지만 사후적 대응은 추후 국민 혈세가 투입될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최종대부자는 금융위기가 예상되거나 발생한 경우 이를 예방하고 그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 금융시장에 일시적 유동성을 공급하는 기능이다.
신 교수는 "개별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최종대부자 기능을 수행할 경우 민주적 정당성이 필요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정치적 비난과 압력이 발생할 수 있다"며 "특히 최종대부자 기능을 수행한 후 손실이 발생하면 국민 세금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신 교수는 금융정책 기반 금융기관에 대한 지나친 개입은 금융산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관련해서는 금산분리 원칙으로 금융부문 혁신을 억제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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