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 20년 만에 최악의 테러가 발생했다. 지난 22일(이하 현지시간) 모스크바 외곽 대형 공연장에서 무차별 총격과 방화가 발생해 현재까지 사상자가 300명 가까이 발생했다. 국제사회는 일제히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테러를 규탄하는 목소리를 냈다. 5선 확정 후 일주일 도 채 안 돼 발생한 국가적 재난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사건 연루자들이 응분의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보복 의지를 다졌다.
러시아 타스통신 등 현지 매체가 당국 발표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테러로 인해 23일 현재 133명이 사망하고 140명 이상이 부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상자 중 상당수는 상태가 위중한 걸 감안할 때 사망자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일부 현지 매체는 143명 이상 숨졌다는 소식도 전했다.
이는 2004년 러시아 남부 베슬란 초등학교에서 체첸 반군 공격으로 334명이 사망한 이후 20년 만에 일어난 최악의 테러다. 참사 현장 주변에는 희생자에 대한 추모객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검게 그을려 뼈대만 남은 공연장 앞 경찰 펜스 한쪽에 희생자 추모 공간이 마련됐다. 추모객들은 희생자들을 위해 꽃과 양초를 바쳤고, 어린 희생자를 위해 대형 곰 인형 등을 놓고 가는 모습도 보였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에 따르면 전날 무장 테러범들은 모스크바 북서부 크라스노고르스크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에서 관객들을 향해 자동소총을 무차별 난사했다. 총격범 일당은 인화성 액체를 뿌리고 공연장 건물에 불을 지른 뒤 현장에서 도주했다. 러시아 당국은 총격을 가한 핵심 용의자 4명을 포함한 관련자 11명을 모스크바 남서쪽 300㎞ 떨어진 브랸스크 지역에서 검거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국영 매체에 따르면 용의자 중 한 명은 신원 미상인 인물에게서 50만 루블(약 730만원)을 받기로 약속하고 범행을 결심했다고 진술했다.
러시아 정부는 즉각 대처에 나섰다. 푸틴 대통령은 23일 대국민 연설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모든 이들에게 깊은 조의를 표한다"며, 24일을 국가 애도의 날로 지정했다. 안드레이 보로비요프 모스크바 주지사는 사망자 유족에게 위로금 300만 루블(약 4383만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국제사회 역시 한목소리로 테러를 규탄하고 희생자를 애도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은 23일 성명을 통해 "미국은 모스크바에서 발생한 치명적인 테러 공격을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말했다. 유엔, 유럽연합(EU) 등 국제기구를 비롯해 한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주요 국가들도 일제히 애도의 뜻을 전했다. 러시아와 밀월 관계에 있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푸틴 대통령에게 '위로 전문'을 보냈다.
한편 사건 배후를 놓고 공방이 가중되고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IS)는 사건 직후 자신들이 테러 배후임을 자처했다. 미국 백악관 관계자들도 "이번 공격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IS에 있다"며 IS 소행임에 쐐기를 박았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반면 러시아 당국은 "용의자들이 범행 후 차를 타고 도주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으려 했다"며 우크라이나 배후설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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